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서울대 방문에 맞춰 두 서울대 학생들이 젠슨 황으로부터 싸인 받은 포스터를 들어보이고 있다. 최영총 기자
8일 오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서울대 방문에 맞춰 두 서울대 학생들이 젠슨 황으로부터 싸인 받은 포스터를 들어보이고 있다. 최영총 기자
“여러분은 지금 가장 좋은 시대에 같은 시작점에 서 있습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만들고, 적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회와 불과 50년 만에 엄청난 문화와 기술을 수출하는 나라에 있기 때문이죠."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서울대를 처음 찾아 학생들과 직접 만났다. 황 CEO는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가 산업 전반을 바꾸는 지금이 공학도들에게 가장 큰 기회의 시기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의 전공과 연구 분야를 직접 묻고, AI·로보틱스가 만들어낼 산업 변화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는 등 격식 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지난 4월 딸 매디슨 황 엔비디아 옴니버스·로보틱스 제품 마케팅 수석이사가 서울대를 방문한 지 약 40일 만에 황 CEO까지 찾으면서, 서울대가 글로벌 빅테크의 AI·로보틱스 인재 확보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이 러브 유 젠슨”…주차장서부터 시작된 팬미팅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현장에 도착해 학생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최영총 기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현장에 도착해 학생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최영총 기자
8일 황 CEO는 오전 11시 50분께 서울대 관악캠퍼스 해동첨단공학관을 방문했다. 현장 주차장에 도착하자 1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아이 러브 유 젠슨”을 외치며 그를 맞았다. 학생들은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들고 몰려들었고, 엔비디아 그래픽카드와 후드티, 포스터 등을 내밀며 사인을 요청했다. 황 CEO는 차에서 내린 뒤 한동안 학생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줬다.

현장에는 황 CEO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대형 포스터를 들고 온 학생도 있었다. 한 기계공학부 대학원생은 황 CEO의 평전인 '더 씽킹 머신'을 직접 구매해와 서명을 기다렸다. 건물 창문에도 십수 명의 학생들이 붙어 카메라 렌즈로 황 CEO의 모습을 담았다. 세계 최대 AI 반도체 기업 CEO의 방문이라기보다 글로벌 스타를 맞이하는 팬미팅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8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해동첨단공학관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입장하자 학생들이 환호하고 있다. 뉴스1
8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해동첨단공학관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입장하자 학생들이 환호하고 있다. 뉴스1
황 CEO는 이어진 토크 세션에선 특유의 쇼맨십으로 학생들의 호응에 답했다. 그는 “컴퓨터공학 전공자는 몇 명인가요. 공학 전공자는요. 로보틱스 전공자는요. 그냥 보러 온 사람은 몇 명인가요”라고 물으며 시작했다. 이날 자리는 참석을 희망하는 공학도들을 중심으로 마련됐다.

황 CEO는 학생들에게 “정말 놀라운 시대”라며 “여러분이 정말 부럽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에게는 엄청난 기술로 무장할 수 있는 큰 기회가 있다”며 “이 기술을 만들어가고, 적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AI가 소프트웨어를 넘어 물리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도 거듭 짚었다. 그는 자사 개인용 AI 컴퓨터인 DGX 스파크 등 경품을 증정하며 한 기계공학 전공 학생에게 “AI 연구자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며 “젊고 뛰어난 기계공학 전문가”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40년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다시 기계공학자의 시대”라고 했다.

한국에 대한 친근감도 드러냈다. 그는 “오늘날 K가 붙은 모든 것은 정말 인기가 많다”며 “K-젠슨도 마음에 든다”고 농담했다. 그는 “오늘 밤 집에 가서 아내에게, 아침에 집을 나설 때는 그냥 젠슨이었는데 이제 K-젠슨이 됐다고 말해야겠다”고 했고, 학생들은 웃음과 환호로 답했다.

황 CEO는 한국 산업과 문화의 성장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불과 50년 만에 한국은 문화를 수출하고, 아름다움과 음악, 영화, 기술을 수출하고 있다”며 “미래에는 로봇과 AI도 수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 참석한 학생들도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기계공학부 대학원생 최씨는 “누가 엔비디아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겠느냐. 젠슨 황을 모르는 공학도도 거의 없을 것”이라며 “오늘 악수는 하지 못해 아쉽지만 같은 공간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큰 에너지를 얻었다”고 말했다.
8일 오전 서울대에 도착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최영총 기자
8일 오전 서울대에 도착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최영총 기자
서울대 안팎에서는 이번 방문이 단순 강연이나 의전성 행사가 아니라 학생들과의 직접 접점을 넓히기 위한 자리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서울대 교수는 “여러 교수들의 개인 미팅 요청은 황 CEO 측에서 거절했다”며 “서울대 총장과의 면담 등도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방문에는 딸 매디슨 황 수석이사의 앞선 서울대 방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매디슨 황 수석이사는 지난 4월 서울대 측의 제안에 응해 특별 강연을 하고, 서울대 로보틱스 연구소를 찾아 학생들과 연구 현장을 둘러봤다.

엔비디아-서울대 간 인재 양성, 인프라 지원 등 논의

학계에서는 엔비디아와 서울대가 이번 황 CEO 방문을 계기로 로봇·피지컬 AI 분야 연구 인프라 지원, 학생 채용 연계 등 협력 방안을 구체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양측은 서울대 학생 대상 채용 등 인재 양성, 확보 협력 논의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서울대와 엔비디아는 올해 2학기 기계공학부 ‘창의공학설계’ 과목에 엔비디아 딥러닝 인스티튜트(DLI) 교육 과정을 일부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서울대 내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하드웨어 인프라 지원 가능성도 협력안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서울대는 고사양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엔비디아와의 협력이 실제 컴퓨팅 인프라 지원으로 이어질 경우 AI 연구 경쟁력 강화 효과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GPU나 DGX 스파크 등 구체적인 지원 규모는 아직 논의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가 서울대와 접점을 넓히는 배경에는 한국의 제조업과 로봇 산업 기반에 대한 높은 평가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황 CEO는 앞서 입국 현장에서 차세대 투자 분야로 로봇공학을 꼽으며 한국이 제조업, 메카트로닉스, AI 역량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빅테크가 서울대와의 접점을 넓히는 배경에는 연구진의 학술 성과가 꼽힌다. 이경무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특임석좌교수는 “컴퓨터비전 및 패턴 인식학회(CVPR), 국제컴퓨터비전학회(ICCV) 같은 최고 권위 컴퓨터비전·AI 학술대회에서 한국 연구자들의 발표 논문과 인용 성과는 세계 3강에 들 정도”라며 “미국 빅테크들이 한국 인재의 우수성을 알고 러브콜을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대학이 한 단계 도약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