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직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직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1
삼성전자 노사가 오는 21일 예고된 총파업을 앞두고 벌인 담판 회의 끝에 노조가 최종 결렬을 선언하고 중재를 박차고 나왔다. 성과급 산정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사상 초유의 삼성전자 총파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만약 삼성전자 노조 측 요구안이 관철될 경우 산업계 전반에 걸쳐 노동계의 보상 요구가 거세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는 전날 삼성전자 노사를 소집해 하루를 넘긴 이날 새벽까지 사후조정 2차 회의를 진행했으나, 핵심 쟁점인 성과급 제도화 등을 두고 끝내 간극을 좁히지 못하면서 중재가 결렬됐다. 다만 실제 파업 돌입 전까지 노사 자율 협상에 정부의 추가 중재 가능성도 있어 희박하지만 극적 타결 희망은 아직 남아 있다는 관측이다.

삼성전자 노사가 가장 큰 이견을 보이는 대목은 '유연한 보상안'과 '제도화된 보상안'이다. 삼성전자는 회사 경영 상황에 따라 성과급 지급 규모를 조절할 수 있는 유연한 보상 체계를 제시했다.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옛 PS) 제도에 '특별보상'을 더하는 방식의 보상 체계를 대안으로 내놓은 것.

이는 유연성에 무게를 둔 방식으로 평가된다. 업황이 나쁠 땐 기존 OPI 틀 안에서 성과급을 지급하고 경영성과가 좋을 땐 별도 성과급을 추가 지급할 수 있는 구조여서다.

삼성전자가 이 같은 방식을 제안한 이유는 반도체 산업 특성 때문이다. 실적 변동성이 큰 반도체 산업 특성을 고려해 유연한 보상 체계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또 최근 업황과 실적을 볼 때 메모리사업부는 사측 방식대로 성과급을 산정할 경우 경쟁사와 같거나 웃도는 지급률을 보장받게 된다. "업황과 성과가 좋으면 경쟁사보다 돈을 더 주겠다"는 애기다.

글로벌 테크 기업들 중 영업이익의 특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지급하도록 명문화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점도 삼성전자 주장을 뒷받침한다.

반면 노조 측이 요구하는 보상안은 성과급을 사실상 고정비에 가깝게 만드는 방식이다. 노조는 영업이익 중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고 이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성과급 상한제 폐지도 함께 요구했다.

성과급을 고정비처럼 못 박으면 적자 전환 같은 위기 상황이나 업황 악화를 포함한 대외 변수에 대응할 여력이 그만큼 떨어지게 된다. 반도체 산업은 경기 흐름에 따라 실적이 출렁인다. 호황기엔 막대한 이익을 내지만 불황기에 '투자 부담'과 '제품 가격 하락'이 동시에 덮친다. 이 때문에 설비투자·연구개발·인건비 등 비용 구조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조 요구대로면 미래 투자 여력도 쪼그라들 수 있다.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수인 반도체 산업에서 자본 운용의 유연성이 떨어져 중장기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가 '영업이익의 N%'를 제도화할 경우 다른 기업으로도 논란이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 보상 체계는 정보기술(IT) 업계를 포함한 국내 주요 대기업에 기준점 역할을 해왔다. 삼성전자가 영업이익 고정 모델을 확정하면 이들 기업 노조에서 유사한 요구가 쏟아져 나올 수 있다.

이미 '영업이익의 N%' 모델이 일부 기업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중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선 '영업이익의 20%'가 언급됐다. 카카오 노사 교섭 과정에선 영업이익 10%를, 현대자동차와 LG유플러스에선 각각 영업이익 30%를 성과급 기준으로 제시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제도화를 할 경우 빠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다른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 공공부문까지 영업이익 분배 요구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지난달 17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정문에서 열린 과반노조 공식 선언 기자회견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지난달 17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정문에서 열린 과반노조 공식 선언 기자회견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기업별 경영 환경, 재무 여력, 산업 특성이 모두 다른 상황에서 이 같은 방식의 성과급 요구가 확산하면 인건비 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산업계 전반의 투자 위축이나 고용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대기업은 높은 고정 비율로 성과급을 고정할 수 있더라도 중소·중견기업과 협력사들은 이를 따라가기 어렵다. 보상 격차가 벌어지면서 대기업 쏠림 현상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 산업 생태계 전체로 확장하면 핵심 인재들이 대기업으로만 집중되면서 하위 공급망의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

업계에선 성과 공유 원칙을 명확하게 확립하면서도 경영 여건·투자 계획·업황을 반영한 보상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삼성전자가 유연성을 갖춘 보상 체계를 강조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삼성전자는 노사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성과급 제도를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같이 국내 기업에 영향력이 큰 기업에서 성과급 고정 비율 모델이 정착되면 다른 기업들도 이를 따라가야 하는 압력이 생겨 인건비 부담이 과도하게 늘어날 수 있다"며 "경영 여건과 업황을 종합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