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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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증조부 성함은 물론이고 어떻게 살다가 언제 돌아가셨는지도 모른다. 사진을 본 적도 없다. 할아버지 삶도 모르는데 증조부 삶을 잘 아는 후손이 얼마나 있겠나." (하영 논란을 지켜보던 한 시민이 SNS에 올린 글)

넷플릭스 '이런 엿같은 사랑' 주연배우 하영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문 이력을 소개한 후 '증조부 친일 의혹'에 휘말렸다. 이 논란은 단순한 공방을 넘어 인터뷰 중단 및 광고업계 '하영 지우기'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하자 하영은 1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그는 "그동안 저는 가족을 통해 전해들은 이야기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다"며 "부끄럽게도 그런 무지한 상태로 여러 자리에서 증조부에 대한 이야기를 가족의 자랑처럼 꺼내 왔다"고 했다.

이어 "이번 일을 계기로 관련 자료를 직접 찾아보는 과정에서 증조부의 친일적 행적을 알게 됐다"며 "일제 강점기라는 뼈아픈 시간을 지낸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족사를 가볍게 언급한 것을 반성한다"고 사과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7일 방송된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이었다. 이날 하영은 "증조할아버지께서 한양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하셨고 고종 황제를 진료하셨다"며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언니도 현재 내과의사라는 점을 전했다.

하지만 하영의 증조부가 1916년 친일 단체 '대정실업친목회(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초기에 소속사 측은 "친일 행적 관련 내용은 사실무근"이라고 강하게 부인했으나, 하루 뒤인 11일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는 기록이 실제로 존재함을 확인했다"며 입장을 번복하고 사과했다.

사실상 친일 의혹을 일부 인정하자 업계는 즉각적으로 '하영 지우기'에 나섰다.

하영을 모델로 기용한 브랜드는 잇따라 광고 노출을 중단하거나 비공개처리했다. 광고계는 기업 이미지에 민감한 만큼, 역사적 논란이 불거진 모델과 즉각 거리를 두는 방식을 택했던 것.

또한, 광복절 전날 진행하기로 했던 '이런 엿같은 사랑' 언론 인터뷰 등 홍보 일정이 줄줄이 취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함께 등장하는 정해인 등 출연진 인터뷰도 취소되는 등 불똥을 맞았다.

가장 큰 타격은 현재 공개 중인 넷플릭스 시리즈 '엿같은 사랑'이다. 작품의 주연급 배우가 역사적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해당 작품의 몰입도 저해는 물론 부정적인 여론이 작품 전체로 번지고 있다. 넷플릭스 측과 제작진은 사태의 추이를 예의주시하며 향후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크게 갈린다. 일각에서는 친일 행적이 확인된 인물의 후손이 그 과거를 외면한 채 조상을 미화하는 태도는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반면, 개인이 아니라 100년 전 조상의 행적을 근거로 현대의 후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과도한 연좌제라는 반발도 적지 않다.

하영의 부친 안병문씨가 "조부 안상호가 항일 운동의 최전선에서 힘써온 의친왕을 보필한 분"이라고 기억한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가족 내에서 전해 온 "진실"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완전하고, 왜곡됐을 수도 있지만, 부친이 알고 있던 "가족의 역사"는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10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안상호의 "업적"만 남았고, "과오"는 기록에서 사라졌다. 부모가 자식에게 가르칠 때, 조상이 후대에 남길 이야기를 선택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랑스러운 것만 전하려고 하는 것은 본능이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심용환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은 11일 SNS를 통해 특정 인물을 '친일파'로 단정하는 분위기에 우려를 표했다.

심 소장은 "당시 대정친목회 소속이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존경받을 인물이 아닐 수 있지만, 명확한 '친일 부역 행위'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단체 가입 사실만으로 '친일파'라고 규정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여배우로서 인식이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누군가를 쉽게 '친일파'로 단정하면 우리가 비판하고 기억해야 할 역사적 기준마저 흐려질 수 있다"며 객관적인 잣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하영의 증조부 논란은 단순한 연예계 해프닝을 넘어, 우리 사회가 역사적 유산을 어떻게 직면하고 평가할 것인지에 대해 무거운 숙제를 남겼다. 향후 업계의 조치와 대중의 여론이 어떻게 흘러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