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알처럼 투명하고 영롱…임윤찬이 세공한 모차르트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와 협연한 임윤찬
피아노 협주곡 24번과 25번 연주
소프라노 임선혜 아리아와 어우러진 예리한 타건
피아노 협주곡 24번과 25번 연주
소프라노 임선혜 아리아와 어우러진 예리한 타건
임윤찬은 올해 모차르트 탄생 2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4번과 25번, 콘서트 아리아 ‘어찌 그대를 잊으리’를 직접 선곡했다. 수많은 모차르트의 걸작 중 이 세 곡은 모두 1786년 작품이다. 1786년은 모차르트의 창작욕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였다. 같은 해 그는 피아노 협주곡 23번과 교향곡 38번 ‘프라하’, 오페라 ‘극장 지배인’, ‘피가로의 결혼’과 같은 불후의 명작들을 쏟아냈다.
통상적으로는 피아노 협주곡 23번이 24번과 25번에 비해 걸작으로 간주되지만, 임윤찬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임윤찬의 이 고유한 시각 덕분에 이날 청중은 피아노 협주곡 24번과 25번을 재발견할 수 있었다.
과거 지휘자 없이 악장의 리드만으로 들었던 해당 악단의 연주력을 뛰어넘는 스케일과 디테일이 감지됐다. 그 속에는 현대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기계적 울림과는 차별되는 고악기의 고즈넉한 은빛 울림 또한 묻어났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7곡 중 연주 시간이 가장 긴 25번은 ‘황제 협주곡’이라 불리는 대곡이다. 위풍당당한 C장조의 조성과 15분에 육박하는 1악장의 길이는 모차르트로서는 이례적인 규모다. 임윤찬은 또렷한 스타카토 음형과 여린 약음의 대비를 부각시키며 세부를 물들였다. 과거 그가 쇼팽, 라벨, 슈만의 낭만파 협주곡 연주에서 가미했던 즉흥적 기교를 자제하고, 오롯이 음악에 침잠한 순음악적 접근이었다.
3악장에서만큼은 템포 루바토를 구사하며 즉흥성을 내비쳤지만, 명징한 톤컬러를 구현하는 데 있어 모차르트야말로 그에게 제격이었다. 한 음 한 음이 유리알처럼 투명했고, 구슬이 구르듯 영롱한 소리가 세공되어 울려 퍼졌다.
필자는 파블로 카잘스 지휘로 메조소프라노 제니 투렐이 들려준 같은 곡의 최초 녹음 음반(소니·1951년 발매)을 애청한다. 카잘스의 선 굵은 지휘에 호응하듯 제니 투렐의 음성 또한 두텁고 육중한 매무새로 일관한 기념비적 명반이다.
이에 비해 이날 임선혜가 들려준 해석은 무언의 노스텔지어에 호소하듯 천상을 향해 절규한 절창이었다. 간절함을 담아 고음으로 찌르는 임선혜의 스핀토 발성에 임윤찬도 신속하고 예리한 타건으로 응수했다. 두 예술가가 이심전심으로 엮어간 고도의 예술 풍경이었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4번이 대미를 장식했다. 20번과 더불어 모차르트의 단 두 편뿐인 단조 피아노 협주곡인 24번은 c단조라는 조성 때문에 비극미를 강하게 풍긴다. 최고 걸작으로 치부되는 20번 d단조에 가려 자주 연주되지는 못하지만 24번이 품고 있는 숙명에의 어두운 전조는 20번을 압도한다. 장조의 작곡가 모차르트의 작품 전체를 통틀어 봐도 이만큼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곡은 찾기 어렵다.
시작부터 요동친 오케스트라의 충격적 파장은 임윤찬이 선택한 에트빈 피셔의 1악장 말미 카덴차에서 그 어두운 심연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공포 분위기를 잊으려는 듯 몽환적인 2악장 라르게토의 주제선율을 연주하는 내내 임윤찬은 목관악기 주자들과 눈을 맞추며 따스한 시선을 교환했다.
갖가지 변주곡이 켜켜이 쌓여가는 3악장에서는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의 구축미가 돋보였다. 74년 역사의 단단한 울림이 여지없이 흘러나왔다. 코다에 접어들기 직전, 3악장 말미에서 임윤찬이 연출한 최약음의 정적은 모든 이의 숨을 멎게 했다. 파국 직전의 고요함. 임윤찬의 해석은 작품 특유의 비극적 숙명성을 뼈아프게 전달했다.
열광적인 앙코르 요청에 임선혜와 함께 등장한 임윤찬은 그녀를 위해 모차르트의 가곡 ‘황혼의 감상’(1787년)을 홀로 반주했다. 무덤덤한 반주 속에 리리코 소프라노 최상의 순도가 빛 발하는 순간이었다.
음악칼럼니스트 김승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