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 명목 경제성장률이 5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공지능(AI)발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반도체산업의 수출이 크게 증가한 덕이다.

9일 한국은행은 1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 대비 10.5%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1차 오일쇼크 이후 중동 건설 붐을 타고 초고속 성장을 이룬 1976년 1분기(13.0%) 후 최고치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17.1% 급증했다. 물가 변수를 제거한 뒤 생산량 변동만 나타내는 실질 GDP와 달리 명목 GDP는 제품·서비스 가격 변동폭까지 반영한 수치다. 최근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수출 가격이 급등해 명목 GDP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1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도 전 분기 대비 9.2% 급증해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최고 증가율을 기록했다. 올해 1인당 GNI가 4만달러에 근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 수출 가격 급등으로 GDP 디플레이터 45년來 최고
거시 건전성 지표 대폭 개선될 듯…가계소득·국내 투자는 온기 덜해

올해 1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보다 10.5% 늘었다. 50년 만의 최대 증가폭이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올해 연간 명목 GDP 증가율도 10%를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 세수가 늘고 가계부채 비율 등 거시 건전성 지표가 큰 폭으로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 시점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눈앞…환율이 최대 변수"

◇반도체 공급 부족 수혜 본격화

한국은행이 9일 발표한 1분기 국민소득에서 명목 GDP 증가율이 주목받는 이유는 실질 GDP 증가율만으로는 최근 우리 경제 성장세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은은 이날 1분기 실질 GDP 증가율을 지난 3월 속보치 1.7%에서 1.8%로 상향 조정했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3.8% 증가했다. 연간 증가율이 1.1%에 불과한 지난해에 비해선 크게 높아졌지만 명목 GDP(전년 대비 17.1% 증가)와 격차가 크다. 이는 가격 요소를 제외한 생산량이 극적으로 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한국이 역대급 수출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건 반도체 수출 물량이 늘었다기보다 가격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한 지표가 소비자 물가에 수출입 물가까지 반영한 GDP 디플레이터다. 1분기 GDP 디플레이터는 12.9% 상승했다. 1981년 3분기(16.0%) 후 최고치다. 특히 수출 디플레이터는 23.5%나 치솟았다. 내수 디플레이터가 2.1% 상승에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에 따른 반도체 공급 부족의 수혜가 지난 1분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올해 명목 GDP 증가율도 2002년(11.0%) 후 처음으로 10%대를 기록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부가 예산을 편성할 때 활용하는 세입 추계의 기준이 명목 GDP인 만큼 정부가 거둬들일 세수가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명목 GDP를 기준으로 산출하는 가계부채·국가채무 비율 등 각종 거시 건전성 지표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가계부채 비율은 88.6%에 달했다. 올해 명목 GDP 증가율이 10%를 기록하고 가계부채가 정부 목표치인 1.5%만 늘어난다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1.8%로 11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하게 된다. 명목 GDP 증가율이 12%에 달한다면 가계부채 비율은 80.3%로 떨어진다. 정부는 2030년까지 가계부채 비율을 80%까지 낮춘다는 목표를 내세운 바 있다.

◇국민총소득도 11% 급증

1분기 명목 국민총소득(GNI)도 전 분기보다 11.0% 급증했다. 역시 50년 만의 최고치다. 명목 국외순수취요소소득(한국 국민과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에서 외국인이 국내에서 벌어간 소득을 뺀 순수입)이 9조2000억원에서 13조7000억원으로 늘어나며 GNI가 GDP 증가세(10.5%)를 웃돌았다. 실질 GNI 증가율(9.2%)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1인당 GNI 4만달러 고지도 눈앞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1인당 GNI는 전년 대비 0.3% 증가한 3만6963달러였다. 김화용 한은 국민소득부장은 “현재와 같이 높은 증가세가 지속되면 올해 1인당 GNI가 4만달러에 근접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장은 “올해 안에 달성할지 여부는 향후 기업 실적과 원·달러 환율 향방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분명한 건 당초 예상한 2028년보다는 4만달러 달성 시점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가계 소득이나 국내 투자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보여주는 실질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DI)은 올 1분기에 전 분기보다 0.3% 증가하는 데 그쳤다. 1분기 국내총투자율은 25.3%로 전 분기 대비 2.9%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국외투자율은 16.3%로 전 분기 대비 8.6%포인트 증가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