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부족 풀 열쇠, 새 아파트만이 아닙니다 [최원철의 미래집]
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문제는 공급입니다.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방향은 맞습니다. 하지만 공급은 발표한다고 바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서초구 서리풀지구에 주택 2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도 주민 반발과 보존 요구를 넘어야 합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1만 가구 공급도 기존 개발계획과 인허가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과천 경마장 부지 이전을 통한 9800가구 공급 역시 마사회와 관련 종사자의 반발이라는 변수가 있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의 좋은 입지는 대부분 이미 누군가 이용하고 있는 땅입니다. 그만큼 개발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공공이 아무리 속도를 내겠다고 해도 주민 동의, 인허가, 기반 시설, 이전 비용, 환경 문제를 피할 수 없습니다. '좋은 땅에 빨리 짓겠다'는 말은 쉽지만, 실제 사업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정비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사비가 빠르게 오른 상황에서 용적률을 높여 사업성을 맞추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신속통합기획을 통해 정비사업 속도를 높이고 있고, 소규모 재개발·재건축도 모아타운 등을 통해 용적률 상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남과 한강 벨트처럼 일반분양가가 높은 지역이 아니라면 사업성이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시공사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어려운 지역도 많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단기간에 공급할 수 있는 비아파트에 주목합니다. 도시형생활주택 규제를 완화해 향후 2년간 2만6000가구를 공급하고, 공실 상가·오피스 등을 원룸이나 오피스텔로 바꿔 1만5000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입니다. 일반공업지역 내 지식산업센터도 2027년까지 한시적으로 오피스텔 전환을 허용하고, 주차장 추가 확보 의무도 한시적으로 완화하기로 했습니다.
방향은 맞습니다. 이미 지어진 건물을 활용하면 새 택지를 조성하는 것보다 빠를 수 있습니다. 공사 기간이 줄어들고, 민간 사업자가 참여하면 공공 부담도 낮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으로 바꿀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상가와 오피스, 지식산업센터를 모두 주거시설로 바꾸는 것만이 답은 아닙니다. 평택이나 경기 북부처럼 주택 미분양이 많은 지역에서는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해도 분양이나 임대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수요가 없는 곳에 주거시설만 늘리면 공급 숫자는 증가해도 실제 시장 안정 효과는 제한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서울 성수동, 명동, 홍대입구, 연남동처럼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지역은 숙박시설이 부족합니다. 이런 지역에서는 오피스텔보다 숙박시설이 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오피스텔이나 업무시설을 관광호텔, 레지던스, 공유숙박형 시설로 바꾸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습니다. 수요가 있는 곳에서는 주거보다 숙박이 더 필요한 용도일 수 있습니다.
생활형숙박시설(생숙) 문제도 같은 맥락입니다. 정부는 생숙을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지만, 지방자치단체별 조례와 기준이 달라 현장에서는 여전히 혼선이 큽니다. 주차장, 복도 폭, 공공기여, 층별 전환 기준이 지역마다 다르다 보니 전환이 가능한 곳과 어려운 곳이 갈립니다. 전국적으로 아직 조치되지 않은 생숙 물량도 적지 않습니다. 제도는 풀었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공급 정책은 이제 지역별 수요를 전제로 설계해야 합니다. 대학가에는 월세 수요가 많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공유주거, 코리빙, 소형 임대주택 전환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관광객이 몰리는 지역은 공유숙박이나 관광호텔 전환이 필요합니다. 산업단지와 업무지구 주변은 근로자가 실제 거주할 수 있는 소형 주택이나 기숙사형 주거가 맞습니다. 같은 비아파트라도 지역에 따라 필요한 용도는 모두 다릅니다.
최근 동탄 아파트값이 크게 오른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통근버스가 다니는 이른바 '셔세권'에 실수요가 몰렸고, 규제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아 매수세가 붙었습니다. 수요가 있는 곳에 돈이 몰립니다. 주식시장에서도 돈이 되는 종목에 투자자가 몰리는 것처럼, 부동산도 필요한 용도와 수익이 맞아떨어질 때 민간이 움직입니다.
이제는 비수익형 부동산을 수익형 부동산으로 바꾸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비어 있는 상가, 임차인을 찾지 못하는 오피스, 공실이 늘어난 지식산업센터를 단순히 주거시설로만 전환하는 방식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지역에서 실제로 필요한 용도가 무엇인지 먼저 봐야 합니다. 주거가 필요한 곳은 주거시설로, 숙박이 필요한 곳은 숙박시설로, 근로자 주거가 필요한 곳은 기숙사형 주택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민간 사업자는 수익이 보여야 움직입니다. 정부가 일괄적으로 용도를 정해주는 방식보다, 지역 수요에 맞춰 다양한 용도 전환을 허용하면 민간이 스스로 투자에 나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공급 속도도 빨라집니다. 공공이 모든 것을 직접 짓는 방식만으로는 지금의 전·월세 불안을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있습니다. 상가는 예전처럼 모두 잘되지 않고, 오피스도 지역에 따라 공실이 늘고 있습니다. 지식산업센터 역시 공급 과잉 지역에서는 수익성이 떨어졌습니다. 반면 어떤 지역은 주거가 부족하고, 어떤 지역은 숙박시설이 부족하며, 어떤 지역은 산업인력 주거가 부족합니다. 부동산 용도도 이 변화에 맞춰 움직여야 합니다.
앞으로의 공급정책은 숫자보다 용도입니다. 몇 가구를 공급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디에 어떤 수요를 겨냥해 공급하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비수익형 부동산을 그 지역에 맞는 수익형 부동산으로 바꿀 수 있다면, 민간은 움직이고 공급은 빨라집니다. 공급 부족을 풀 실마리는 새 땅을 찾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있는 건물을 어떻게 다시 쓰느냐에 달렸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최원철 연세대 미래부동산개발 최고위과정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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