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방학동과 방화동
서울 반대 끝까지 가준 택시
논리보다 강한 사람의 선의
이소연 시인
논리보다 강한 사람의 선의
이소연 시인
북토크를 마치고 찾은 여름밤 궁남지는 개구리 울음소리와 풀벌레 소리로 가득했다. 깊은 어둠 속에 손을 넣고 뒤적이는 버드나무 아래를 천천히 거닐다 호프집에 들어가 맥주잔도 부딪쳤다. 기분 좋게 취해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보늬책방 사장님이 말했다.
“부여에서는 택시를 부르면 무조건 3초 안에 잡혀요.”
“정말요?”
어쩌다 한 번이겠지 싶었는데 아니었다. 부를 때마다 정말 3초 만에 택시가 잡혔다. 그 덕분에 몇 년 전 겨울밤이 떠올랐다. 그날따라 날씨가 너무 추웠다. 30분째 택시는 안 잡히고 온몸이 덜덜 떨렸다. 종아리는 툭 치면 깨질 것 같았다. 휴대폰은 자꾸 꺼지지, 택시는 없지. 택시 잡다 얼어 죽는구나 싶을 때쯤, 저 멀리서 ‘빈 차’라는 글자가 보이더니 이내 내 앞에 섰다. 그때 심정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자를 꼽으라면 ‘빈 차’라고 할 판이었다.
“어디 가세요?” “방학동이요.”
“타세요.”
타라고 해서 탔는데 다시 내리란다. ‘방학동’을 ‘방화동’으로 잘못 들었다는 거다. 눈앞이 캄캄했다. 살려달란 말이 절로 나왔다.
“기사님, 너무 추워서 내리기가 겁나서 그래요. 방학동 한 번만 가주시면 안 될까요?”
“아, 어쩌죠. 제가 곧 교대 시간이거든요. 차고지가 방화동이라….”
“아… 그럼 혹시 다른 택시 보이는 데까지만 가주시면 안 될까요? 거기서 갈아타고 갈게요. 너무 추워서 그래요. 죄송해요.”
기사님은 결국 나의 절충안에 타협하셨다.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그런데 아무리 가도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기사님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어서 그 호의를 마냥 고맙게만 받을 수는 없었다.
“죄송해요. 기사님. 택시가 안 보이네요. 저 그냥 여기서 내려주셔도 돼요.”
“대학로쯤 가면 있을 거예요. 거기까진 가드릴게요.”
그러나 기어이 성신여대를 지나고 미아리 고개를 넘고 있었다.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끝까지 가죠 뭐.”
100년이 지나도 이 일을 잊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정에 기대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 본 적 있는 사람들이니까. 서로의 난처함과 두려움을 알아보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자존심 때문에, 나약하게 보이기 싫어서 승차 거부를 운운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사람은 때때로 논리보다 사정에 먼저 마음을 내어준다.
낮에는 낙화암을 둘러보고 선착장 쪽으로 내려가려는데 일본인 할머니가 길을 물어 왔었다. 내 일본어 발음이 시원찮았는지 좀처럼 알아듣지 못했다. 낙화암… 불쑥 영어 단어 하나가 입속에서 떨어져나왔다.
“다이빙!”
그제야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아!’ 하고 감탄사를 터트렸다. 내 말을 이해했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할머니의 말속에서 ‘산젠’을 들었다.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삼천 궁녀’의 ‘삼천’을 알아들은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다이빙은 아닐 텐데…. 때론 부정확한 말이 더 정확하게 가 닿기도 하나 보다. 어쩌면 우리는 함께 엇나감으로써 서로를 이해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