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4월 30일 오후 2시 51분

회사채 발행 시장이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 기업들은 4월 회사채 약 2조4000억원을 순상환했다. 순상환은 새로 발행한 채권(차입) 금액보다 만기가 돼 빌린 돈을 갚은 채권(상환) 금액이 많은 상태를 뜻한다.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로 거시경제 변동성이 커진 데다, 금리까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기업들이 은행 대출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채상환에 집중하는 기업들

발행은 없고 상환만…회사채 시장 급랭
3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4월 한 달간 13조1102억원의 회사채를 상환하고 10조6844억원의 회사채를 새로 발행했다. 기업은 통상 채권 만기가 도래하면 상환을 위해 또 다른 채권을 발행하는 차환에 나서지만, 최근엔 채권 대신 대출로 이를 해결하는 사례가 부쩍 많아졌다.

전체 회사채 발행 잔액도 지난해 12월 756조9000억원에서 지난 3월 747조3000억원으로 9조6000억원 감소했다. 일반 회사채 발행 목적도 기존 빚을 갚기 위한 차환 용도(85.6%)가 대부분이고, 시설 투자를 위해 채권을 찍은 사례는 전무했다.

통상 기업들은 금리 향방을 고려해 회사채 발행 계획을 세우는데, 금리 변동성이 커지면서 발행을 미루는 모습이다. 이달 중순까지 발행을 예정한 기업은 삼천리(600억원), KB금융 신종자본증권(4050억원)이 전부다. 지난 1월 초만 해도 회사채 발행에 기준이 되는 국고채 3년물 연 3%, 회사채 AA-(무보증 3년) 연 3.5%를 밑돌았다. 하지만 지난 29일엔 각각 연 3.52%와 4.18%까지 금리가 치솟았다.

회사채와 국고채 간 금리차를 뜻하는 크레딧 스프레드는 회사채 AA-(무보증 3년) 기준 지난 2월 27일 0.596%포인트에서 지난 29일 0.660%포인트로 0.064%포인트 상승했다. 크레딧 스프레드가 벌어졌다는 것은 국고채와 비교해 회사채가 상대적으로 약세라는 뜻으로, 기업 입장에서는 돈을 빌리는 비용(조달 금리)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전쟁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 것도 기업이 회사채 발행 시점을 미루는 이유 중 하나다. 미국은 전날 이란과 핵 프로그램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시중은행 대출로 돌아서

회사채의 대체제는 은행 대출이다. 시중은행들이 ‘생산적 금융’ 기조에 맞춰 기업들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리로 대출을 제안하면서 비싼 이자를 주고 회사채를 찍을 이유가 없어졌다는 설명이다. 신용등급 AA- 회사채 3년물 기준 금리는 연 4.2%대인데, 은행 대출을 활용하면 연 4% 초반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은행 대출보다 연 0.5%포인트가량의 이자를 덜 줘도 됐던 회사채의 비용 매력이 사라졌다.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기업들도 회사채 시장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지난 27일 해외 부동산을 운용하는 제이알글로벌리츠가 상장 리츠 중 처음으로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면서 회사채를 통한 조달 금리가 급등했다. 이 리츠는 부도 직전 신용등급이 A-였다. ‘A급 채권’도 안전하지 않다는 여론이 확산하면서 회사채의 금리가 일제히 상승했다. 롯데손해보험신종자본증권(BBB)이 연 9.2%에서 연 9.8%대에 거래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IB업계 관계자는 “제이알글로벌리츠 사태로 회사채 시장에서 비우량 회사채에 대한 경계감이 커졌다”라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