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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돈이 아니라 '이것'…롤모델과 미래에 대한 상상 [정인호의 통섭의 경영학]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많은 사람들은 이 실화를 특별한 천재의 성공담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한 사람의 성공을 보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삶은 달라질 수 있을까?”이다. 2026년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에 발표된 「Future in Mind: Aspirations and Long-Run Outcomes in Rural Ethiopia」는 이에 대한 흥미로운 답을 제시했다.
경제학은 오랫동안 빈곤을 돈과 자산의 부족으로 설명해 왔다. 하지만 최근 연구는 또 다른 원인에 주목한다. 가난이 지속되면 미래에 대한 기대 자체가 낮아진다는 것이다. 주변에 성공한 사람을 본 적이 없고 노력해도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현재를 희생하며 미래를 위해 투자할 이유도 사라진다.
연구진은 이러한 ‘열망(aspiration)’이 실제 행동을 바꿀 수 있는지 검증했다. 연구는 에티오피아 도바(Doba) 지역의 64개 마을, 1152가구를 대상으로 약 5년간 진행됐다. 당시 이 지역은 가구의 69%가 하루 1.9달러 미만의 생활비로 살았고 TV를 보유한 가구는 단 한 곳도 없을 정도로 빈곤이 심각했다.
첫 번째 실험집단에는 자신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출발해 자립에 성공한 농촌 주민 네 명의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었다. 두 번째 집단은 코미디 프로그램을 시청했고, 세 번째 집단은 영상 없이 설문조사에만 참여했다.
놀라운 변화는 시간이 흐른 뒤 차츰 나타났다. 롤모델 영상을 본 주민들은 하루 평균 약 한 시간 더 농장에서 일했고, 개량종자와 비료에 투자하는 비율은 10%포인트, 가축 사료와 수의용품에 투자하는 비율 역시 10%포인트 높아졌다. 농기구 등 생산 자산은 약 20% 증가했다.
교육에 대한 투자도 크게 달라졌다.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자녀들의 초등학교 이수율은 대조군의 약 2배였고, 교육비 지출은 36% 증가했다. 흥미로운 점은 영상 속에서 교육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았음에도 주민들이 스스로 교육을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판단했다는 사실이다.
생활 수준 역시 개선됐다. 내구재 자산은 29%, 주택 자산 가치는 27% 증가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사람들의 열망 수준 자체가 유의하게 높아졌다는 점이다. 반면 코미디 프로그램을 시청한 집단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이 연구는 세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빈곤은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면 현재의 투자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이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이유는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일 수 있다.
둘째, 작은 개입도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일반적인 빈곤 퇴치 프로그램은 현금 지원이나 장기 교육처럼 막대한 비용이 든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단 한 번의 롤모델 영상 시청만으로도 5년 뒤 투자 행동과 자산, 교육 수준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모든 지역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의 마음속 미래를 바꾸는 개입 역시 중요한 정책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셋째, 가장 강력한 롤모델은 ‘나와 닮은 사람’이다. 세계적인 스타가 아니라 같은 마을, 같은 언어, 같은 가난 속에서 출발한 이웃이었기에 사람들은 “저 사람도 했으니 나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러한 원리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의사의 자녀가 의사가 되고, 교수의 자녀가 교수가 되며, 연예인의 자녀가 연예인이 되는 현상은 단순히 경제적 지원이나 교육 환경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 직업을 매일 보고 자라면서 '나도 할 수 있는 삶'으로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숙한 롤모델은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을 바꾸고, 미래를 설계하는 방식까지 바꾼다.
이 원리는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직원들에게 최고경영자의 화려한 성공담을 반복해서 들려주는 것보다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한 선배의 경험을 공유하는 편이 훨씬 강력한 동기를 만들어낸다. 같은 업무를 하며 시행착오를 겪고도 성과를 만들어낸 선배의 이야기는 직원들에게 '저 사람도 해냈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타고난 천재의 성공담보다 평범한 학생이 실패와 좌절을 극복하며 성장한 과정을 자신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인다. 진로 특강에서 졸업생의 경험담이,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선배의 조언이 큰 영향을 미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롤모델일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되고, 그 상상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경영평론가(ijeong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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