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네오라는 이름을 듣고 어떤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다면 당신은 분명히 필자와 추억을 공유하는 연령대의 독자일 가능성이 높다. 국민 가구로 이름을 떨치며 상당히 오랜 기간 사랑을 받은 브랜드 덕분에 우리에게 보르네오는 좋은 목재의 생산지인 열대 우림으로 각인돼 있을 터.

열대 우림 하면 흔히들 아마존을 세계 최대의 정글로 떠올린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열대 우림에도 계급이 있다는 것이다. 생성된 시간의 순서에 따라 거슬러 오르면 태고의 선배인 보르네오가 아마존의 한참 앞에 떡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마존이 형성되기도 한참 전, 1억 3천만 년 전부터 보르네오는 이미 생명의 맥박을 이어오고 있었기에 ‘열대우림의 원조’라는 타이틀을 부여할 수 있다. 아직도 어린 아마존이 끝없이 수평의 제국을 펼치고 있다면, 맏형 보르네오의 다눔밸리는 하늘을 향해 꼿꼿이 솟구친 수직의 전당으로 훨씬 오래전부터 생명의 원천이자 보고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것이다. 활엽수로서는 드물게 100미터에 육박하는 나무들이 숲을 이룬 이곳은 영국의 황태자를 필두로 전 세계 탐조인들에게 손꼽히는 버킷 리스트이자 목적지이기도 하다.
보르네오 레인포레스트 롯지, 메인 롯지에서 바라본 강 풍경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보르네오 레인포레스트 롯지, 메인 롯지에서 바라본 강 풍경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이번 방문 중 숲을 체험하는 특별한 ‘나무 오르기’로 아파트 15층 높이의 나무에 매달려 볼 기회가 있었다. 장비를 매단 필자가 순식간에 올라간 높은 곳에서 바라본 보르네오 숲의 모습은 그저 여느 숲의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존보다 7천만 년이나 더 긴 시간을 견뎌온,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의 도서관이었고 그곳의 장서를 한 장씩 넘겨보는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이제 우리가 알던 추억의 보르네오와 가구에 대한 이야기는 한편으로 밀어두고, 살아 꿈틀거리는 진짜 보르네오 열대우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시라.

이 웅장한 생명과 역사의 체험을 놀랍도록 편안하게 제공하는 곳은 밀림 속의 5성 호텔, ‘보르네오 열대우림 롯지(Borneo Rainforest Lodge, Danum Valley)’다. 말레이시아 정부의 엄중한 보호 아래 허가된 인원에게만 출입이 허락되는 보호구역이다. 이곳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관광 도시 코타키나발루에서 50분 비행을 통해 보르네오 열대우림 보호구역의 관문 ‘라하드 다투’를 거쳐야 하고, 그곳에서 두 시간 반 정도 정글을 헤치고 달리는 수고를 들여야 다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이곳에 도착하고 나면 열대우림이 쏟아내는 풍부한 산소로 가슴은 뻥 뚫리고, 수없이 많은 새들의 지저귐 속에 ‘만약 낙원이 있다면 이렇겠지’ 하는 생각에 빠져든다. 2박 혹은 3박 정도에 걸맞게 준비된 체험 프로그램은 천혜의 자연에 고립된 채 정글 속 5성 호텔에서 흥미진진한 정글 탐험과 함께 태고의 신비를 만끽하게 해준다.
보르네오 정글 트레킹 체험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보르네오 정글 트레킹 체험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15층 높이의 나무를 오르는 특별한 체험 / 사진=필자 제공
15층 높이의 나무를 오르는 특별한 체험 / 사진=필자 제공
시기와 우연이 일치하면 자고 일어난 숙소 문 앞으로 찾아온 신비한 붉은 잎 원숭이를 만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몸과 마음에 쌓인 온갖 톡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야말로 피지컬 디톡스, 디지털 디톡스! 도심의 숨 가쁜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와 디지털 압박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롭게, 와이파이 신호 대신 새들의 주파수에 귀를 기울이는 사치를 누리며 준비된 프로그램과 정성 들인 말레이시아 사바주의 음식으로 원시적 편안함 속에 긴장은 스스로 풀리고 대자연인 어머니의 품을 느껴 볼 수 있다.
보르네오 레인포레스트 롯지에서 관찰된 붉은잎원숭이(Red leaf monkey)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보르네오 레인포레스트 롯지에서 관찰된 붉은잎원숭이(Red leaf monkey)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하지만 이곳의 진정한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기 위해선 조금의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 직접 진흙과 코끼리가 남긴 흔적을 딛고 숲 안에 도사리는 거머리를 피해 가며 안내인과 함께 열대 우림 속 동물과 식물을 찾아 걷는 트레킹 프로그램이다. 빽빽한 원시림 속 가늘게 난 길을 따라 진정한 열대 우림의 신선한 속살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준비되어 있으며, 참가자의 수준에 맞게 선택이 가능하다.
오랜 관찰과 경험, 그리고 특별한 교육을 통해 숲의 동물과 식물에 대한 정보와 특성, 흥미로운 이야기까지 술술 풀어내는 가이드와 함께 걷다 보면 놀라운 동물과 식물, 곤충을 조우하게 되고 가쁜 숨을 내쉬며 숙소로 돌아오면 기분 좋은 허기와 적당한 피로로 충만한 보람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비생산적인 일로 좋은 기분도, 보람도 느낄 수 있던 기억이 얼마만인가. 흐르는 땀조차도 상쾌하며 자연이 주는 충만한 만족감에 함께한 모두에게 웃음이 번졌다.
보르네오 레인포레스트 롯지에서 체험할 수 있는 정글 트레킹(Jungle Walk)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보르네오 레인포레스트 롯지에서 체험할 수 있는 정글 트레킹(Jungle Walk)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열대 우림을 조망하는 자쿠지에서 흥건한 땀을 씻어내고 경관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말레이시아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면, 배부르고 등 따스한 모드에서 기가 막힌 경관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어스름이 내려앉는 열대 우림엔 시끄럽게 존재를 알리던 각종 새들과 풀벌레들이 야행성 동물들에게 무대를 내주고 잠자리에 들면, 밤의 주인공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너나 할 것 없이 처음 들어본 백색소음으로 피곤한 몸을 달래준다. 하지만 그대로 잠들기엔 아쉽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주변 환경에 도취될라 치면 또 다른 프로그램이 모두를 기다린다.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트 드라이브’와 ‘나이트 워킹’ 프로그램도 흥미진진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정글 길을 전기 카트로 안내인과 함께 돌아보는 프로그램으로, 야생 동물들과 잠든 동물들의 흔적을 찾아보다 보면 이내 함께한 일행들과 진지한 보물찾기가 시작되고 한마음이 되어 동물의 흔적과 새들의 잠든 모습을 발견하며 우리는 어느새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 별것도 아닌 발견으로부터 함께하는 뿌듯함도 경험하게 된다. 사실 대단한 무엇을 발견하지 못하면 어떠랴? 멸종 위기에 놓인 피그미코끼리와 표범은 쉽사리 그 모습을 보여주진 않을지도 모른다.
보르네오 레인포레스트 롯지에서 관찰된 보르네오 피그미 코끼리(Pygmy elephant)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보르네오 레인포레스트 롯지에서 관찰된 보르네오 피그미 코끼리(Pygmy elephant)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그러나 가족과 함께한 깊은 정글 밤 마실은 모두를 달콤한 꿀잠으로 안내한다. 이렇게 편안히 잠들어 본 게 얼마만인지? 나도 몰래 스르륵 잠에 빠졌다가 소란스러운 새소리에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 별도의 일정으로 다른 날 준비되는 나이트 워킹은 30~40분 정도의 짧은 코스지만 개인 손전등을 들고 숲을 직접 걷는 프로그램으로 곤충과 양서류, 파충류 등을 더욱 가까이 만날 수 있어 흥미로웠다. 소란스러운 밤의 주인공들의 면면을 확인하고 안부를 전하면 어느새 굿 나잇 슬립이 또 우리를 마중 나오곤 했다.
정글 야간 드라이브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정글 야간 드라이브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또 한가지 매우 평화롭고도 즐거웠던 프로그램은 레프팅이다. 숙소 앞으로 굽이 굽이 돌아 흐르는 다눔강을 고무보트를 띄우고 직접 노를 저어 두어 시간 돌아보는 프로그램. 숙련된 가이드가 함께 할 뿐만 아니라 수심이 낮아 안심이 되고 무엇보다 수변을 서식지로 누리는 다양한 동물을 목격하는 행운을 많이 만날 수 있어 만족도가 높았다. 먼 거리였지만 오랑우탄과 눈빛을 교환하는 신비로운 체험, 식당에서 만난 탐조인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아름다운 색상의 킹피셔(물총새)와의 만남 그 밖에도 다양한 숲속 주인들의 사부작 사부작 어슬렁거림에 개입하여 맛보는 자연의 신비가 놀라운 평화로움을 선사했다. 래프팅에서 당당히 노 하나를 집어 들고 어엿한 일인분을 해낸 필자의 열한 살 딸은 엄중한 임무라도 수행한 듯 뿌듯함으로 가득했고, 악어라도 만날까 두려워하던 아내는 살아 있는 오랑우탄과의 조우로부터 조물주의 신비와 감사로 충만했다. 열대 우림 속에선 모두가 순수하고 모두가 맑아진다.
보르네오 레인포레스트 롯지 투숙객들의 다눔 강 래프팅 체험(BRL Guests Rafting at Danum River)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보르네오 레인포레스트 롯지 투숙객들의 다눔 강 래프팅 체험(BRL Guests Rafting at Danum River)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짧은 일정이었고 가족에게 무리한 프로그램을 강요하기 싫어 체험하지 않았지만 자전거 트레킹이나 산 정상을 돌아 꼭대기에 있는 연못에서 수영을 하고 돌아오는 코스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 놀라운 열대 우림의 황홀경을 맛보는 프로그램을 다음번 방문에는 가장 먼저 체험해 보고 싶다. 많은 프로그램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프로그램은 나무 오르기 체험! 보르네오 레인 포레스트 롯지의 홍보 동영상 중에는 영국의 유명 배우 주디 덴치의 열대 우림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포함되어 있는데, 바로 이곳에서 촬영된 것이었고, 그 노배우가 나무에 오르는 프로그램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문의를 했더니 아직 준비 중인 프로그램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아쉬운 마음을 품고 있던 중 마지막 날 동행했던 홍보 담당자가 준비 중인 프로그램을 시험 체험해 볼 수 있다며 고소공포증 여부를 확인해왔다. 사실 높은 곳의 두려움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조금은 두렵기도 했지만, 007의 M처럼 멋지게 나무를 오르고 싶다는 마음으로 도전을 해보게 되었다. 준비된 안전장비를 갖추고 이곳을 찾은 고객들 중 가장 처음 경험하게 된다는 안전 가이드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올라 보았다. 이미 서론에서 언급한 놀라운 풍경! 오랑우탄의 시선으로 숲을 내려다보는 그 순간이 아직도 짜릿하게 추억에 남아있다.
보르네오 레인포레스트 롯지 캐노피 워크웨이 전경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보르네오 레인포레스트 롯지 캐노피 워크웨이 전경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이 수직의 전율은 지상 26미터 높이에 설치된 캐노피 워크웨이(Canopy Walkway)로 이어진다. 트리 클라이밍이 거인과의 정면 승부였다면, 300미터 길이의 공중 다리를 걷는 이 시간은 숲의 지붕 위를 유영하는 평화로운 산책이다.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고개를 돌리면 지상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던 풍경이 펼쳐진다. 나무의 중층부, 즉 숲의 마천루에 집을 지은 수만 종의 생명체가 그들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코뿔새가 무심하게 머리 위를 가로지르고, 붉은잎원숭이가 가지 사이로 인사를 건네는 이 경이로운 조우는 내가 이 거대한 숲의 침입자가 아닌, 잠시 길을 잃은 작은 손님임을 깨닫게 한다. 역시나 이곳에 머무는 이들에게 제공되는 기본 프로그램으로 언제든지 요청에 의해 경험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운무가 드리워진 열대 우림의 아침 시간을 가장 추천한다.

거친 트레킹과 래프팅, 그리고 아찔한 나무 오르기까지 마친 후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정글의 거친 숨결과는 대조되는 소박하지만 정성이 담긴 다이닝(Dining) 시간이다. 벽 없이 숲을 향해 완전히 열린 다이닝 홀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무대다. 숲의 백색소음을 배경음악 삼아 즐기는 식사는 단순히 허기를 달래는 행위를 넘어선다. 말레이시아 사바 지역의 신선한 향신료가 가미된 전통 요리부터 신경을 많이 쓴 서양식 코스까지, 정글 한복판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성찬이 차려진다. 트레킹 직후 건네받은 차가운 물수건 한 장과 정성스러운 말레이 요리 한 접시는 이곳이 세상과 단절된 오지가 아니라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자연과 공존하는 ‘준비된 낙원’임을 증명한다. 도심의 갈급한 끼니가 아닌, 생명의 에너지를 채우는 이 느릿한 식탁이야말로 현대인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사치스러운 휴식일 것이다.
보르네오 레인포레스트 롯지 레스토랑 전경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보르네오 레인포레스트 롯지 레스토랑 전경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보르네오 레인포레스트 롯지의 아침 풍경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보르네오 레인포레스트 롯지의 아침 풍경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이제 2박 3일간의 짧은 시나리오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1억 3천만 년이라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 시간의 층위 위에서 우리는 잠시 한 페이지의 기록으로 머물다 간다. 45미터 위에서 내려다본 다눔 강의 물줄기, 래프팅 노를 저으며 뿌듯해하던 딸아이의 표정,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보물찾기하듯 찾아낸 야생의 눈빛들.

우리는 흔히 보르네오를 잘 다듬어진 ‘가구’의 이름으로 기억해왔지만, 이곳 다눔밸리에서 만난 진짜 보르네오는 누군가의 거실에 놓인 정지된 목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여전히 뜨겁게 박동하며 수직으로 치솟아 오르는 활엽수의 기적이었고, 아마존보다 7천만 년을 더 견뎌온 노련한 생명의 지혜였다.

리조트를 떠나며 다시 덜컹거리는 정글 길에 몸을 싣는다. 비록 다시 디지털의 파도와 도심의 소음 속으로 돌아가겠지만, 내 마음 한편엔 15층 높이의 나무 위에서 마주했던 그 광활한 호연지기가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이 1억 년 된 생명의 도서관이 앞으로도 그 장엄한 기록을 이어가길, 그리고 우리 가족이 넘긴 그 페이지가 다음 세대에게도 아름다운 해피엔딩으로 기억되길 바랄 뿐이다. 이제 내 서재에 놓인 나무 가구를 볼 때마다 나는 그 너머의 진짜 보르네오를, 그 깊고 푸른 수직의 전당을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보르네오 레인포레스트 롯지에서 즐기는 별 관찰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보르네오 레인포레스트 롯지에서 즐기는 별 관찰 / 사진제공. © Danum Valley Rainforest Lodge
말레이시아=한국신사 이헌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