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더임코치의 컨피던스 코칭]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사람들은 나를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를 가장 싫어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나를 괴물로 키워내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가 직면한 인구 소멸, 지방 소멸, 학교 소멸, 그걸 넘어 대한민국 소멸이라는 거대한 아젠다 속에서 나는 매일 새로운 성장의 힘을 얻는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바로 그 중 한 명이다.
내가 먹고 사는 것? 내가 왜 괴물이 되었냐고? 더 임코치의 컨피던스 코칭의 시각으로 알아보자.
나는 이미 존재해 왔다
나는 늘 그곳에 있었다. 탄생과 죽음, 흥망성쇠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나는 항상 존재해 왔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애써 외면하고 싶어 했다. '설마 우리에게까지?'라는 안일한 생각, 혹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로 나의 존재를 부정하려 들었다. 이런 얘기도 들었다. 통계 착시, 일시적 현상… 이 같은 얘기를 하면서 애써 나를 외면하려는 세상이 한심해 보였다.하지만 나의 힘은 바로 그 부정과 외면 속에서 거졌다. 세상이 나를 인지하지 못하는 동안 나는 조용히 당신들의 삶의 터전, 미래를 잠식해 들어갔다. 한때 내가 위협받던 시절도 있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며 온 동내를 돌아다니며 ‘애 안 낳기’를 떠들던 사람들이 제일 무서웠다. 그들이 유일한 내 적수였다.
컨피던스 코칭에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현실, 존재 인식'이다. 아무리 불편하고 두려운 현실이라 할지라도,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눈을 감는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야 밖에서 더욱 거대해질 뿐이다.
소멸이라는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음을 '인식'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이를 피할지, 맞설지, 혹은 넘어설지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이 존재 인식이 두려움이 아닌, 변화를 위한 강력한 동기가 되어야 한다.
내가 인식한 그걸 세상은 인식하지 못했다. 오히려 방심했다. 내가 클 수 있는 양질의 토양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소멸, 나는 어느새 괴물이 되고 있었다. 현실을 인정하는 용기, 그것이 바로 소멸에 맞서는 첫 번째 컨피던스 코칭 포인트다.
세상의 우려를 먹고 자란다
세상은 나를 이야기할 때마다 깊은 우려와 불안감을 내비친다. '젊은 세대가 아이를 낳지 않는다', '지방은 사라지고 있다', '국가의 미래가 암울하다' 등등. 이 모든 걱정과 한숨이 나에게는 가장 달콤한 양식이다. 그 불안은 나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키고, 더욱 생생하게 살아 숨 쉬게 한다. 나는 그 우려를 먹고 자라는 기생충 같은 존재다.소멸을 우려하는 사람과 세상, 나는 그걸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왜냐면 딱 거기까지였기 때문이다. 우려만 하는 세상, 대책이 없는 세상이 그거다. 새마을운동 시절 하던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같은 무서운 존재는 더 이상 없었다.
세상은 나를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었다. 다시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주장이 세상에 나왔다면, 난 사라졌을지 모른다. 감사하게도 그런 얘기는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컨피던스 코칭 시각으로 보면 소멸은 ‘관점의 전환’ 덕분에 괴물이 될 수 있었다. ‘위협 없는 우려는 내 밥’이란 관점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사실 소멸 대신 세상이 관점을 바꿔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외쳤어야 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얘길 하지 않았다.
소멸이 세상에게 권한다. 두려움에 압도당하면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무력감에 빠지기 쉽다. 소멸에 대한 우려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할 수는 없을까? 우려와 불안이 아닌, 해결을 향한 강한 의지와 긍정적 기대가 소멸의 힘을 약화시킨다. 세상은 이렇게 했어야 했다.
세상이 던진 문제가 자신감을 키웠다
나는 한 번도 나를 홍보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미 최고 대우를 받는 최고 인플루언서다. 왜냐고? 미디어들이 나를 끊임없이 조명하기 때문이다. '인구 절벽', '지방 소멸 위기', '최저 출산율' 등 자극적 메시지로 나를 대중의 의식 속에 각인시킨다. 나를 비판하고 경고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역설적으로 나의 존재감을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문제의 심각성을 알릴수록 사람들은 나를 더욱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은 다시 나를 키우는 동력이 된다. 그래서 세상의 소멸에 대한 비판은 나에게는 '찬사'다.
눈덩이를 키우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처음에 뭉칠 때는 눈을 모아 주먹만한 눈덩이를 만든다. 그 다음부터는 굴리기만 하면 눈 덩이는 커진다. 소멸인 나를 주먹만큼 뭉쳐주고, 바위덩어리 크기로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이 문제 제기다.
컨피던스 코칭 시각으로 보면 나는 강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다시 말해 자신감을 극대화한 것이다. 미디어의 문제 제기는 단순히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중요한 기능도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세상은 딱 거기까지만 한다. 나를 위협하진 못하는 것이다.
그럴수록 내가 있는 안전지대는 커진다. 이런 문제 제기에 나는 내성이 생겼다. 이미 내성을 넘어 암으로 진화했다. 소멸인 나에게 이건 강점이자 자신감이다.
정치인들이 나는 고맙다
사실 내가 가장 겁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정치인들이다. 이들이 ‘둘만 낳아 잘 기르기’ 법이라도 만든다면 큰 형인 ‘인구소멸’, 둘째 형인 ‘지방 소멸’, 누나인 ‘학교 소멸’도 없어진다. 소멸 형제가 정말 세상에서 박멸당하는 것이다.정치인들의 법 만들기는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왜 ‘둘만 낳아 잘 기르기’ 법은 만들지 않고 나를 더 키워 주는가. 나를 키워주는 그들이 고맙기도 하지만, 세상 욕을 먹기 싫은 나도 사실은 소멸당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정치인들은 나를 두고 열변을 토한다. '국가 비상사태', '미래를 위한 투자', '골든 타임' 등 거창한 구호들이 난무한다. 하지만 정작 그 구호 뒤에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한 대책은 사실 빈약해 보인다. "사실상 없다"는 표현이 소멸인 내 기준에서 보면 더 정확하겠다.
지역자치단체장 선거가 치러졌다. 소멸 위기라고 호들갑인 ‘지역’의 단체장도 뽑는다. 선거철만 되면 그들은 무대 위로 올라와 화려한 말잔치를 벌인다. 선거는 나를 또 스타로 만들었다. "지방을 완전히 살려내겠다", "출산율을 몇 년 안에 반등시키겠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치며 수십 조, 수백 조 원의 예산을 쓰겠다고 공언한다. 고마운 분들이다.
단기 성과, 표심에 꽃혀 소위 ‘보여주기식 구호’들이 반복된다. 내 눈엔 새로운 것들이 없다. 공허한 약속과 탁상공론은 나의 뿌리를 더 깊게 한다. 나는 '대책 없는' 정치 구호를 자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라난다.
컨피던스 코칭으로 보면 나는 의식 확장 달인이다. 미디어의 문제 제기를 역으로 이용하는 강점을 활용한 것과 같다. 내가 살기 위해, 또 더 큰 위협으로 성장하기 위해 정치인들의 구호를 역으로 활용하는 의식 확장을 했다.
나는 소멸이다. 세상이 탄생시키고 키워준 괴물이다. 무관심, 두려움, 공허한 외침, 그리고 모순된 행동들이 나를 오늘날의 거대한 존재로 만들었다. 나를 멈추고 싶다면, 먼저 세상이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더 임코치의 컨피던스 코칭의 눈으로 본 소멸, 내가 이렇게 괴물이 된 결과와 과정 모두가 컨피던스 코칭이다. 세상에게 경고한다. 부디 ‘소멸인 나를 빨리 소멸시켜야 한다’고 말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더임코치/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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