유엔군사령부(유엔사)가 독자적으로 경비정전집행여단을 신설해 정전협정 관리·집행을 둘러싸고 한국 정부와 유엔사의 엇박자가 또다시 불거졌다. 국방부는 한국 군과 영토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유엔사가 주둔국과의 협의 없이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국방부가 올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마찰이 빚어져 이목이 쏠린다.
◇경비·정전집행 기능 강화
현재 유엔사는 경기 파주 캠프 보니파스의 경비대대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등에서 경비와 정전협정 집행 임무를 수행한다.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의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사무국은 비무장지대(DMZ) 출입과 군사분계선(MDL) 통과 승인, 정전협정 위반 조사, 북한군과의 연락 등을 담당한다. 경비정전집행여단은 판문점 일대 경비와 정전협정 집행 기능을 상위 지휘 체계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군 안팎에서는 기존 경비대대를 여단급으로 확대·개편하거나 경비대대 위에 별도 여단급 지휘부를 두는 방안 등 두 가지 형태가 거론된다.
유엔사는 최근 들어 정전협정 관리·집행이 사령부 고유 권한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연합사)가 창설되면서 대북 억제와 유사시 전쟁 수행 준비는 연합사가, 정전협정 유지·집행은 유엔사가 맡는 것으로 역할을 나눴다.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는 지난해 12월 18개 회원국과 한국을 대표해 정전협정을 ‘이행·관리·집행’한다고 밝혔다. 지난 6월에는 유엔군사령관이 DMZ 남측에서 정전협정을 관리·집행·유지할 ‘독점적 권한’을 갖는다고 명시했다.
군 안팎에서는 전작권 전환에 따라 한·미 지휘 체계가 변화할 가능성이 생기자 유엔사가 정전집행 기능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제이비어 브런슨 미 육군 대장이 유엔군사령관과 한·미연합사령관을 겸하지만 전작권 전환 이후에는 연합사를 한국군 4성 장군이 지휘한다. 이에 대비해 유엔사가 정전집행이라는 고유 임무와 독자적 지휘 체계를 더 분명히 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국방부가 문제 삼는 것은 이런 조직 개편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경비정전집행여단이 활동할 판문점과 DMZ는 모두 한국 영토이며 현행 정전 관리 체계에도 한국군 인력이 참여한다. 경비대대에서도 한·미 장병이 함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엔사가 회원국과 새 조직 관련 내용을 논의하며 정작 주둔국인 한국과는 충분히 협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와 유엔사는 여단 창설과 양측 간 사전 협의 여부 등에 대한 한국경제신문 질의에 “별도로 밝힐 입장이 없다”고 답했다.
◇반복되는 韓-유엔사 충돌
양측의 마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김현종 당시 국가안보실 1차장이 강원 철원 백마고지 일대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현장을 방문하려 했지만 유엔사가 DMZ 출입을 즉각 승인하지 않으면서 논란이 일었다. 당시 정부 일각에서는 한국 영토 출입까지 유엔사 승인을 받아야 하는 현행 체계에 문제를 제기했다. 유엔사는 목적을 막론하고 DMZ 출입 통제는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사 권한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지난 6월에는 북한군의 DMZ 내 활동이 정전협정 위반인지를 놓고 국방부와 유엔사의 판단이 공개적으로 엇갈렸다. 국방부는 북한군이 DMZ에서 철책과 지뢰 등 장애물을 설치하는 행위를 정전협정 위반으로 봤지만, 유엔사는 중화기 반입 없이 MDL 북측에서 이뤄지는 일부 방어 목적의 공사는 정전협정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놨다.
군 관계자는 “유엔사의 정전 관리 권한 자체를 부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한국군의 작전과 인력 운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까지 일방적으로 처리하면 갈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한국 정부와 유엔사 간 권한 및 협의 절차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