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이 막아선 재건축…600명 손 들어준 법원 [조선규의 부동산 산책]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조합원들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사업장마다 바람 잘 날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이견이 표출되기 마련이고, 소수 입장을 가진 조합원들은 사업 초기 단계에서 각종 가처분이나 조합설립인가 취소 소송 등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강력하게 피력합니다.

구로구의 대표적 사업지 개봉3구역 재건축 조합 사건(서울고법 2024.5.1. 선고 2023누45714 판결) 역시 조합설립 단계에서 벌어지는 분쟁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 구역에서는 소수 조합원 45명이 구로구청을 상대로 조합설립 변경인가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조합은 피고 구청 편에 서서 소송에 참가했습니다.

보통 소수 조합원은 도시정비법 규정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조합의 절차상 미비점을 들추기 마련인데, 이 소송도 그랬습니다. 원고들은 "다른 사람이 대리로 서명한 동의서다", "집을 팔고 나간 옛날 주인의 동의서를 왜 새 주인의 명시적 동의도 없이 마음대로 재사용하느냐"는 주장을 강력한 논리로 내세웠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해당 총회의 실질이 창립총회이므로 조합원 100분의 20 이상이 직접 출석해야 하는데 이를 위반했다(도시정비법 제45조 제10항), 대리 서명 등 문제가 있어 동의서 재사용 유효성에 다툼이 있다(도시정비법 제37조), 양도인의 동의서에는 재사용 특례 규정이 적용되지 않아 양수인에게 별도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남이 대신 서명하거나 권리자가 바뀌었는데 옛날 동의서를 그대로 썼다니, 언뜻 들으면 문서 절차상 큰 흠결이 있어 보이고 꽤 합리적인 주장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법원은 전체 조합원 780여 명 중 600명 이상이 조합 설립에 찬성한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1심과 2심 모두 원고들의 주장을 기각하고 구청과 조합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특히 쟁점이 된 '동의서 재사용 특례'에 대해 법원의 구체적인 해석이 명시됐습니다. 도시정비법 제37조에 도입된 이 특례는, 인가 이후 일부 동의서에 하자가 발견됐다고 해서 매번 처음부터 전체 동의서를 다시 걷게 하는 것은 막대한 사회·경제적 낭비라는 반성에서 출발한 규정입니다. 재판부는 정비사업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입법 취지상, 반대 의사가 명백하지 않은데도 기존에 제출된 유효한 동의서의 효력을 부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나아가 '집주인(양도인)이 바뀐 경우 누구에게 동의서 재사용을 통지해야 하는가'에 대해, 재판부는 조합 정관의 '신고 의무'에 주목했습니다. 조합 정관에 따르면 조합원이 권리를 양도할 경우 14일 이내에 조합에 신고해야 하는데, 이 의무를 게을리해 조합 측에 변동 사실이 통지되지 않았다면 조합은 이를 알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재판부는 기존 집주인(양도인)에게 한 통지를 새 집주인(양수인)에게 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명확히 판단했습니다.

재판부의 판단 기저에는 '다수결 원리의 존중'과 '정비사업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중시하는 시각이 깔려 있습니다. 참고로 재건축조합은 공법상 사단법인으로 행정주체의 지위를 가지며, 민법상 사단법인의 규정이 준용됩니다(도시정비법 제38조, 제49조). 이 때문에 다수결의 원칙이 아주 중요하게 작동하며, 다수결 원리는 비법인 사단인 집합건물관리단, 지역주택조합, 종중 등 소송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수백, 수천 명의 동의서를 걷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오기나 미미한 절차적 흠결을 일일이 문제 삼아 조합 설립 자체를 취소해 버린다면 어떤 대형 재건축 사업도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의서의 절차적 하자를 근거로 제기한 행정소송의 이면에는 십중팔구 조합 내부의 깊은 불신과 은밀한 주도권 다툼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조만간 대법원의 최종 심리 결과가 나오겠지만, 법정 승패를 떠나 이미 다툼으로 멈춰버린 수년의 시간과 그로 인해 불어난 사업 비용은 결국 조합원 전체가 짊어져야 할 무거운 분담금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조선규 법무법인 조율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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