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도 줄서는 토종 IT기기 테스트 기업
국내에서 출시되는 모든 스마트폰과 통신 장비는 시장에 나오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다. 제품 작동에 문제는 없는지, 인체해 해로운 전자파 방출량이 기준에 맞는지 등을 테스트하는 시험검측 과정이다. 신제품의 운명을 가르는 이 결정적 검증을 오차 없이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국내 토종 민간 기업은 현재 에이치시티(HCT)가 사실상 유일하다. 기존의 경쟁사들은 글로벌 공룡기업들에게 모두 인수합병(M&A)됐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에이치시티 본사 시험 현장에 들어서니 SF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사방 벽과 천장이 온통 바둑판처럼 정교한 특수 백색 흡수체로 채워진 ‘전파 암실’(사진)이었다. 이곳에는 하루에 수백~수천대의 전자제품들이 거쳐간다. 외부의 모든 전파 노이즈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기기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오차 없이 흡수해 출시 전 단계의 스마트폰, 무선 통신기기의 인체 흡수율과 오작동 여부를 극한까지 검증하는 곳이다.

또 다른 핵심 설비는 전면의 거대한 원형 도어에 ‘TVC(Thermal Vacuum Chamber)’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진공열선시험기다. 이 첨단 챔버는 우주 공간의 극단적인 진공 상태, 영하와 영상 수십도를 오가는 혹독한 온도 변화를 지상에서 구현했다. 위성 부품, 우주항공 장비가 지구를 떠나 우주로 발사된 후 단 한 번의 오작동도 일으키지 않도록 완벽한 생존 테스트를 진행하는 핵심 장비다. 에이치시티는 배터리, 바이오 등 분야로도 시험인증 영역을 넓히고 있다.

공동창업자인 허봉재 대표는 “아무리 혁신적인 제품이라도 보이지 않는 전파 환경 속에서 까다로운 테스트를 통과해 합격 도장을 받아야 비로소 세상에 나올 수 있다”며 “우리가 찍어주는 최종 관문의 통과 도장이 글로벌 시장으로 향하는 신뢰의 마침표가 된다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10년 전만 해도 국내 시험검측 기업이 여러 곳 있었다고. 하지만 독일·미국·영국 국적 글로벌 대형 시험인증 공룡들에게 차례로 인수합병됐다. 에이치시티는 이런 제안을 수차례 거절해왔다. 제품 인증을 통과하려면 회로도, 블록 다이어그램, 부품 리스트(BOM) 등 기업의 핵심 기밀 기술이 고스란히 노출되는데 자칫 국내 기업들의 원천 기술이 해외 자본으로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허 대표는 “토종 기술과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절대 해외에 회사를 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도 줄서는 토종 IT기기 테스트 기업
에이치시티는 미국에서 5년 안에 연매출 1500억원을 올리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약 400억원을 투입해 대규모 시험소를 구축했고 미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공식 인증 권한을 획득했다. 1차 타깃은 미국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 2차 타깃은 미국 현지 기업이다. 허 대표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도 시험소를 세웠다”며 “동남아 거점으로 키울 것”이라고 했다.

에이치시티는 해외 실적을 기반으로 5년 뒤 나스닥 상장도 계획하고 있다. 허 대표는 “해외진출을 통해 현재 1000억원대인 매출을 2~3배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 시나리오대로라면 나스닥 상장 시 시가총액이 수천억원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천=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