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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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재산 환수 소송이 20년 가까이 이어졌던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스위스그랜드호텔 땅에 34층 아파트 1358가구를 짓는 사업을 두고 주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호텔 객실이 3년째 줄어드는 와중에 강북권 대형 숙박시설이 주거단지로 바뀌는 데다, 주민 설명 절차 없이 자금 조달만 앞서 나갔다는 주장이다. 2종 일반주거지역이라 12층까지만 지을 수 있는 땅에 34층 계획이 잡히면서 용도지역 상향을 둘러싼 특혜 시비도 불거졌다.

28일 개발업계에 따르면 스위스그랜드호텔 부지 매매계약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2021년 이후 다섯 해 가까이 매각 논의가 오가다 번번이 틀어졌던 3만9101㎡ 규모 땅이다. 거래 규모는 5000억원 안팎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시행사는 호텔을 헐고 공동주택 단지를 짓겠다는 계획이다. 사업지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논란으로 오래 갈등을 빚어왔다. 정부는 2021년 홍은동 임야 2만7905㎡를 국고로 환수하겠다며 소송을 냈지만 2023년 대법원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제3자가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얻은 권리까지 해칠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 항소심에서 환수가 인정된 건 4㎡ 한 필지뿐이었다.

인허가가 최대 관문이다. 기존 호텔은 예전 기준을 적용받아 백련산 자락에 고층으로 올라갔지만, 아파트는 현행 규제를 그대로 받는다. 지금 이 땅은 2종 일반주거지역이라 12층까지만 지을 수 있다. 개발계획은 지하 5층~지상 34층, 9개 동, 1358가구다. 준주거지역 수준까지 종상향이 돼야 성립하는 규모다. 종상향으로 생기는 개발이익은 사업자가 애초 가진 권리가 아니라 행정의 결정으로 새로 만들어지는 몫이다. 토지를 사들였다는 사실만으로 34층 개발권까지 확보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상향이 승인되면 친일재산 논란이 남은 땅에 행정이 특혜를 얹어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주민들은 백련산과 맞닿은 경관 훼손을 먼저 문제 삼는다. 34층 단지가 들어서면 주변 주택의 일조와 조망이 가려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하철역과 떨어진 구릉지에 고밀 개발을 허용할 명분이 있느냐는 반론도 있다. 서대문구의 한 주민은 “주민 설명회 없이 금융 조달과 인허가만 앞서 나간다”고 말했다.

호텔이 통째로 사라진다는 점도 쟁점이다. 2001년 문을 연 이 호텔은 객실 396실과 레지던스, 대형 연회장과 웨딩홀, 컨벤션시설을 한 부지에 갖춘 서울 서북권의 대표적 복합 숙박시설이다. 호텔 측은 매각 전 직접고용 인원을 600명가량으로 추산한다. 아파트로 바뀌면 이런 상시 일자리와 연회·컨벤션 기능도 함께 없어진다. 서울 관광호텔은 2020년 331곳 5만4190실에서 지난해 317곳 5만3503실로 줄었다. 2023년 이후 신규 공급은 연 1000실 안팎에 그쳤다. 반면 지난해 방한 외국인은 1893만 명으로 역대 최대였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