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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만에 최대 규모…일본 대기업이 사옥 파는 진짜 이유 [김용남의 부동산 자산관리]
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개별 사례를 들여다보면 전략적 의도는 더욱 선명해집니다. NTT도코모의 590억엔 규모 토지 매각과 IHI의 568억엔 매각 차익은 각각 인공지능(AI)·디지털 인프라와 항공·방위산업 투자로 이어지고 있으며, 야마토홀딩스와 아지노모토 역시 자기자본이익률(ROE) 개선을 명시적 목표로 내세우며 본사 부동산을 처분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일본 금융당국과 도쿄증권거래소가 주도하는 강력한 지배구조 개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매출 증가와 시장점유율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자기자본이익률과 자본효율성이 기업 경쟁력을 평가하는 핵심 지표로 자리 잡았습니다. 기업가치 제고와 수익성 개선을 요구하는 주주들의 압박에 더해, 저평가 부동산을 집중 공략하는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까지 가세하면서 기업들은 자산 매각을 더 이상 미룰 명분을 잃었습니다.
글로벌 부동산서비스업체 JLL에 따르면 일본 부동산 투자 규모는 2025년 6조엔을 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올해 역시 높은 수준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엔화 약세와 상대적으로 낮은 조달 비용에 매력을 느낀 국내외 기관투자가의 자금이 도쿄 우량 자산으로 집중되면서 기업들은 장부가를 크게 웃도는 가격에 자산을 유동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확보한 자금을 AI, 차세대 통신 인프라, 항공우주·방위산업 등 미래 성장 동력에 집중하거나 주주환원에 활용하는 것, 그것이 이번 매각 붐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자산 최적화 전략이 언제나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동산 매각을 통해 일회성 영업외이익을 올리는 것은 쉽지만, 그 이후가 진정한 시험대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본사 건물을 매각한 뒤 동일한 건물에 임차인으로 들어가는 세일 앤드 리스백(sale and leaseback)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현재 도쿄 중심가의 오피스 공급이 매우 제한적인 데 비해 임대료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부동산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이 고정적인 임대료 증가 비용을 상쇄할 만큼의 본업 경쟁력 강화나 신사업 수익성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현금 흐름과 운영 효율성을 악화시키는 부메랑이 될 수 있습니다. 자산 매각은 혁신의 종착지가 아니라 자본 재배치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개인투자자로서는 대기업의 사후적인 자금 집행을 쫓아다니기보다, 이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빠져나오며 던진 시그널 자체를 읽어내는 것이 더욱 현실적인 접근입니다. 실제로 최근 도쿄 핵심 업무지구에서는 기업이 매각한 자산을 글로벌 사모펀드와 리츠(REIT), 연기금 등이 적극적으로 매입하고 있습니다. 자본이 이동하는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지역과 어떤 자산군이 다음 수혜를 볼 가능성이 높은지 더욱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또한 대기업이 매각한 핵심 업무지구 인근의 오피스 시장과 배후 주거지 수요 변화 역시 주목할 만한 투자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 같은 변화가 일본에만 국한되지 않고 한국 대기업들 사이에서도 비핵심 부동산을 정리해 미래 핵심 산업에 자본을 집중하는 형태로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업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확보한 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성장으로 연결하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부동산을 팔았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 자본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가입니다. 일본 대기업의 사옥 매각 행렬은 단순한 부동산 거래가 아니라 산업과 자본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건물을 보는 눈이 아니라 자본의 이동 경로를 읽어내는 시선인지도 모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김용남 글로벌PMC(주)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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