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바논 포성 > 미국과 이란의 휴전 양해각서(MOU) 추진에도 이스라엘과 레바논 친(親)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충돌하며 레바논 남부에서 16명이 사망했다. 20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공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 레바논 포성 > 미국과 이란의 휴전 양해각서(MOU) 추진에도 이스라엘과 레바논 친(親)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충돌하며 레바논 남부에서 16명이 사망했다. 20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공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최근 미국·이란 전쟁에서 중재 역할을 수행한 파키스탄은 군부 독재 국가다. 지난해 11월 개헌을 통해 군부 권한을 초법적 수준으로 강화했다.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스위스 뷔르겐슈토크에서 열리는 미국과 이란의 휴전 양해각서(MOU) 후속 회담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파키스탄처럼 독재나 권위주의 정치 체제를 갖춘 국가가 2010년대 들어 ‘피스메이커’로 역할하는 경우가 많다. 인권과 민주주의 등 대의 명분보다 군사 및 경제 관련 실속이 협상의 핵심 조건이 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독재국이 ‘평화 수호자’ 자처

경제·외교 실리 노리고 중재…'피스 메이커' 된 권위주의 국가들
지난 18일 이코노미스트는 평화협상 주도권이 민주 국가에서 권위주의 국가로 넘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바르셀로나자치대(UAB) 연구팀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에서 이뤄진 평화협상 53건 중 최소 20건에서 중국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등 권위주의 국가가 중재자로 참여했다. 반면 한때 국제 중재를 주도한 유엔과 북유럽 국가는 참여 자체가 줄거나 협상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있다.

권위주의 국가가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배경에는 대개 국내외 입지를 강화하려는 현실적 목표가 숨어 있다. 파키스탄은 최근 미국·이란 전쟁을 중재하며 미국과 걸프 국가를 아우르는 외교적 영향력을 확보했다. 그간 미국은 파키스탄 숙적인 인도를 훨씬 중요한 외교적 파트너로 대우했지만, 이번 협상으로 파키스탄과 미국이 가까워지며 미국·인도 관계에도 균열이 생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 평화협상에 뛰어드는 경우도 많다. 2021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미얀마 내전을 중재하는 중국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자국 남서부쪽 국경과 미얀마를 잇는 송유관·가스관 등에 막대한 돈을 투자해왔고, 미얀마 내부 특별 경제구역 등에도 투자하고 있다. 전투가 거세지면 국경 무역이 위협받는 만큼 휴전을 끌어내려는 것이다. 튀르키예는 2024년 소말리아·에티오피아 갈등 중재를 발판 삼아 소말리아 현지에서 방위산업, 에너지 사업으로까지 진출 범위를 넓혔다.

◇뒷걸음치는 유엔

오랫동안 국제 분쟁 중재를 맡아온 유엔은 예전만큼 힘을 쓰지 못한다. 알라르트 뒤르스마 취리히연방공과대 연구원은 “유엔이 여전히 분쟁 중재에 참여하고 있지만 가자지구·우크라이나 전쟁 등 주요 분쟁에서는 주도권을 지역 강국에 내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이란 전쟁에서도 유엔은 전쟁이 시작되고 한 달이나 지난 3월 25일에야 이란 담당 특사를 임명했다.

유엔의 평화 유지 능력은 지난 10년간 약화됐다. 현장에 배치된 유엔 평화유지군은 2016년 10만7000명에서 최근 4만7000명으로 급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유엔 지도부가 중재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분쟁에 제한된 정치적 영향력을 낭비할까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휴전 더 빨라지는 효과

권위주의 국가들의 중재는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인권, 민주적 개혁을 내세운 유엔과 서방 민주 국가의 중재 시도와 달리 권위주의 국가는 당장의 분쟁 중단, 국경 안정을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여러 연구에 따르면 중재자들이 강압적 수단을 활용할 때 휴전을 더 빨리 이끌어낼 수 있다”고 짚었다.

다만 이런 방식이 근본적 원인 해결에는 더 취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분쟁 당사자들이 자발적으로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경제적 압박을 피하려고 마지못해 서명하는 사례가 많아서다. 뒤르스마 연구원에 따르면 중재가 최종 평화협정으로 이어진 비율은 1989~2013년 3.9%에서 2014~2023년 2.1%로 낮아졌다.

김미리 기자 miri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