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캐나다 대표 신문인 토론토스타 칼럼에 ‘맨케이브’(man cave)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미국과 캐나다 남성이 자신의 공간으로 삼는 지하실을 두고 ‘남성이 아내의 침입을 피해 공구 상자를 가지고 숨는 동굴’로 묘사한 것이다. 이듬해 성차를 유머러스하게 설명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 이 단어가 나오며 맨케이브는 대중화됐다.

남성만의 아지트는 옛말…'맨 케이브' 만드는 여성들
업무 공간을 겸하는 서재와 달리 편하게 쉴 수 있는 장소인 맨케이브에는 술과 음악, 게임, 피트니스 등을 위한 각종 기구가 채워진다. 미국 가구 소매업체 조이버드가 2018년 미국 남성 6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약 65%가 맨케이브를 소유하고 있었다. 설계부터 공사까지 맨케이브 조성과 관련된 시장이 북미, 유럽 지역에 폭넓게 형성된 이유다. 음향 기기와 TV, 게임기, 당구대 등 맨케이브에 들어가는 물품의 2차 소비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맨케이브를 일종의 ‘안전 기지’로 설명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영향을 줬다고 본다”며 “애착 발달 과정에서 아이들이 멀리 있는 모험적인 공간으로 나가기 전 안전한 장소를 먼저 확보하려는 것과 같은 개념”이라고 말했다.

사회활동과 노동을 담당했던 남성이 외부의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공간을 필요로 했다는 해석이다.

공간의 역사에 비춰 봤을 때도 맨케이브 확산은 필연적이다. 홍성용 더모이건축사사무소 대표는 “과거 부유한 남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랑방, 서재 등 자신의 영역을 소유했다”며 “현대에는 아파트, 주택 등으로 가족 공간이 표준화돼 남자의 영역이 베란다, 차고, 지하실 등으로 축소된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이어 “40대 이하는 대체로 어렸을 때 자기 공간에서 자랐기 때문에 나만의 공간에 대한 욕구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자 2010년대 들어서는 ‘시셰드’(she shed·여성 창고) ‘걸케이브’(girl cave) 개념도 등장했다. 여기에서 여성은 차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그림 그리기, 공예 등 취미활동을 한다. 부엌과 다용도실 등 전통적인 여성 공간이 가족 모두가 사용하는 곳으로 바뀐 점도 걸케이브 확산의 요인이다.

집값 상승으로 주거 면적이 줄어드는 서울에서는 화장실, 자동차 등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임 교수는 “케이브는 불편함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한 공간”이라며 “각자가 처한 환경에 따라 지하실, 화장실, 다락방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손주형 기자 handb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