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오른쪽)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엔비디아 사옥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네이버 제공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오른쪽)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엔비디아 사옥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네이버 제공
네이버가 엔비디아를 대상으로 10억달러(약 1조4809억원) 규모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한다고 27일 공시했다. 엔비디아는 네이버 주식 4.5%(신주 724만1564주)를 취득해 국민연금, 블랙록에 이은 3대주주에 오른다.

네이버는 ‘인공지능(AI) 팩토리 관련 신규 사업 추진’을 유상증자 목적으로 공시했다. 네이버는 엔비디아의 자본과 그래픽처리장치(GPU) 공급망을, 엔비디아는 네이버의 데이터센터 운영 능력을 활용해 AI 팩토리 사업을 함께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대체자산운용사 브룩필드는 90억달러(약 13조2100억원) 규모 인프라 투자를 맡을 예정이다.

네이버는 엔비디아의 AI 팩토리 플랫폼 DSX를 도입해 내년 상반기 세종시에서 55메가와트(㎿) 규모 데이터센터를 가동할 계획이다. 이후 용량을 확대해 1기가와트(GW)까지 늘린다.

신주 발행가액은 20만4500원이며 상장 예정일은 오는 11월 20일이다. 네이버는 신주 발행에 따른 기존 주주 지분 희석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사주 소각도 병행한다고 공시했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그간 축적한 데이터센터 운영 기술과 노하우를 글로벌 무대로 확장할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고 말했다.
HW·SW 다 갖춘 네이버…젠슨 황 '소버린 AI' 선봉장으로 낙점
2010년대 글로벌 맹주를 노리는 국가대표 정보기술(IT) 기업이던 네이버는 언젠가부터 내수 쇼핑 플랫폼으로 전락했다는 박한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좀처럼 글로벌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캐시카우’인 국내 커머스시장의 과점적 지위에 안주하기 시작했다는 냉정한 지적이었다.

하지만 네이버가 1조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업 엔비디아를 3대주주로 맞이한다고 27일 공시하자 이 같은 우려는 단숨에 지워졌다. 업계에선 네이버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운영 능력과 자체 대규모언어모델(LLM) 역량, 유럽·중동 등 지역의 소버린 AI 네트워크가 엔비디아를 사로잡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 네이버의 ‘AI 실전’ 경험 주목

“네이버는 한국을 대표하는 AI 클라우드 기업이다. 우선 한국에서 AI 인프라를 확대한 뒤 글로벌 시장으로 사업을 넓혀갈 계획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미국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네이버에 대해 내린 평가다. 엔비디아는 최근 단순 그래픽처리장치(GPU) 공급을 넘어 데이터센터를 ‘지능 생산 공장’으로 재정의한 대규모 AI 팩토리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GPU 공급에서 AI 플랫폼 공급으로 단위를 끌어올리면서 그만큼 사업의 복잡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 세계를 통틀어 기가와트(GW)급 AI 팩토리는 두 곳뿐이다. 아마존과 앤트로픽의 ‘뉴칼라일’(미국 인디애나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AI 기업인 xAI가 짓고 있는 ‘콜로서스2’(미국 테네시주)다. 업계 관계자는 “GW급 AI 팩토리는 초기 투자 비용만 80조원이 넘고 규모가 커 기술적 복잡성이 높다”며 “미국 밖에서 관련 인력과 경험을 쌓은 파트너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엔비디아가 이 같은 복잡한 사업의 파트너로 네이버의 손을 잡은 데엔 ‘AI 풀스택’ 역량이 결정적 배경으로 꼽힌다. 네이버는 AI 모델과 클라우드, 서비스 운영 역량까지 갖춰 AI 풀스택에서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자 LLM ‘하이퍼클로바X’를 개발했고, 2023년부터 아시아 최대 규모 데이터센터인 ‘각 세종’을 차질 없이 운영 중이다. 여기에 GPU 클러스터, AI 플랫폼, 대규모 생성형 AI 서비스까지 아우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얼핏 보면 엔비디아의 네이버 낙점은 직접 자금을 투입해 수요를 창출하는 ‘벤더파이낸싱’의 글로벌 버전이지만, 네이버는 해외 사업파트너라는 점에서 다소 다르다”며 “엔비디아도 미국 외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즉시 실행 가능한 풀스택 AI 역량을 갖춘 네이버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 유럽·중동 등 소버린 AI 시장 공략

이 같은 관점에서 네이버는 엔비디아가 적극 추진하는 소버린 AI 시장 공략을 위한 ‘선봉장’이기도 하다. AI 자본 지출이 계속되고 있지만 엔비디아의 주요 고객인 미국 하이퍼스케일러는 구글 텐서처리장치(TPU), 아마존 트레이니엄처럼 자체 반도체를 통해 GPU 의존도를 낮추려고 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엔비디아로서는 미국 외 수요인 국가 단위 소버린 AI가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네이버는 미국과 중국 외에서 AI 인프라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드문 기업으로 꼽힌다. 네이버는 2023년 사우디아라비아 주택부로부터 리야드 등 5개 도시의 디지털 트윈 플랫폼 사업을 수주하며 중동 시장에서 실적을 쌓았다. 2024년에는 아람코와 하이퍼클로바X 기술로 아랍어 특화 LLM을 개발해 중동에 공급한다는 구상을 내놓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걸프 국가들은 미국 빅테크에 데이터를 맡기기도, 중국 기술을 쓰기도 부담스러워한다”며 “종속 부담이 없으면서 기술력은 검증된 한국 기업은 이들에게 ‘제3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와 엔비디아는 한국 사업에 그치지 않고 소버린 AI를 추구하는 유럽, 중동, 동남아시아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네이버에 그동안 부족했던 자금과 투자 역량은 AI 인프라 분야 대체자산 운용사인 브룩필드가 메울 것으로 전망된다. 브룩필드는 GPU와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 구축에 최대 90억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의 비구속적 조건부합의서를 네이버와 맺었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그동안 네이버가 안고 있던 어려움은 축적한 지식과 운영 노하우를 대규모로 확장하는 것이었다”며 “두 회사의 자본뿐 아니라 글로벌 브랜드와 네트워크가 네이버의 노하우를 확장하는 데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