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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공방(漢詩工房)] 對酒(대주), 姜聲尉(강성위)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원시]
對酒(대주)
樽前憂後不能酣(준전우후불능감)
醒後恨前非偉男(성후한전비위남)
伸手可通賢與聖(신수가통현여성)
書生此外復何貪(서생차외부하탐)
[주석]
· 對酒(대주) : 술을 대하고서. ‘술을 마시다가’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 樽前(준전) : 술동이 앞, 술동이 앞에서. / 憂後(우후) : 뒤를 걱정하다, 뒷날을 걱정하다. / 不能酣(불능감) : 술을 즐길 수 없다.
· 醒後(성후) : 술이 깬 뒤, 술이 깬 뒤에. / 恨前(한전) : 앞의 일을 한스러워 하다, 전날을 한스러워 하다. / 非偉男(비위남) : 쾌남(快男)이 아니다. ‘偉男’은 포부와 재능을 갖춘 남자라는 뜻의 ‘偉男子’를 줄여 칭한 말인데, 역자는 이 시에서 ‘쾌남(快男)’의 뜻으로 사용하였다.
· 伸手(신수) : 손을 뻗다. / 可通(가통) : ~과 통할 수 있다. / 賢與聖(현여성) : 현인(賢人)과 성인(聖人).
· 書生(서생) : 서생, 글을 읽는 사람. / 此外(차외) : 이 밖에, 이것 밖에. 이 대목의 ‘此’는 앞 구절의 ‘賢與聖’을 가리키는 말로 볼 수도 있고, 앞 구절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볼 수도 있다. / 復(부) : 다시. / 何貪(하탐) : 무엇을 탐하랴.
[번역]
술을 대하고서
술동이 앞에서 뒷날 걱정하면
술 즐길 수 없고
술 깬 뒤 전날 한스러워하면
쾌남(快男)이 아니리
손만 뻗으면 현인(賢人)이며
성인(聖人)과 통할 수 있거니
글 읽는 몸이 이 밖에
다시 무엇을 탐하랴!
[시작 노트]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우리는 늘 두 가지 망령에 시달리며 산다. 하나는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불안’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어제에 대한 ‘후회’이다. 이 두 가지 망령으로 인하여 유난히 마음고생이 심했던 필자는, 그것이 누르는 삶의 무게가 버거워 자주 술잔을 기울이고는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홀로 마주한 술상 앞에서 문득 몇 가닥 생각이 떠올라,「대주(對酒)」라는 제목으로 이 졸시를 엮어보게 되었다. 필자의 이 시는 단순히 음주를 예찬한 시가 아니라, 음주를 통해 번뇌를 털어내고 ‘본연의 나’로 돌아가고자 했던 필자 나름의 다짐을 투영시킨 일종의 반성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제1구는 필자의 좁은 마음 그릇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인 부끄러운 고백이다. 술통을 앞에 두고서도 다가올 내일의 일을 미리 걱정하느라 그 맛에 온전히 취하지 못하는 필자의 모습은 독자들 눈높이에서도 한심하게 보일 것이 분명하다. 아직 닥치지 않은 시련을 예견하며 현재의 평온을 스스로 걷어차는 이러한 행위는, 필자가 여전히 필자 삶의 주인이 되지 못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필자의 좌우명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내리지도 않는 소나기 미리 쫓아가서 맞지 말자.”이다.
제2구는 술 깬 뒤의 비겁함을 스스로 경계한 대목이다. 어제의 사소한 실수나 감정의 과잉을 반추하며 후회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결코 당당한 사나이의 모습이 아니다. 필자는 이 구절을 작성하며, 과거와 미래의 경계선에서 하염없이 스스로 흔들리는 유약함을 뼈저리게 실감하였다. 대장부라면 이미 엎질러진 물에 연연해하며 퍼질러 앉았기보다는 그것을 털어내고 다시 당당하게 일어서야 했건만, 필자는 그 경지에 다가가지도 못한 미완의 존재일 뿐이었다.
이토록 부족한 필자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술과 관련한 옛사람들의 몇몇 해학이었다. 그날따라 필자의 뇌리에 오래도록 머물렀던 해학은 바로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에 보이는 청주(淸酒)와 탁주(濁酒) 고사였다. 그 옛날 조조(曹操)의 금주령이 워낙 엄격해서 당시 애주가들이 단속을 피하고자 청주를 ‘성인(聖人)’으로 부르고, 탁주를 ‘현인(賢人)’으로 불렀다는 그 고사가 있었기에, 마침내 필자가 제3구를 통하여 손만 뻗으면 성인이든 현인이든 쉽게 만날 수 있노라고 너스레를 떨 수 있었던 것이다.
서생에게 독서는 성인과 현인을 만나는 일이다. 그리고 술꾼이 술을 마시는 것은 다반사로 행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서생의 독서와 무척이나 닮은 셈이다. 그러므로 청주를 성인에 빗대고 탁주를 현인에 빗댄 것이 옛사람들의 해학이라면, 제3구와 제4구를 통해 독서와 음주를 과감하게 동일시한 것은 필자의 해학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서생이면서 동시에 술꾼이기도 한 필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독서를 그만 둘 수 없듯 음주 또한 그만 둘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대목은 음주를 즐기듯이 독서 또한 즐길 것이라는 뜻이지, 음주를 독서로 삼겠다는 뜻은 결코 아님을 독자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 많은 재물과 더 높은 명예를 탐하라고 유혹하지만, 필자의 작은 마음 그릇으로는 그것들을 감당할 재간이 없다. 다만 맑거나 흐린 술 한 잔을 마주하여 성현의 뜻을 기리고, 그제의 심정을 종이 위에 옮길 수 있는 펜 한 자루가 있다면, 서생으로서 그 이상의 욕심을 부리는 것은 도리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앞뒤의 걱정으로 ‘오늘’을 망치는 필자의 어리석음을 한 잔 술로 씻어내고, 그 자리에 성현의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따름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오늘도 그 부족한 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조용히 손을 뻗어 본다.
오늘 소개한 필자의 졸시는 필자의 한시집인 『술다리』에 첫 번째 작품으로 실려 있다. 그리고 오래된 얘기이기는 하지만 필자는 이 시 때문에 중국의 어떤 한시동호회 사이트에서 사정없이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시 내용 때문이 아니라 시에 사용한 시어 하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제2구의 ‘偉男(위남)’ 자리에 애초에는 ‘快男(쾌남)’을 썼더랬는데, 이게 문제가 될 줄은 그 당시에 필자는 꿈에도 알지 못하였다. ‘快男’이 “쾌락을 추구하는 남자”냐고 놀림까지 당한 해프닝이 벌어졌음에도 필자는 도대체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저 “이런 무식한 사람들이 다 있나? 어째 ‘快男’이라는 말도 모르냐?”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급기야 어떤 양반이 “사고전서(四庫全書)”에도 보이지 않는 시어를 쓰면 도대체 어쩌자는 거냐며 따지기까지 하였다. 그제서야 필자는 “아, 뭔가 문제가 있기는 하구나!”라 생각하고는 바로 “사고전서” 검색 프로그램을 통하여 확인해 보았다. “세상에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람?” 이렇게 당황해하며 여기저기 이것저것을 한참이나 뒤져본 뒤에야 ‘快男’은 중국인들이 바로 알 수는 없는 어휘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 순간의 민망함이란! 어쨌거나 필자는 그 일 이후로 한시를 지을 때면 언제나 시어 사용에 각별히 신중을 기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快男’과 같은 우리 고유의 한자어나 메이지유신 이후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어 등을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바로 주석을 활용하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시에 대한 소양이 어지간하다면, 독자가 어느 나라 사람이든 관계없이 불편하지 않게 감상하도록 하고자, 필자가 시의 말미에 ‘시어’에 대한 주석을 추가한 예는 훗날 기회를 봐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필자의 졸시는 칠언절구로 압운자가 ‘酣(감)’, ‘男(남)’, ‘貪(탐)’이다.
2026. 3. 31.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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