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극장, 더 커지는 그리움
[리뷰] 영화 '극장의 시간들'
영화 이상의 경험, 사람과 기억이 만나는 공간 '극장'
극장 감소에도 그리움과 관련 작품은 늘어나는 아이러니...
영화 이상의 경험, 사람과 기억이 만나는 공간 '극장'
극장 감소에도 그리움과 관련 작품은 늘어나는 아이러니...
[관련 칼럼] ▶▶▶ 우리가 처음 영화에 매혹되었던 그곳 '극장의 시간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극장의 인기가 사그라들수록, 극장의 위기의식이 높아질수록, 극장을 그리워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으니 말이다. 시네필의 둥지와도 다름없었던 명동의 CGV 씨네라이브러리의 폐관을 포함해 극장은 명백히 줄고 있지만, 극장을 주제로 하는 서적과 영화는 늘어나고 있다. 지난 2월에 개봉했던 <미스터 김, 영화관에 가다>와 어제 개봉한 <극장의 시간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특히 <극장의 시간들>은 예술영화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씨네큐브의 개관 25주년을 기념하며 제작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영화는 이종필, 윤가은 그리고 장건재 감독의 단편을 모은 옴니버스 영화의 형식을 갖는다. 물론 세 편 모두 극장에서 벌어지거나 극장이 주요한 모티브가 되는 이야기들이다.
영화는 젊은 영사기사가 노년의 영사기사로부터 이런저런 수칙들과 노하우 등을 전수받는 일종의 ‘프리루드’로 시작된다. 입술을 이용해 필름의 앞뒷면을 구분하거나, 필름을 끼워 넣는 아날로그적 방식 등을 젊은 영사기사는 노트에 빼곡히 기록해 둔다. 노년의 영사기사는 그녀를 지켜보며 이야기한다. “디지털은 좋은데 고장이 많아. 옛날 방식은 오래 걸리지만 좀처럼 고장이 없지.” 특별할 것 없는 노년의 영사기사의 말은 마치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종처럼 큰 울림으로 내려앉는다. 극장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서고, 좌석에 앉아 준비를 하고, 영화를 보고, 감상을 정리하는 과정은 오래 걸리지만 ‘고장이 없다.’ 그렇게 본 영화들은 일생의 조각으로 남는다.
영화 <극장의 시간들> 스틸컷 / 사진제공. ©㈜티캐스트
첫 번째 에피소드는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2026)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연출한 이종필 감독의 ‘침팬지’다. 2000년대의 광화문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침팬지’는 극장을 매개로 우연히 만난 세 친구가 1970년대에 한국에 수입되었던 침팬지 이야기에 매료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오랜 시간이 흐른 이후 감독이 된 ‘고도’(김대명)는 친구들과의 추억을 담아 ‘침팬지’라는 영화를 만든다. <우리들>을 연출했던 윤가은 감독이 참여한 두 번째 에피소드, ‘자연스럽게’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영화 촬영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어린이 배우들과 이를 이끄는 감독의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 <극장의 시간들> 스틸컷 / 사진제공. ©㈜티캐스트
영화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장건재 감독이 연출한 ‘영화의 시간’이다. 극장에서 청소 노동자로 일하는 중년 여성 ‘우연’(장혜진)은 춘천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상경한 여고 동창 ‘영화’(양말복)와 마주친다. 우연은 영화에게 영화 티켓을 건네며 퇴근 후에 만날 것을 약속한다. 일이 끝나고, 영화가 끝나고, 우연과 영화는 아름다운 정동길을 걸으며 쌓인 세월의 공백을 채운다. 영화는 장혜진과 양말복이 이끄는 두 주연 캐릭터 외에 권해효 배우의 영사기사, 이주원 배우의 GV에 참여한 영화감독, 문상훈 배우의 진상 관객 역할 등 빛나는 카메오를 더하며 훌륭한 앙상블을 만들어 낸다.
영화 <극장의 시간들> 스틸컷 / 사진제공. ©㈜티캐스트
세 작품 모두 현시대를 대표하는, 무엇보다 분명한 작가주의로 인정받은 감독들에 의한 프로젝트지만, 이번 극장 프로젝트에 모두 적합한 작품이었는지는 의문스럽다. 이종필 감독의 <침팬지>와 윤가은 감독의 <자연스럽게>의 경우 단일 작품으로는 흥미로운 아이템이지만, 두 작품 모두 극장의 존재에 대한 찬사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세 친구가 만나게 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사실상 영화의 중추는 이들이 빠져들게 되는 침팬지 이야기와 그것을 영화로 만든 감독의 후일담이다. 후자의 경우 아역 배우들의 현장 이야기가 영화의 주축이면서 극장은 그들이 만들어진 작품을 확인하는 장면의 배경으로 등장할 뿐이다. 다시 말해 두 작품은 영화를 만드는 행위, 그리고 영화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예찬에 가깝다.
이 가운데 장건재 감독의 ‘영화의 시간’은 가장 프로젝트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으면서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극장은 인물들이 조우하게 되는 물리적인 공간일 뿐만 아니라, 캐릭터들의 이름이 은유하듯(예컨대 춘천에 사는 ‘영화’가 굳이 서울까지 와야 하는 명분을 만들어 주는 등) 중요한 서사적 설정으로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극장은 궁극적으로 극장 존속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과 이 극장 프로젝트가 기획된 의도에 대한 모든 해답을 보여준다. 극장은 영화와 사람이 만나는 장소를 초월해, 사람과 사람이, 그리고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공간이다. 무엇보다 다른 우회적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영화적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장소(영화가 춘천에서 서울로 오는 이유이자, 영화는 ‘극장’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장치이기도 하다)이다.
영화 <극장의 시간들> 스틸컷 / 사진제공. ©㈜티캐스트
‘영화의 시간’은 극장에서 재회하는 두 친구의 이야기를 담은 하나의 장편으로 만들어져도 좋았을 수려한 단편이다. 영화와 우연의 싱그러운 하루는 분명 ‘극장의 시간들’을 더 고맙고 소중하게 느끼게 해 줄 것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극장의 인기가 사그라들수록, 극장의 위기의식이 높아질수록, 극장을 그리워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으니 말이다. 시네필의 둥지와도 다름없었던 명동의 CGV 씨네라이브러리의 폐관을 포함해 극장은 명백히 줄고 있지만, 극장을 주제로 하는 서적과 영화는 늘어나고 있다. 지난 2월에 개봉했던 <미스터 김, 영화관에 가다>와 어제 개봉한 <극장의 시간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특히 <극장의 시간들>은 예술영화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씨네큐브의 개관 25주년을 기념하며 제작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영화는 이종필, 윤가은 그리고 장건재 감독의 단편을 모은 옴니버스 영화의 형식을 갖는다. 물론 세 편 모두 극장에서 벌어지거나 극장이 주요한 모티브가 되는 이야기들이다.
영화는 젊은 영사기사가 노년의 영사기사로부터 이런저런 수칙들과 노하우 등을 전수받는 일종의 ‘프리루드’로 시작된다. 입술을 이용해 필름의 앞뒷면을 구분하거나, 필름을 끼워 넣는 아날로그적 방식 등을 젊은 영사기사는 노트에 빼곡히 기록해 둔다. 노년의 영사기사는 그녀를 지켜보며 이야기한다. “디지털은 좋은데 고장이 많아. 옛날 방식은 오래 걸리지만 좀처럼 고장이 없지.” 특별할 것 없는 노년의 영사기사의 말은 마치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종처럼 큰 울림으로 내려앉는다. 극장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서고, 좌석에 앉아 준비를 하고, 영화를 보고, 감상을 정리하는 과정은 오래 걸리지만 ‘고장이 없다.’ 그렇게 본 영화들은 일생의 조각으로 남는다.
이 가운데 장건재 감독의 ‘영화의 시간’은 가장 프로젝트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으면서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극장은 인물들이 조우하게 되는 물리적인 공간일 뿐만 아니라, 캐릭터들의 이름이 은유하듯(예컨대 춘천에 사는 ‘영화’가 굳이 서울까지 와야 하는 명분을 만들어 주는 등) 중요한 서사적 설정으로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극장은 궁극적으로 극장 존속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과 이 극장 프로젝트가 기획된 의도에 대한 모든 해답을 보여준다. 극장은 영화와 사람이 만나는 장소를 초월해, 사람과 사람이, 그리고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공간이다. 무엇보다 다른 우회적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영화적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장소(영화가 춘천에서 서울로 오는 이유이자, 영화는 ‘극장’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장치이기도 하다)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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