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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 전쟁 5년차, 다시 무장하는 유럽…韓 방산 더 커진다 [조철오의 방산노트]
⑤ 유럽 재무장, 韓 생산력에 손짓
예산 커졌지만 생산력은 부족
EU 펀드까지…파트너는 결국 韓
폴란드가 보여준 ‘납기 경쟁력’
유럽 각국 "한국인 VIP"
예산 커졌지만 생산력은 부족
EU 펀드까지…파트너는 결국 韓
폴란드가 보여준 ‘납기 경쟁력’
유럽 각국 "한국인 VIP"
“우크라이나 전쟁이 5년차로 접어들었습니다. 장기화가 유럽의 생각을 바꾸고 있습니다. 정전 후에도 유럽은 본격적인 군비 경쟁에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 생산을 도울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합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한 글로벌 방산기업의 한국 담당 임원은 최근 유럽 방산 시장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각국이 방위비를 늘리고 있지만, 전차·자주포·미사일·탄약을 단기간에 공급할 생산기반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조달 기준이 가격과 성능에서 납기와 생산능력으로 넓어지면서 한국 방산의 경쟁력이 갈수록 재평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럽, 돈은 많은데 생산 기지는 부족
냉전 이후 유럽은 방위산업 투자를 줄여왔다. 소련 붕괴 이후 대규모 지상전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보고, 각국은 군비를 줄이고 생산라인을 축소했다. 유럽 방산 시장도 미국과 유럽 기업 중심으로 운영됐다. 나토 표준, 역내 조달 관행, 자국 산업 보호 논리가 맞물리면서 비유럽 국가가 대형 무기체계 시장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다.하지만 러시아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유럽은 우크라이나에 탄약과 장비를 지원하면서 재고가 줄었고, 방공망·포병·기갑 전력 확충 필요성도 커졌다. NATO 회원국들은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5%를 방위·안보 관련 지출에 쓰기로 했다. 이 가운데 3.5%는 전통적 방위비, 1.5%는 인프라·사이버 등 넓은 의미의 안보 투자다.
EU도 방산 투자 확대에 나섰다. EU 집행위원회는 ‘Readiness 2030’을 통해 최대 8000억유로 규모의 방위 투자 동원 계획을 제시했다. 별도로 마련한 SAFE는 회원국의 공동 방산 조달에 최대 1500억유로 규모 장기·저리 대출을 제공하는 제도다. 방공, 미사일, 탄약, 드론, 사이버, 군수지원 등이 주요 대상이다.
폴란드가 보여준 한국의 ‘납기 경쟁력’
폴란드는 전쟁 이후 유럽 방산 조달 변화의 대표 사례다. 폴란드는 2022년 한국과 K2 전차 180대, K9 자주포 212문, FA-50 경공격기 48대 도입 계약을 맺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같은 해 폴란드와 K239 천무 다연장로켓 288문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생긴 전력 공백을 빠르게 메우고, 러시아와 인접한 안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결정이었다.핵심은 납기였다. 한국은 이미 양산 중인 무기체계를 제시했고, 한국군이 운용해온 장비라는 점도 평가를 받았다. 유럽 업체들이 생산능력 확대와 납품 일정을 협의하는 동안 한국 업체들은 구체적인 인도 일정을 제시했다. 폴란드가 한국산 무기를 선택한 배경에는 가격뿐 아니라 빠른 공급 능력이 있었다.
한국 방산의 강점은 휴전국이라는 특수성에서도 나온다. 한국은 70년 넘게 북한과 대치하며 전차, 자주포, 미사일, 함정, 잠수함, 항공기 등을 개발하고 운용해왔다. 개발, 군 운용, 개량, 정비, 재생산으로 이어지는 체계가 유지돼 있다. 유럽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장기 개발 과제보다 단기간 전력화가 가능한 장비다.
중국은 생산력만 보면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유럽 방산 조달망에 들어오기는 어렵다. 무기체계는 장비 판매로 끝나지 않는다. 작전 데이터, 소프트웨어, 암호체계, 정비 정보, 탄약 운용, 후속 군수지원이 함께 따라간다. 유럽과 미국 중심의 안보 체계 안에서 중국산 무기체계를 쓰는 것은 정보보안과 상호운용성 측면에서 부담이 크다.
한국 앞다퉈 찾는 유럽 각국들
최근 유럽과 미국의 글로벌 방산기업들이 한국과의 협력을 넓히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과거 한국은 대형 무기체계의 구매자 성격이 강했지만, 지금은 완제품 생산능력과 부품망, 정비 기반, 수출 경험을 함께 갖춘 파트너로 평가받고 있다. 해외 방산기업 입장에선 한국이 단순 판매처가 아니라 공동 생산과 제3국 수출을 논의할 수 있는 시장이 된 셈이다.한국을 찾은 하롤드 북홀트 네덜란드 국방부 국가군비국장도 한국의 생산 역량을 높게 평가했다. 국가군비국장은 네덜란드의 방위산업·무기 획득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로, 한국의 방위사업청장급 카운터파트로 볼 수 있다. 그는 “한국의 조선·생산 역량과 네덜란드의 센서·전투체계·해양 기술이 결합하면 분명한 협력 기회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레이더, 센서, 전투체계 등 해양 방산 기술에 강점을 가진 국가로 평가된다. 한국은 함정 건조와 양산, 정비, 공급망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네덜란드가 2025~2029년 방위산업·혁신 전략에서 생산 확대와 국제 공급망 참여를 주요 과제로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럽은 SAFE 등을 통해 자국 산업 보호와 유럽산 우선 원칙을 강화하고 있지만, 현지 생산과 기술협력, 정비 거점, 부품 공급망을 함께 제시하는 한국 기업에는 협력 공간이 열릴 수 있다는 게 방산업계의 평가다.
방위산업 기획 보도로 제411회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습니다. 수년간 방산 하청업체 관계자들과 교류하며 산업 생태계의 가장 아래층부터 그 위까지 흐름을 추적해왔습니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물론 HD현대·한화오션 등 정점에 있는 기업들조차 쉽게 닿지 못한 현장의 이야기를 이곳에서 풀어냅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