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무 한양대 교수 "인문학도 꿈꾼 공대생…이제 서울의 미래 그리죠"
서울대 공과대학 1학년 때였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그는 인문사회계열인 심리학과로 진학하기 위해 재수를 고민했다. 방황하던 그를 붙잡은 것은 선배의 한마디였다. “공대에도 도시 전체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전공이 있다.” 귀가 번쩍 띄는 듯했다. 마음을 바꾼 그는 2학년 때 토목공학과에 설치된 도시공학을 선택했다. 40여 년이 흐른 현재 그는 수도 서울의 미래를 설계하는 자리에 올랐다.

지난 6일 서울시 제5대 서울총괄건축가로 위촉된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63·사진)의 이야기다. 승효상, 김영준 등 국내 대표 건축가가 맡아온 이 자리에 도시계획 및 주택정책을 전공한 학자가 임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기는 2028년 7월 5일까지 2년이다.

◇서울 그린벨트 연구로 美박사 취득

이 교수는 13일 인터뷰에서 “도시 공간의 80%는 주택”이라며 “주거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도시의 모습이 달라지는 만큼 주택 정책과 도시계획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그의 직위 자체를 ‘서울총괄건축가’에서 ‘서울총괄계획가’로 격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그의 역할도 기존 건축과 도시 디자인을 넘어 도시 정책 전반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 교수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도시설계를 전공한 뒤 1990년대 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연구조교로 일하며 처음 맡은 과제는 뉴욕 고급주택의 반복매매지수를 산출하는 일이었다. 실거래 자료를 활용해 주택 가격지수를 개발하는 이 연구는 이후 그의 학문적 기반이 됐다. 박사 과정에선 도시경제학의 세계적인 석학인 피터 리네만 교수와 함께 한국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정책을 연구했다. 처음에는 그린벨트의 필요성을 입증하려고 했지만 실제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성장하는 도시에서 그린벨트는 비효율적인 규제가 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서울 주변의 그린벨트 개발이 제한되자 경기 화성 동탄 등 외곽 신도시 개발이 확대됐고, 그 결과 많은 시민이 장거리 출퇴근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는 것이다.

◇“직주근접으로 사회적 비용 줄여야”

그는 총괄건축가의 역할을 ‘어사(御史)’에 비유했다. 필요하면 어느 부서든 찾아가 의견을 듣고 정책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실무 부서에선 각자의 업무에 집중하다 보니 큰 그림을 놓치기 쉽다”며 “서울 전체의 큰 방향을 제시하고 정책 간 연결고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역시 당면 과제는 주택 공급이다. 그는 “서울의 주택 문제는 경기·인천을 포함한 수도권 전체를 놓고 살펴야 한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 가운데 서울의 평균 통근 시간이 가장 긴 만큼 직주근접 실현을 통해 사회적 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개발·재건축 이주 대책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그는 “서울시가 31만 가구 공급 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주민이 머물 주택이 부족하면 정비사업은 속도를 내기 어렵다”며 “다세대주택과 오피스텔 등 대체 주거를 활용하고 3기 신도시 공급과 연계해 주거 이동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세훈 시장이 추진하는 녹지 확대 정책에도 공감한다. 이 교수는 “강북 도심에서 과거 방치된 공간이 수변쉼터와 소규모 녹지로 바뀐 곳이 많다”며 “이런 자투리 공간이 시민의 삶의 질을 크게 높인다”고 했다.

박종필/사진=이솔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