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한 음식, 쩨(chè)를 아시나요 [신예희의 나홀로 한입여행]
동서양의 문화가 녹아든 수프
당장 떠오르는 재료만 꼽아봐도, 어디 보자… 녹두, 서리태, 강낭콩, 땅콩, 팥, 옥수수, 찹쌀 등의 곡물이 있다. 바나나와 망고, 잭프루트, 두리안, 롱간, 리치, 포멜로 같은 과일도 들어간다. 야자열매와 연꽃 씨앗, 토란과 고구마, 카사바, 흑임자, 한천, 코코넛 크림도 넣는다. 그렇다고 이걸 몽땅 다 한 그릇에 담는 건 아니고(다행이다), 어떤 쩨는 이 중에서 한두 가지 재료만 사용하는데 어떤 건 일고여덟 가지 이상을 쓴다. 걸쭉한 죽이거나 탱글탱글한 푸딩 형태이기도 하고, 떡처럼 덩어리지게 만들기도 하고, 묽은 액체 상태일 때도 있다. 그리고 또….
말하면 말할수록 점점 더 꼬인다. 베트남 사람들은 쩨를 어떻게 설명할까? 여행하며 만난 여러 사람에게, 때론 쩨를 파는 상인에게도 물어 봤는데, 그들 역시 말이 길어지다가 얼버무리곤 했다. 그나마 공통으로 하는 이야기라면 ‘달콤한 수프’라는 것 정도. 수프는 수프인데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즐기지만 따뜻하게 먹을 수도 있다며, 다시 말이 길어지기 일쑤였지만.
쩨는 중국 광둥 지역의 달콤한 음식 ‘통슈이(糖水)’가 베트남 중부 지역에 전파된 후, 오랜 시간에 걸쳐 베트남의 기후와 토양에 맞게 재료도 조리법도 서서히 바뀌어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캄보디아와 태국 등 주변 지역의 식문화 영향도 더해졌고. 19세기 중반 시작된 프랑스의 식민 지배 시기엔 달콤한 커스터드푸딩 등 유제품으로 만든 디저트가 들어와, 베트남에선 지금도 푸딩을 얹은 쩨를 흔히 먹는다.
문화는 알게 모르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해가는 것이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 안에 담긴 의미다. 지역에서 난 재료로, 음양의 조화를 고려해 정성껏 만든 달콤한 기쁨. 그래서 쩨는 일상의 간식이자 상서로운 음식이 되어 명절과 생일, 결혼식 등에 빠지지 않는다.
호찌민에서 오며 가며 몇 번 들렀던 국숫집에서 무슨 일인지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잔치를 벌이길래 슬쩍 들여다보았는데, 사장님네 아기의 첫돌 축하 상을 차려놓고 기념사진을 찍는 중이었다. 고귀함과 번영을 상징하는 노란색으로 장식한 돌상에도 물론 쩨가 올라와 있어서 괜히 아는 척해 보았다. “쩨? 축하합니다!”
나의 추천 메뉴는 단연 ‘쩨 탑깜(chè thập cẩm)이다. 맥주잔만큼 큼직한 유리잔에 맛있는 재료를 알아서 골고루 담아주는 모둠 쩨다. 뭘 담아주는지는 가게마다 다른데, 예를 들면 달콤한 옥수수죽 위에 쌉쌀한 약초 젤리를 얹고, 구수하고 달달한 녹두 삶은 것과 강낭콩, 꼬릿한 두리안 과육, 쫀득한 타피오카 버블을 담고선 코코넛 크림과 잘게 썬 코코넛 과육을 얹는다. 시원하게 먹고 싶다면 간 얼음도 한 숟가락 추가하면 된다.
먹는 방법은… 뭐, 알아서 덤벼보자. 팥빙수만 해도 처음부터 몽땅 섞어 먹는 사람이 있고, 최대한 첫 모습을 흩트리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으니까. 쩨 역시 내키는 대로 먹으면 된다. 나는 일단 맨 아래 깔린 재료들을 스푼으로 하나씩 떠서 맛보는 걸 좋아한다. 야금야금 먹다 보면 알아서 재료가 섞인다.
포멜로 껍질을 소금에 절였다가 팔팔 끓여 짠맛을 제거해 놓고, 타피오카 가루와 설탕을 넣어 끈적해지도록 좀 더 끓인 후 삶은 녹두를 넣고 차갑게 식힌다. 먹을 땐 코코넛 크림을 듬뿍 얹는다. 하지만 열심히 설명해 봤자 맛을 상상하기 어려우실 테니, 부디 베트남에 가시거든 꼭 한번 드셔보시라.
과일이 주인공인 것으론 ‘쩨 추오이(chè chuối)’가 있다. 바나나와 코코넛 밀크를 약한 불에서 뭉근하게 익혀 만들어 걸쭉하고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