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장품 기업들이 가성비, 속도, 현지화를 앞세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조이그룹
중국 화장품 기업들이 가성비, 속도, 현지화를 앞세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조이그룹
중국 화장품이 동남아시아 시장을 발판으로 빠르게 약진하고 있다. 한류와 케이(K)팝을 등에 업고 세계 2위 화장품 수출국으로 올라선 한국을 당장 추월한 건 아니지만 가격 경쟁력과 빠른 제품 출시, 라이브커머스 운영 능력을 앞세워 K뷰티의 성장 지역을 파고들고 있다.

가성비·속도·할랄 앞세워 빈틈 공략

7일 블룸버그통신과 현지 화장품업계에 따르면 중국 내수 화장품 시장의 경쟁이 격화하자 중국 화장품 기업들은 해외 진출을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눈에 띄는 건 미국·유럽보다 동남아시아와 중동, 라틴아메리카를 우선 공략하고 있는 점이다. 중국 화장품 기업들은 싸고 빠른 화장품 이미지를 넘어 현지 소비자에게 맞춘 색조·스킨케어 제품과 할랄 인증, 중국 드라마·숏폼 콘텐츠를 결합한 문화적 브랜드 파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중국 화장품 기업의 해외 진출은 광범위하게 확산 중이다. 일본과 한국이 먼저 밟았던 경로를 중국이 그대로 뒤따르고 있다는 평가도 많다.

제조업 경쟁력이 일정 수준에 오른 뒤 음악, 드라마, 영화, 패션, 미용 스타일을 함께 수출하고, 이를 구현하는 제품까지 팔아 해외 소비자를 붙잡는 방식이 일본이나 한국의 마케팅 방식과 유사하다는 이유에서다.
'더우인 메이크업' 인기를 타고 중국 화장품 기업들이 동남아시아를 집중 공략하고 있다. 바이두 캡처
'더우인 메이크업' 인기를 타고 중국 화장품 기업들이 동남아시아를 집중 공략하고 있다. 바이두 캡처
한국은 K팝과 K드라마를 기반으로 K뷰티를 세계 시장에 확산했다. 중국은 아직 그 영향력이 한국만큼 광범위하진 않지만 더우인과 틱톡, 중국 온라인 쇼핑 생태계, 숏폼 메이크업 트렌드를 앞세워 이른바 씨(C)뷰티의 해외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수치로 보면 한국과 중국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한국 화장품 수출은 지난해 114억달러(약 17조4110억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을 제치고 프랑스에 이은 세계 2위 화장품 수출국에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중국 화장품 수출은 지난해 57억달러 수준으로, 한국의 절반 가량이다.

다만 블룸버그는 "중국의 아세안 10개국 대상 화장품·퍼스널케어 제품 수출은 최근 5년간 두 배 이상 늘었다"며 "C뷰티의 최대 승부처는 미국이나 유럽 백화점이 아니라 동남아시아"라고 분석했다.
중국 화장품 기업들이 가성비, 속도, 현지화를 앞세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조이그룹
중국 화장품 기업들이 가성비, 속도, 현지화를 앞세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조이그룹
실제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 인구 대국이자 중국 화장품의 핵심 수출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젊은 소비자가 많은 편이다. 아울러 모바일 쇼핑과 숏폼 콘텐츠 소비가 활발하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무슬림 소비자가 많은 시장이 포함돼 있어 할랄 화장품 수요도 크다. 동남아시아 할랄 스킨케어 시장은 올해 15억1350만달러에서 2033년 31억8360만달러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韓 성공 공식 그대로, 숏폼 타고 성장

중국 화장품 기업들이 동남아시아에서 사업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내수 시장의 한계가 있다. 중국 화장품 시장은 지난 수년간 국산 브랜드와 글로벌 브랜드, 온라인 신생 브랜드가 동시에 경쟁하면서 가격 할인과 마케팅 비용 부담이 커졌다.

중국 소비 부진과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프리미엄 소비도 예전만큼 강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중국의 대표 화장품 기업 프로야의 경우 2024년 중국 화장품 브랜드 중 처음으로 연매출 100억위안을 넘긴 뒤 글로벌 10위권 진입을 목표로 해외 브랜드 인수와 해외 시장 개척을 병행하고 있다.

상하이의 화장품 기업 조이그룹도 대표적인 사례다. 조이그룹의 해외 매출은 3년 만에 10배 늘어 지난해 8700만달러에 달했다.
중국 화장품 기업들이 가성비, 속도, 현지화를 앞세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조이그룹
중국 화장품 기업들이 가성비, 속도, 현지화를 앞세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조이그룹
조이그룹은 2023년 중국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이후 동남아시아 확장을 본격화했다. 싱가포르에 첫 해외 오프라인 매장 3곳을 열었다. 이는 중국 화장품 기업들이 단순한 역직구 판매에서 벗어나 현지 매장, 약국 체인, 쇼핑몰 입점을 통해 브랜드 접점을 넓히고 있는 사례로 꼽힌다.

중국 화장품의 경쟁력은 가격이다. 중국 브랜드는 낮은 제조원가와 촘촘한 공급망, 빠른 패키징·제품 개발 체계를 갖추고 있다.

색조 화장품의 경우 신제품 출시 주기가 짧고, 더우인·샤오훙수·티몰 등에서 반응을 확인한 뒤 곧바로 제품 구성을 바꾸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이 모델은 동남아시아에서 통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소비자는 가격 민감도가 높고, 모바일 플랫폼을 통한 구매와 라이브커머스 구매가 활발하다. 중국 브랜드는 한국·일본 브랜드보다 낮은 가격대로 진입해 현지 소비자에게 가성비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다.

플랫폼 운영 능력도 좋은 편이다. 동남아시아 주요 온라인 쇼핑 생태계는 중국 플랫폼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중국 화장품 기업 입장에서는 중국에서 축적한 라이브커머스와 숏폼 마케팅 경험을 동남아시아에서 비교적 쉽게 재활용할 수 있는 구조다.
'더우인 메이크업' 인기를 타고 중국 화장품 기업들이 동남아시아를 집중 공략하고 있다. 바이두 캡처
'더우인 메이크업' 인기를 타고 중국 화장품 기업들이 동남아시아를 집중 공략하고 있다. 바이두 캡처
현지화 수준도 높다. 중국 색조 브랜드는 넓은 피부 톤을 겨냥한 제품군을 빠르게 내놓고 있다. 동남아시아 소비자는 국가별·민족별 피부 톤 차이가 크다. 파운데이션과 컨실러, 립 제품에서 색상 선택지가 넓을수록 현지 소비자를 붙잡기 쉽다.

할랄 인증은 중국 브랜드가 한국·일본 브랜드와 차별화할 수 있는 영역으로 분석된다. 중국 브랜드가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시장에서 할랄 인증을 앞세운다면 무슬림 소비자를 겨냥한 실질적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무엇보다 중국의 '더우인 메이크업'은 인형 같은 눈매와 립, 몽환적 이미지를 결합한 스타일로 동남아시아 틱톡 이용자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중국 애니메이션풍 미학이 더해지면서 단순한 화장법이 아니라 중국식 미감으로 소비되는 흐름이 생기고 있다. 한국이 K팝 스타와 드라마 배우를 통해 따라 하고 싶은 얼굴을 만든 것처럼 중국도 드라마와 숏폼 콘텐츠를 통해 C뷰티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블룸버그와 로이터통신 등은 "중국 브랜드는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와 정면 대결하거나 미국 백화점 채널을 곧바로 장악하기보다 인접 시장에서 규모를 키운 뒤 중동과 라틴아메리카로 확장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며 "온라인 초저가 판매만으로는 브랜드 지속성이 약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현지 유통 채널과 브랜드 경험을 동시에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아직 중국 화장품의 글로벌 브랜드 파워는 한국·프랑스·일본에 미치지 못한다"면서도 "K뷰티가 프리미엄과 기능성, 글로벌 유통망으로 고도화하고 있는 동안 C뷰티는 가격과 속도, 동남아시아 현지화로 빈틈을 파고들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