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클래식 아이돌' 강동석 "음악은 압력솥 아닌 슬로 쿠커"
[arte] 조민선의 아티스트룸
71세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인터뷰
71세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인터뷰
그 시절 ‘소년’은 지금 71세의 거장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어깨에 바이올린을 메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동료와 후배들이 모여 있는 리허설 룸으로 향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13세에 미국 뉴욕으로 홀로 떠났고, 40년 넘는 세월을 프랑스 파리에서 보냈다. 그러면서도 21년째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서울을 찾아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예술감독으로 실내악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그를 지난 19일, 서울 인사동 리허설룸에서 만났다. 강동석을 음악가로 존재하게 하는 서울, 뉴욕, 파리의 세 공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PART 1. 서울 리허설 룸: 한국 실내악의 베이스캠프
리허설 내내 편안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이 부분, 조금 더 세게 연주해볼까?” 강동석의 조곤조곤하지만 명확한 한마디에 연주자들의 활과 건반이 즉각 반응했다. 겉으론 한없이 유연해 보이지만,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선생님이 다 찾아내 지적한다”는 건 연주자 사이에서 이미 정평이 났다.
서울의 봄, 걱정에서 설렘으로
그가 연주자를 모으는 기준도 명확하다. 친소 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실력과 앙상블의 밸런스로만 무대를 올린다. SSF가 최상의 실력을 유지하며 클래식 애호가의 탄탄한 지지를 받는 비결도 이 때문이다.
올해 주제는 ‘모차르트와 영재들’. 4월 21일부터 5월 3일까지 13회 공연이 펼쳐지며, 역대 최다인 82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한다. 12세 바이올리니스트 김연아부터 60, 70대 대선배까지 한데 어우러지는 앙상블의 시작점이 바로 이 리허설 룸이다. “실내악이 어렵다는 건 오해예요. 언어를 배울 때 문법부터 익히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노출되듯, 음악도 그저 공간의 공기에 몸을 맡기면 됩니다. 독주보다 훨씬 재밌을 수 있어요.”
매일 공연이 끝난 밤, 리허설 룸의 긴장은 인사동 단골 식당에서 풀어낸다. 사장님이 매일 다르게 내주는 오마카세 같은 음식을 먹으며 1년간 못 본 동료들과 이야기하는 시간. 그게 서울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라고 그는 말한다.
PART 2. 파리의 집과 거리: 도시 전체에서 받는 영감
축제가 끝나면 강동석은 다시 파리로 돌아간다. 파리의 집은 고요하다. 프랑스인 피아니스트 부인과 함께 사는 이 공간에는 묘한 이질감과 조화가 공존한다. 통창 너머로 프랑스식 중앙 정원이 환하게 펼쳐지지만, 집 내부는 전혀 다른 세계다. 한국의 고가구, 고미술 작품, 장식품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정원은 파리, 실내는 서울인 셈이다. “한국풍 인테리어는 프랑스인 아내의 취향이에요. 한국 골동품에 마음을 빼앗긴 아내가 하나둘 모으기 시작한 물건으로 집 전체를 채웠습니다.”
집에서 가장 의미 있는 공간은 부부가 함께 쓰는 음악 연습실이다. 그랜드피아노와 악보 더미, 서적이 가득한 이 공간은 서울의 리허설 룸과 결이 다르다. “테크닉을 연마하는 공간이 아니에요. 스케줄을 짜놓고 연습하지 않죠. 요령 있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PART 3. 뉴욕의 레슨실: 고독이 뿌리가 된 곳
“선생님은 그때 이미 나이가 많아 귀가 잘 안 들리셨어요. 저희도 큰 소리로 말해야 했죠. 하지만 제자의 바이올린에서 나오는 틀린 소리만큼은 귀신같이 잡아내셨어요.” 스승은 보통 2주에 한 번인 레슨을 그에게만 매주 해줬다. 제자가 참가하는 콩쿠르 심사는 평생 거절했다. “내 학생이 참가하는데 내가 심사하면 안 된다”는 소신으로. 그 고결한 뒷모습은 강동석이 평생 지켜온 예술가의 잣대가 됐다. “제자를 가르치는 데만 평생 전념하셨어요. 인간으로서 굉장히 존경할 만한 분이었습니다.”
17세에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재단 콩쿠르와 워싱턴 메리웨더 포스트 콩쿠르에서 연이어 우승하고, 카네기홀에 데뷔한 뒤 한국인 최초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3위에 오르는 등 그의 모든 화려한 성취는 뉴욕의 고독했던 레슨실에서 결실을 이뤘다. 고단한 유학 생활을 버티게 해준 건 동료들과의 연대였다. “고(故) 김남윤 선생님이 누나뻘이어서 유학생들을 모아 만둣국과 라면을 끓여 먹이곤 하셨어요.”
PART 4. 미래의 음악가에게: “압력솥이 아니라 슬로 쿠커”
연세대 음대에서 20여 년간 후학을 양성한 강동석은 후배들에게 늘 같은 말을 한다. “테크닉은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 클래식계의 ‘시키는 대로 하는 문화’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선생님이 ‘A’라고 해도 그게 맞는지 스스로 따져보고 자기 철학을 키워야 합니다. 아무리 어리더라도요.” 임윤찬처럼 개성 있는 연주자의 등장을 ‘좋은 현상’이라고 반기는 그는 후배들이 선생님을 설득할 수 있는 자신의 의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에게 음악의 의미를 묻자, 일흔의 소년 같은 웃음이 돌아왔다. “저는 솔직히 좀 게으른 편이에요. 기계적으로 매일 몇 시간씩 연습하는 건 정말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음악 자체가 좋으니까 계속할 수 있었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사람은 굉장히 운이 좋은 거예요. 그런 면에서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이고요.”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