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한 대형약국에서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본인이 적어온 의약품 목록과 진열대 상품들을 바쁘게 확인하고 있었다. /사진=박상경 기자
성수동 한 대형약국에서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본인이 적어온 의약품 목록과 진열대 상품들을 바쁘게 확인하고 있었다. /사진=박상경 기자
지난달 25일 서울 성수동 연무장길. 한 대형 매장 안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스마트폰 화면과 진열대 상품을 바쁘게 번갈아 보고 있었다. 진열대에는 각종 브랜드의 아이 크림과 클렌징 밤, 릴리프 크림, 더마 리페어 크림 등이 빼곡했다. 이곳은 성수의 힙한 뷰티패션 팝업스토어도, 무신사나 올리브영도 아니다. 외벽에 '코리아 넘버원 파마시(KOREA No.1 Pharmacy)'를 내건 '약국'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인근의 또 다른 약국 진열대에도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로 적힌 '2026년 베스트 셀러'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여드름 세트와 기미 치료제, 붓기 개선제 등이 베스트셀러 매대를 채웠다. 현장에서 만난 약국 관계자는 "외국인 손님들이 직접 작성한 필수 의약품 리스트를 들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일반 드럭스토어에서 보기 힘든 고함량 재생 연고나 의약품 마스크팩을 주로 찾고, 약사에게 직접 성분 추천을 요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성수동의 한 약국 매장에 있는 '2026년 베스트 셀러'. /사진=박상경 기자
성수동의 한 약국 매장에 있는 '2026년 베스트 셀러'. /사진=박상경 기자
성수동뿐만 아니라 피부과와 성형외과가 밀집한 명동과 강남 일대 대형 약국에도 외국인 관광객들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 일대 약국들도 매장 곳곳에 외국어 안내문을 배치하고, 미용 시술 직후 피부 회복을 돕는 '애프터 케어' 제품을 적극 소개하며 의료관광객을 공략하는 모습이 감지된다.

과거 감기약이나 파스 등 상비약을 찾던 약국이 최근 성분을 따지는 글로벌 2030의 소비 성향과 맞물려 K뷰티 유통의 새로운 허브로 진화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쇼핑 코스가 기존 H&B(헬스앤뷰티) 스토어에서 일반 약국과 화장품·건강기능식품을 결합한 '프리미엄 약국'으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이에 맞춰 제약업계와 화장품업계도 전문 유통매장을 넘어 약국 매대까지 판매처를 넓히고 있다.
명동 대형 약국 매장. /사진=박상경 기자
명동 대형 약국 매장. /사진=박상경 기자
1일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외국인 카드 소비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 5월 방한 외국인 관광객의 카드 소비액은 2조1222억원으로 사상 처음 2조원을 넘어섰다. 전년 동월(1조2702억원) 대비 67.1% 증가한 수치다. 전체 업종 중에서도 약국(206%)의 성장률이 가장 높았으며 피부관리·마사지(154%), 피부과(86%)가 그 뒤를 이었다. 상권별로는 성수동 일대 약국이 고성장세를 보이며 외국인 관광객의 주요 방문지로 자리 잡았다. 이들 프리미엄 약국의 건당 평균 결제 금액은 약 19만4000원으로, 외국인 전체 평균 건당 결제액(약 6만8000원)은 물론이고 K패션 지출액(13만1000원)도 웃돌았다.

실제 외국인들의 의료 관련 소비 형태를 보면 약국 비중 증가세가 뚜렷하다. 한국관광공사의 한국관광 데이터랩을 보면 지난 5월 외국인 의료 소비액은 전년 동월 대비 74.6% 늘어난 2511억5578만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약국 점유율은 12.9%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의료 소비건수 비중도 약국이 69.8%까지 올랐다. 외국인 의료 관광객이 결제한 건수 10건 중 7건을 약국이 차지한 셈이다.
옵티마 웰니스 뮤지엄(OWM) 성수점. /사진=박상경 기자
옵티마 웰니스 뮤지엄(OWM) 성수점. /사진=박상경 기자
이처럼 약국이 'K뷰티 유통 채널'로 인식되면서 약국·드럭스토어·피부과의 경계를 허문 '프리미엄 약국'이 새로운 형태로 떠오른 것이다. 일반의약품과 더마코스메틱, 건강기능식품을 한데 모으고 동선을 설계해 약사 상담 서비스를 결합한 형태다.

지난달 25일 강남구 신사동에 오픈한 옵티마 웰니스 뮤지엄(OWM) 신사점 역시 약국 서비스에 피부 진단과 제품 체험 기능을 결합해 다각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프리미엄 약국들은 제약사들에게 글로벌 소비자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쇼룸' 역할을 하고 있다.

제약사들 역시 의약품 연구개발(R&D) 역량으로 확보한 신뢰도를 기반으로 유통망 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동국제약은 전국 200여 개 약국에 고기능성 스킨케어 전용 특화 공간인 '파마시뷰티솔루션' 뷰티존을 신설하고 세포 케어 브랜드 '루온셀'과 '마데카파마시아' 등을 전면에 배치했다. 파마리서치의 '리쥬란 코스메틱'과 동화약품의 '후시드 크림' 등도 성분을 앞세워 약국 매대에서 판매를 늘리고 있다.

박상경 한경닷컴 기자 highse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