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에 사표 던진 회사원... 5년 뒤 맞은 '비극적 결말'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캐나다의 '국민 화가'
톰 톰슨(Tom Thomson)
톰 톰슨(Tom Thomson)
갑자기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번 떠올려 보세요. 우리는 매일 하늘을 머리 위에 두고 살아갑니다. 하늘 아래를 걸어 학교에 가고, 회사에 가지요. 그런데 막상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 남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른다섯 살의 평범한 회사원. 광고에 들어갈 그림과 글씨를 그리는 게 그의 일이었습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하루하루, 매일 출퇴근길을 오가면서도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 따위는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자는 갑자기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 하늘을 올려다봤지요.
남자는 자신이 본 그날의 하늘을 손바닥만 한 나무판에 한 장씩 그렸습니다. 눈부시게 맑은 하늘, 해 질 녘 타오르는 노을, 구름에서 눈이 쏟아지는 하늘…. 그렇게 그는 5년 동안 그림을 그리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캐나다의 ‘국민 화가’가 되었습니다.
대책 없는 청춘
1877년 캐나다 온타리오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톰슨은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특별한 열정도, 재능도 없는 학생이었지요. 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된 그의 삶은 방황의 연속이었습니다. 공장을 다녀봤지만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뒀고, 공부를 더 할까 싶어 학교에 들어갔지만 8개월 만에 때려치우고 말았습니다.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새 출발을 해보려고도 했지만 역시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연애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시애틀에서 만난 한 여성에게 반해 청혼했지만, 돌아온 건 비웃음뿐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거절당한 그는 그길로 짐을 싸서 캐나다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그때 톰슨의 나이가 스물여덟. 그야말로 대책 없는 청춘이었습니다.
좋은 회사에 취업한 톰슨의 벌이는 꽤 괜찮았습니다. 그는 늘 좋은 옷을 차려입고 다니는 멋쟁이 회사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번듯한 직장을 다녀도 가슴 한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친구들은 훗날 이 시절의 그를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때때로 이유 없는 좌절에 빠지곤 했다.”
그림과 사랑에 빠지다
1912년 봄, 톰슨은 동료들과 함께 한나절 기차를 타고 알곤퀸 주립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숲 사이에 수천 개의 호수가 흩어져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지요. 여행은 즐거웠습니다. 카누를 타고 호수를 건너고, 낚시로 저녁거리를 잡고, 모닥불을 피워 밥을 지어 먹는 즐거운 나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는 특별한 게 하나 있었습니다. 톰슨이 그림 도구를 갖고 왔거든요. 마침 그는 여행 직전 난생처음으로 스케치 도구를 장만한 참이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취미를 붙여 보라"는 회사 선배의 권유 때문이었습니다.그리고 톰슨은 호숫가에 앉아 눈앞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남이 시켜서 그리는 광고가 아니라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톰슨은 자연, 그리고 그림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런 톰슨의 그림을 보고 사람들은 감탄했습니다. “굉장한데. 전시회에 한번 그림을 내 봐.” 그렇게 그는 서른여섯의 나이로 전시회에 처음 그림을 내놓게 됐습니다. 숲에서 그려 온 호수 그림이었지요.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온타리오 주 정부가 이 무명 화가의 그림을 사 간 겁니다.
그해 가을에는 ‘큰 손’이 나타났습니다. 한 미술품 수집가가 톰슨에게 “1년 치 생활비를 줄 테니 회사를 그만두고 그림만 그려 보라”고 권한 겁니다. 그 수집가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그림만 봐도 캐나다의 자연이 그를 사로잡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톰슨의 그림에는 진실함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사표를 냈습니다. 1914년 1월, 서른일곱 살의 신인 화가가 된 그는 큰 회사의 멋진 명함 대신 초라한 작업실 하나를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는 행복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으니까요.
하늘의 기록
화가가 된 톰슨의 삶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봄이 오면 그는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가을까지 호수에서 낚시 가이드와 산불 감시원으로 일해 밥값을 벌고, 틈틈이 작은 나무판에 그림을 그렸지요. 겨울이 오면 도시로 돌아옵니다. 친구가 헐값에 빌려준 판잣집에 틀어박혀, 숲에서 그려 온 그림들을 큰 캔버스에 옮겼습니다. 회사원 시절 쳇바퀴처럼 똑같던 하루하루는 사라졌습니다. 매일 다른 하늘이 펼쳐지니, 이제 톰슨에게 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그림은 점점 더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았습니다. 캐나다 국립미술관은 3년 연속 그의 그림을 사들였습니다. 무명 신인에게는 파격적인 대접이었습니다. 건국한 지 50년이 채 안 된 젊은 나라 캐나다는 마침 '캐나다다운 그림'을 찾고 있었습니다. 유럽 미술을 배운 적도 흉내 낼 줄도 몰랐던 늦깎이 화가, 톰슨의 그림이 여기에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리고 1917년 봄. 마흔 살의 톰슨은 매일 아침 물감 상자를 들고 나가 그날의 하늘을 한 장씩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얼음이 갈라지면 갈라지는 얼음을, 눈이 녹으면 녹는 눈을, 봄이 오는 하늘을 일기 쓰듯 하루도 빠짐없이 그렸습니다. "이번에는 서부로 가서 로키산맥을 그려봐야겠습니다." 회사를 다닐 때 온통 잿빛이었던 이 세상은, 화가가 된 지금 놀라운 아름다움과 찬란함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다
그해 7월, 톰슨은 여느 날처럼 작은 배를 타고 호수로 나갔습니다. 이번엔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낚시를 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열흘째 공원 관리인과 '누가 먼저 큰 송어를 잡나' 내기를 하던 참이었거든요. 배에 실은 건 빵 한 덩이와 시럽 한 캔. 물고기 한 마리만 잡고 돌아오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톰슨의 소식이 끊겼습니다.톰슨이 발견된 건 1주일 뒤. 그의 몸은 이미 차갑게 식은 뒤였습니다. 그가 늘 노를 젓던 호수에서 배가 갑자기 뒤집혔던 겁니다. 서른다섯에 붓을 잡은 화가는 그렇게 자신이 그리던 호수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날 캐나다에서 톰슨의 위상은 절대적입니다. 그는 캐나다 미술의 시조로 불리고, 대표작들은 캐나다 교과서에 나오는 국가의 상징이 됐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그를 '캐나다의 반 고흐'라고 부릅니다. 늦깎이로 시작해 짧고 뜨겁게 타오르다 간 인생이 똑 닮았기 때문이지요.
톰슨의 삶을 바꾼 건 사실 대단한 게 아니었습니다. 서른다섯까지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루한 일상을 살던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세상의 아름다움을 들여다봤습니다. 그리고 매일 보던 하늘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지금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전 <인상주의를 넘어: 디트로이트 미술 걸작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시리즈에서 다룬 여러 거장들의 명작들을 실제로 볼 기회입니다. 최근 출간된 책 '명화 시리즈' 완결편 <명화의 완성, 그때 그 사람>과 함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