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이 유연한 미국에서는 경기가 나쁠 때 이뤄지던 대규모 해고가 인공지능(AI) 보급으로 일상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빅테크를 필두로 실적과 무관하게 인력을 덜어내는 ‘상시 해고’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12일(현지시간)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미국 기술기업이 높은 수익을 내면서도 사업 전략 재편에 맞춰 반복적으로 인력을 감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주 마이크로소프트는 약 4800명을 감원 대상으로 확정했으며 아마존, 메타 등에서도 최근 몇 년 동안 해고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네트워크 장비업체 시스코는 최근 분기 기준 사상 최대 매출을 내고도 전체 인력의 약 5%를 줄이겠다고 했다.

AI발 불확실성이 그 원인이다. AI가 어떤 방식으로 발전할지, 자사 사업을 어떻게 재편할지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인력을 일단 줄이고 보는 것이다. 기업분석업체 알파센스가 여러 산업의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을 분석한 결과 ‘감원’과 ‘AI’가 같은 문장 안에 언급된 횟수는 2022년 분기당 5회 미만에서 올해는 분기당 100회 이상으로 늘었다.

빅테크는 해고로 절감한 비용을 값비싼 AI 투자에 쏟아붓는다. 조지프 풀러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경쟁사보다 AI 투자에 뒤처질 수 있다는 압박이 커지면서 경영진의 판단도 감원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짚었다. 일각에서는 “AI로 생산성을 끌어올렸음을 주주 및 이사회에 입증하기 위해 해고를 단행하는 사례도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같은 상시 해고는 조직 전반의 안정감을 해치는 문제로 이어진다. 해고가 수개월간 계속되면 남은 직원도 불안에 떨고, 동료를 떠나보낸 채 자리를 지켰다는 ‘생존자 죄책감’이 번지기도 한다. 기업의 경쟁력을 떠받치던 구성원 간 신뢰와 오랜 협업으로 쌓인 노하우도 약해진다.

일부 기업에서는 AI가 대신하리라 믿으며 없앤 직무에 다시 사람을 채용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무계획적으로 단행된 해고에 감원 규모가 지나치게 커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제프리 페퍼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상시 해고가 경영 수단으로 자리 잡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미리 기자 miri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