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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하우스가 접시에…천재 건축가의 작품을 '맛' 보다 [류재도의 테마가 있는 다이닝]
건축가 영감 담긴 시드니 랜드마크
'오페라 하우스'와 'TWA 플라이트 센터'
모던 퀴진 '베넬롱 레스토랑'
공간·음식·감각이 어우러진 예술
'오페라 하우스'와 'TWA 플라이트 센터'
모던 퀴진 '베넬롱 레스토랑'
공간·음식·감각이 어우러진 예술
20세기 중반 호주의 문화와 경제 중심지로 부상하던 시드니는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필요했다. 시드니 하버에 오페라 하우스를 건설하고자 1955년에 국제 디자인 공모를 하게 되었고, 32개 국가에서 출품된 233점의 작품 중에서 덴마크 건축가 요른 우츠온(Jørn Utzon)의 혁신적인 디자인이 채택된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해안지역 출신으로 조선업 설계사 아버지를 둔 요른 우츠온은 세일링 요트의 돛을 형상화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시드니 하버와 어우러지며 돛을 펼친듯한 형태의 언어는 주목할만했으나, 현실적으로 동떨어졌다는 이유로 탈락 작품 더미에서 사장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단다.
심사 과정에서 합류가 늦었던 핀란드 출신 미국 건축가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 심사위원은 탈락한 더미도 다시 살펴보기로 하는데, 요른 우츠온의 자유로운 아방가르드 디자인 원석을 발견하고서는 다른 심사위원들을 설득하기에 이른다. 건축물의 기능적인 형태를 뛰어넘는 서정적인 표현이 랜드마크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였을까.
에로 사리넨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아이디어를 살려냄과 동시에 그의 작품에서도 이를 표현했다. TWA 플라이트 센터 건축물에서도 유려한 곡선미를 구사하면서 당시 부상하던 제트 항공 여행에 대한 설렘과 낭만을 형태의 언어로 표현했다. 두 개의 작품은 공교롭게도 1955년 프로젝트 시작 연도와 1959년 착공 연도가 같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20세기 동시대 천재 건축가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각자 그려낸 랜드마크들은 지구촌 사람들에게 창의적인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는 점이다.
국가와 시대를 초월하는 영감의 원천은 비단 랜드마크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삶의 원동력이 되는 먹는 즐거움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왔고,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물론 TWA 플라이트 센터에서도 다이닝 경험은 항상 유기적으로 존재해 오고 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크게 3개의 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큰 지붕 아래 콘서트홀이 있고 나란히 옆에 서 있는 지붕에는 '조안 서덜랜드 시어터'가 있다. 육지 쪽으로 물러선 곳에 독립적으로 서 있는 작은 지붕이 있는데, 전체 공간에 감칠맛을 더해주고 있는 이곳에서 '베넬롱 레스토랑(Bennelong Restaurant)'이 미식 경험 퍼포먼스를 매일 펼치고 있다.
청정 호주에서 생산되는 맞춤형 토종 식재료에 대한 열정으로 농장과 포크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온 피터 길모어 셰프는 호주 모던 퀴진의 개념을 정립한 마스터셰프로 평가된다. 영국 정착민과 호주 토착민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했던 베넬롱을 기리는 레스토랑의 이름에 걸맞게, 호주 땅의 영혼이 서린 풀 내음을 접시 위에서 맛보게 한다는 서사가 있다.
베넬롱 레스토랑의 층고는 세일링 요트의 돛만큼 높다. 지붕 아래 내부의 별도 인테리어로 마감된 콘서트홀이나 조안 서덜랜드 시어터와는 다르게, 레스토랑의 인테리어는 오페라 하우스 지붕 속살의 구조를 노출 콘크리트 상태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포크와 나이프가 접시와 마찰되면서 차임벨처럼 울려 퍼지는 소리, 활기 넘치는 대화 소리가 공기 중에 구름처럼 머물면서 자아내는 몽환적인 분위기는 미식 경험을 한 편의 교향곡으로 만들어 준다.
딸기와 코코넛을 우려낸 케텔원 보드카 베이스에 패션푸르트, 바닐라 만다린 오일이 믹스되고, 가니시로는 붉은 꽃잎 하나와 함께 향기로운 구름을 유리병 덮개 안에 감쌌다. 한 모금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피아노 건반이 춤추듯 상큼 톡톡한 발랄함이 혀의 감각을 깨워내고, 새콤달콤한 과실향이 스타카토처럼 입안을 넘실대는 동안 앙트레(Entree)를 받아들일 팔레트가 완전히 열리게 된다.
스테이크의 굽기 정도는 셰프의 의도를 한번 따라가 보자. 셰프가 추천하는 굽기로 주문하면 미디엄으로 서빙된다. 고기의 질감이 적당히 느껴지는 와중에 트러플 퓌레의 밀도 있는 향과 질감이 밀물처럼 입속으로 퍼지면서 참신한 조합을 만들어낸다. 다소 투박할 수 있는 고기의 질감에 잎새버섯을 곁들인다면 물컹한 식감으로 밸런스를 잡을 수 있다.
호주 사람들의 고유한 디저트 문화, 머랭 기반의 파블로바를 재해석한 이 디저트는 쇼스토퍼(Showstopper)로 통한단다. 박수갈채로 공연이 잠시 정지되는 쇼스토퍼로서의 베넬롱 파블로바는 미식 퍼포먼스의 정점을 이루기에 충분하다. 단조로울 수 있는 달콤한 맛에 패션프루트 커드를 부어서 신맛으로 밸런스를 잡아주는 것에서 셰프의 세심한 디테일을 느껴보셔라.
시드니 시내를 걷다 보면 많은 건축물의 구조가 정형화되기보다는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알게 모르게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로부터 창의적인 영감을 얻은 덕분일 것이다.
피터 길모어 셰프가 펼치는 호주 고유의 식재료를 통한 모던 퀴진 장르도 공간의 영향을 받았을 터. 다이닝 경험도 하나의 교향곡 작품처럼 예술적인 퍼포먼스가 될 수 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이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제공했고, 베넬롱 레스토랑은 이 그릇 안에서 ‘호주 모던 퀴진’이라는 작품을 사람들에게 선사하면서 창의적인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류재도 파크앤비욘드 크리에이티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