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 9단이 19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쎈수학·한경 기신전’ 3연전 2국에서 인공지능(AI) 카타고와 대국을 펼치고 있다. 이날 신 9단은 흑 네 집 반 승을 거두며 1국의 패배를 설욕했다.  이솔 기자
신진서 9단이 19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쎈수학·한경 기신전’ 3연전 2국에서 인공지능(AI) 카타고와 대국을 펼치고 있다. 이날 신 9단은 흑 네 집 반 승을 거두며 1국의 패배를 설욕했다. 이솔 기자
바둑 세계랭킹 1위 신진서 9단이 인공지능(AI) 카타고와의 두 점 접바둑 공식 대국에서 첫 승을 올렸다. 두 점 치수는 인간이 ‘바둑의 신’ AI를 상대로 정면 승부를 벌일 수 있는 극한의 조건이다.

신 9단은 이날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쎈수학·한경 기신전(棋神戰) 3연전 2국에서 4시간50분간의 혈투 끝에 290수 만에 흑 네 집 반 승을 거뒀다. 지난 17일 1국에서는 카타고의 변칙적인 두 번째 수에 말려 완패했다. 하지만 이날은 인내와 끈기를 앞세워 국면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신 9단에게는 제한 시간 5시간과 30초 초읽기 1회가 주어졌고 카타고는 20초 안에 둬야 했다.

신 9단은 초반 우하귀에서 초대형 정석을 유도해 차분하게 판을 이끌었다. 승부처는 중앙 전투였다. 1국에서 신 9단은 너무 빨리 중앙 싸움에 나서 승기를 뺏겼지만 이날은 초반 초대형 정석으로 변수를 크게 줄인 뒤 중앙에서 격돌했다. 카타고는 끊임없이 변칙적 수를 내놓으며 신 9단의 전투 본능을 자극했다. 신 9단은 정확한 수읽기로 도발을 차단하다가 결정적일 때 160수의 끊는 수로 응징했다. 179수에서 카타고가 둔 강력한 승부수로 순간 집 차이가 크게 줄었지만 신 9단은 완벽한 수읽기로 수습했고, 끝내기까지 빈틈없이 마무리하며 승리를 확정지었다.

이날 대국을 생중계한 유튜브 한국경제TV 채널에는 동시접속자 3만7000여 명이 몰려 신 9단의 도전을 응원했다. 대국 뒤 그는 “네 집 반 차이는 지금까지 내가 AI와 치른 대국 중 가장 큰 차이의 승리”라며 “3국에서도 오늘처럼 후반까지 다섯 집 차이를 유지하며 이기는 바둑을 두겠다”고 말했다.

쎈수학·한경 기신전 최종 3국은 21일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오전 10시부터 열리며 바둑TV에서 실시간 중계한다.
신진서 9단이 19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쎈수학·한경 기신전’ 2국에서 바둑 인공지능(AI) 카타고에 승리했다. 신 9단이 대국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이솔 기자
신진서 9단이 19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쎈수학·한경 기신전’ 2국에서 바둑 인공지능(AI) 카타고에 승리했다. 신 9단이 대국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이솔 기자

완벽한 수읽기에 '카사범'도 쩔쩔…'申의 한 수'는 인내심이었다
신진서, 카타고와 2국서 승리…21일 최종전 '운명의 한판'

‘인간 대표’ 신진서 9단의 완패 뒤 열린 두 번째 대국. 1국에서 변칙적인 수로 신 9단을 흔들며 일찌감치 압승을 거둔 카타고는 이날도 첫 수를 화점에 뒀다.

신 9단의 첫 수는 소목에서 화점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카타고는 바로 삼삼에 들어갔다. 인공지능(AI) 시대를 거치며 인간 바둑에서도 완전히 자리 잡은 대표적인 정석이다.

백17로 젖혔을 때 신 9단은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간명한 정석으로 갈 것인지, 복잡한 대형 정석으로 유도할 것인지. 접바둑에서는 초반에 대형 정석이 나오면 흑이 유리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판이 많이 채워질수록 백이 형세를 뒤집을 여지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신 9단 역시 대형 정석으로 카타고를 끌어들이는 선택을 했고, 1국과 달리 자신의 페이스로 초반을 이끌 수 있었다.

우하귀 정석이 마무리되자 바둑판의 4분의 1이 채워졌다. 집 차이도 시작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검토실에서 “카타고의 포석 실패가 아니냐”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신 9단에게는 더없이 만족스러운 출발이었다.

흑62 역시 불필요한 전투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착수다. 백147의 곳으로 우변 백 두 점을 모자 씌워 공격하는 것이 AI가 제시한 블루 스폿이기도 했고, 신 9단 역시 가장 먼저 떠올렸을 법하다. 하지만 신 9단은 복잡한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며 우세를 굳혀갔다. 흑82로 꾹 참고 이은 수도 평소 신 9단의 기풍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백85는 AI 특유의 유연한 감각이 돋보인 한 수였다. 사람이라면 2선으로 젖혀서 받았을 자리지만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은 발상으로 검토실의 프로들에게 호수로 평가받았다.

흑114까지 진행된 시점에도 승률 그래프는 여전히 99% 흑의 우세를 나타냈다. 집 차이도 10집 안팎. 특별히 공격당할 약한 돌도 없었고 집의 윤곽 역시 어느 정도 갖춰졌다.

평범한 진행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카타고가 승부수를 던졌다. 카타고는 백115·117로 흔들기에 나섰다.

백117의 끊음을 당하자 신 9단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장고에 들어갔다. 10여 분을 생각한 뒤 중앙으로 뻗은 흑118은 실리를 다소 포기하더라도 중앙을 두텁게 하겠다는 뜻이었다. 1국 중앙 승부처에서 어려움을 겪은 만큼 이날은 같은 흐름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한 수였다.

다만 이때 조금 더 좋은 수가 있었다. AI는 118의 뻗음 대신 입구자를 추천했다. 인간이라면 떠올리기 힘든 행마지만 놓이고 보니 의미가 명확히 이해된다. 어차피 실전의 진행이 될 수밖에 없는데, 흑돌이 118의 곳보다 한 칸 아래 호구 모양으로 있는 것이 훨씬 좋은 모양이다. 이 선택이었다면 1집가량을 더 지켜낼 수 있었다.

백155까지 진행되자 이제 남은 승부처는 중앙뿐이었다. 카타고가 백157로 날일자 행마를 선보이자 신 9단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나와 끊는 수(158·160)를 택했다. 초반부터 안전하게 우세를 지켜오던 신 9단이 먼저 전투를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 승부는 계산이 아니라 수읽기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흑이 우세한 형세는 여전했지만 국면이 더 복잡해져 해설진과 검토실 모두 불안한 시선으로 다음 수를 기다렸다.

신 9단은 완벽한 수읽기로 이를 기우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다소 위험해 보이는 결단이었지만 대국이 마무리되자 검토실의 프로기사들은 오히려 승착으로 평가했다.

미지의 영역인 중앙에서 신 9단은 과감하게 정면 승부를 택해 백 대마를 압박하며 자연스럽게 중앙을 정리했다.

신 9단이 백 대마를 압박해가자 카타고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흑180의 강수에 이어진 백181·183·185는 의미를 찾기 어려운 수순이다. AI가 최선의 대응을 찾지 못할 때 종종 나오는 수순으로, 신 9단의 승리가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흑194가 이날 승리를 확정 짓는 마지막 결정타였다. 유일한 승리의 길을 신 9단은 정확히 찾아냈다. 1국에서 카타고의 신수에 당황했다고 밝힌 그는 더욱 철저한 준비를 다짐했고, 2국은 그 다짐을 증명한 한 판이었다. 1국에서는 중앙에서 무너졌지만 이날은 중앙에서 승부를 결정지으며 의미 있는 1승을 거뒀다.

조수영/고재연 기자/채현지 월간바둑 필자·아마6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