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노동권을 보호하는 일을 하는 근로감독관의 노동권은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 원주고용노동지청 40대 여성 근로감독관이 지난달 27일 숨진 채 발견되자 일선 감독관 사이에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숨진 감독관이 직장 내 괴롭힘과 임금체불 사건 등을 한꺼번에 떠안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 데다 악성 민원까지 감내해온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감독관들은 “노동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업무를 늘리기만 한 고용노동부 내부 구조의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1인당 담당 사건 1300건 넘어
18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원주고용노동지청을 찾아 직원들과 간담회를 했다.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이한 현장 소통’이 방문의 공식 이유지만, 지난달 근로감독관 사망과 관련해 현장 의견을 들은 자리로 알려졌다. 고인이 된 감독관은 노동법 위반 사건을 전담하는 팀장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 업무를 새로 맡는 과정에서 한 악성 민원인의 반복된 항의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선 직원들이 지적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급증하는 업무량이다. 2024년 기준 근로감독 사건은 39만4145건으로 2년 새 29% 늘었다. 당시 근로감독관 정원은 3000명을 조금 넘었다. 단순 계산으로 1인당 1300건 이상의 사건을 맡은 셈이다. 지난해부터는 임금체불과 산업재해 근절을 내세운 정부 방침에 따라 임금체불 감독 업무와 중대재해 수사 업무가 추가됐다. 여기에 노동조합법 개정에 따른 노사관계 관리 업무까지 더해졌다.
중앙노동위원회에 따르면 노동쟁의와 심판사건을 포함한 전체 사건 접수 건수는 2024년 2만4265건에서 지난해 2만6806건으로 1년 만에 2000건 이상 증가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역시 2024년 1만3601건에서 2025년 1만6373건으로 늘었다. 한 근로감독관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맡았다가 민원인의 화풀이 대상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직장내괴롭힘법’은 ‘감독관괴롭힘법’이라는 푸념까지 나온다”고 했다.
◇업무 부담 키우는 팀제
고용노동부가 최근 신규 감독관 교육·관리 강화와 체불 대응 역량 제고를 위해 도입한 지역별 팀 단위 근로감독 체계(팀제)는 업무 부담을 더욱 키웠다는 지적을 받는다. 팀제는 개별 근로감독관이 사건을 배당받아 처리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지역별로 구성된 팀이 체불 등 신고사건과 사업장 근로감독을 종합적으로 담당하는 업무 체계다.
지금까지는 체불 진정이 접수되면 해당 사건만 처리했다. 팀제는 이에 그치지 않고 사업장 전체를 대상으로 추가 체불 여부를 조사하는 ‘체불 전수조사·감독’을 실시해 추가 피해자를 발굴하고, 체불금 청산 업무까지 맡아야 한다.
팀장의 업무 부담은 더 커졌다. 체불 전수 조사 건수와 체불금 청산 실적 등이 팀 평가 지표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한 근로감독관은 “팀장은 자기 사건을 처리하면서 팀원이 처리하지 못한 사건까지 떠안는 구조”라며 “숨진 원주지청 감독관처럼 책임감이 강한 관리자일수록 업무가 집중되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늘어난 업무 부담을 감안해 지난해 근로감독관 700명, 산업안전감독관 300명을 긴급 증원했다. 올해도 근로감독관을 1000명 늘릴 예정이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 근로감독관은 “신입 직원을 급하게 늘리면 관리자의 교육 부담은 커지고, 교육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