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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국부터 산딸기까지…영월 자연이 차린 '왕의 밥상'
1500만 돌파한 왕사남
그 뒤 숨은 '푸드팀 이야기'
반짝이는 유기에 담은 경복궁 수라상
화려하지만 쓸쓸한 단종의 비극 담아
장식없는 '강원반'에 차린 영월 밥상
다슬기·토끼·산초·산딸기·산삼 뿌리 등
1450년대 산골마을 식재료 고증 노력
"음식은 장면의 공기를 바꾸는 언어"
그 뒤 숨은 '푸드팀 이야기'
반짝이는 유기에 담은 경복궁 수라상
화려하지만 쓸쓸한 단종의 비극 담아
장식없는 '강원반'에 차린 영월 밥상
다슬기·토끼·산초·산딸기·산삼 뿌리 등
1450년대 산골마을 식재료 고증 노력
"음식은 장면의 공기를 바꾸는 언어"
현장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찰나를 포착하기 위해 분투하고, 때로는 배우의 손 대역을 자처한다. 조리하는 신을 촬영할 때는 동선을 짜고, 완성된 음식의 형태를 관리한다. 누군가는 묻는다. “음식 감독이 따로 있어요?” 그렇다. 있다. 카메라 렌즈 너머, 식탁에 흐르는 찰나의 분위기 역시 연출의 일부다. 1500만 관객 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이 받아드는 식탁에도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영월의 밥상을 구성하면서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 1450년대 산골 마을 사람들이 차려낼 법한 음식은 화려해서도, 구하기 어려워서도 안 됐다. 산과 강이 거저 내어준 것 그리고 투박한 부뚜막에서 정성껏 빚어낼 수 있는 것들이어야 했다. 극 중 단종이 마을 사람들과 식사하며 음식 하나하나에 깃든 사연을 묻는 장면이 있는데, 그 메뉴를 구성할 때도 세밀한 고증을 거쳤다.
산초 무침은 알싸하고 독특한 향으로 입맛을 돋우는, 이 밥상의 유일한 향신 채소였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선택한 토끼 저민 고기는 조선시대 강원 산간에서 구할 수 있는 소박하지만 귀한 육류 반찬으로 올렸다. 산삼 뿌리는 구성 단계에서 가장 고민이 많았던 메뉴다. 너무 귀한 식재료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으나, 영월 일대 깊은 산에서 산삼이 났다는 기록이 실재한다. 무엇보다 유배 온 어린 왕에게 가장 좋은 것을 대접하고 싶었을 민초들의 마음을 이 산삼 뿌리 하나에 담고 싶었다.
산딸기는 계절이 허락한 선물이다. 단종이 영월에 머물던 시기는 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강원 산자락에 산딸기가 붉게 익는 계절이다. 별다른 조리 없이 그릇에 소담하게 담아낸 산딸기 한 줌은 이 밥상의 유일한 단맛을 책임진다. 이 소박한 음식들이 강원반 위에서 마음으로 연결되는 장면은, 음식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의 온기가 이어지는 숭고한 순간이다. 관객은 화려한 수라상보다 이 투박한 밥상에서 더 진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왕과 사는 남자’를 비롯해 100여 편의 작품을 거치며 얻은 확신이 하나 있다. 음식은 단순한 시각 소품이 아니라 장면의 공기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언어라는 점이다. 이제 세계가 K콘텐츠를 통해 우리의 음식을 목격한다. 척박한 유배지에서도 피어났던 한식 특유의 따뜻한 정서가 스크린 너머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날을 기대해 본다. 화려한 미장센보다 그 속에 담긴 ‘이야기’의 힘이 더 강렬하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혜원 푸드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