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꽃’은 중반부입니다.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초반 50수, 후반 끝내기 패턴은 많이 정립됐지만 중반은 여전히 한 수 한 수 자신의 생각으로 만드는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이죠. 카타고의 기술과 도발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저의 바둑을 지켜 승리하겠습니다.”

14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기자들과 만난 신진서 9단(26)의 목소리는 담담하지만 자신감이 묻어났다. 오는 17일부터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TV에서 열리는 ‘쎈수학·한경 기신전(棋神戰)’에서 바둑 AI 카타고와의 대국을 앞두고 신 9단은 “최선을 다해 지지 않는 바둑을 해내겠다”고 도전장을 던졌다.

◇5시간 주어져도 “장고 능사 아니다”

< 승리 다짐 > 신진서 9단이 14일 서울 마장동 한국기원 신관에서 열린 ‘쎈수학·한경 기신전’ 기자회견에서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이솔 기자
< 승리 다짐 > 신진서 9단이 14일 서울 마장동 한국기원 신관에서 열린 ‘쎈수학·한경 기신전’ 기자회견에서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이솔 기자
17일과 19일, 21일 세 번의 대국으로 열리는 쎈수학·한경 기신전은 한경미디어그룹이 주최하고 한국기원이 주관하며 좋은책신사고가 기획·후원하는 행사다. 이번 대회는 AI와 인간 사이에 엄존하는 실력 격차를 감안해 신 9단이 두 점을 먼저 놓고 시작하는 접바둑 방식을 채택했다.

신 9단은 회당 대국료 5000만원에 판당 승리수당 5000만원을 받는다. 신 9단이 2승 이상을 거두면 현대자동차의 최고급 세단 제네시스 G90을 부상으로 받는다.

신 9단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5시간, 이후에는 수당 초읽기 30초가 주어지지만 카타고는 모든 수를 20초 안에 둬야 한다. 신 9단은 “인간이 오래 생각하는 동안 AI 역시 더 많은 사고를 할 것이기 때문에 빠른 착점이 중요하다”며 속도감 있는 경기를 예고했다.

2019년 이후 단 한 번도 세계 랭킹 1위에서 내려온 적 없는 이 시대 최강 바둑기사에게도 AI와의 두 점 접바둑은 만만찮은 도전이다. 그는 “대국 제안을 받기 전까지 AI를 상대로 석 점 접바둑으로는 한 판도 지지 않았지만 두 점으로는 한 판도 이겨보지 못했다”며 “연구를 거듭할수록 이기는 대국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승률은 여전히 50%를 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실전에서는 저 역시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에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인간 바둑 생명력 보여주겠다”


"전투는 자살행위"…신진서, 괴물 AI와 '숨막히는 방어전' 펼친다
신 9단의 상대로 나서는 카타고는 타이젬이 그래픽카드 RTX 3090 4개를 병렬 결합한 전용 시스템으로 특수 구축했다. 현재 최고 사양 그래픽카드는 RTX 5090이지만 부피와 발열 구조상 서버에 꽂는 게 불가능해 RTX 3090을 4개나 결합해 최고 성능을 구현했다.

역대 최강 모델을 상대로 신 9단은 후반 끝내기까지 2점 우위의 유리한 판을 끌어가는 ‘잔잔한 바둑’으로 승부를 본다는 전략이다.

그는 “AI와의 대국에서 전투는 ‘자살행위’와 같다”며 “아무리 정수일지라도 전투로 이어지는 수라면 절대 둬서는 안 된다. 이를 참아내기 위해 공격 본능을 누르고 끝까지 호흡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초중반에 승률 99%가 98%, 97%로 떨어진다면 제가 판을 잘못 짰다는 뜻이고 큰 위험 신호”라며 “99%대를 얼마나 오래 지킬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만약 바둑이 전투 양상으로 흘러간다면 자신의 승률은 10% 미만, 후반 끝내기까지 잔잔하게 판을 지켜낸다면 60~70%의 확률로 승리를 기대해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신 9단은 이번 기신전을 통해 인간 바둑이 지닌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줄 생각이다. 그는 “바둑을 잘 모르는 대중도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도록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이기는 바둑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