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10월 11일 모스크바 근교 모자이스크에서 태어난 보리스 안드레예비치 필냐크는 공식적으로는 보가우라는 성을 가졌다.
부계는 볼가 독일인 출신이었고 모계는 사라토프 상인 가문이었다. 볼가 독일인이란 러시아의 볼가강 하류 지역과 남부의 사라토프에 거주하면서 독일어를 사용하고 독일 문화를 보존하며 살았던 주민들로, 그 연원은 동방식민운동의 흐름 속 (독일인이었던) 예카테리나 2세의 적극적인 이주 정책에 있었다(1941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이후, 이들은 소련 정부에 의해 나치의 잠재적 협력자로 몰려 대대적인 숙청을 당했다. 1980년대 말, 많은 독일계 주민들이 소련을 떠나 독일로 이주했다).
G S 베레이스키가 그린 필냐크 초상(1928) / 사진출처. godliteratury.ru최초의 소련 소설
20세기의 혁명을 21세기에서 돌아볼 때, 가깝게는 지난 2017년 10월 혁명 100주년 기념일을 준비하며 러시아에서 이 사건에 관한 주목할 만한 작가와 작품이 조명될 때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었던 책이 바로 필냐크와 그가 쓴 『벌거벗은 해』였다.
이 작품은 내전 당시 혁명으로 인한 사회의 격변과 이를 통과하는 사람들의 생활사를 담고 있고, 평자들은 『벌거벗은 해』야말로 최초의 ‘소련 소설’이라고 했다.
필냐크가 이 책을 쓴 때가 1920년인데, 내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출판은 1922년 베를린의 그르제빈 출판사를 통해 이루어졌고, 서적은 러시아로 역수입되었다(1919년부터 1923년까지 존재했던 지노비 그르제빈의 출판사는 고전, 과학 서적 등의 출판을 통해 혁명 이후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던 서적 인쇄를 이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페트로그라드에 설립되었고 모스크바와 베를린에 지부를 두었다. 총괄 경영은 고리키가 맡았다).
1929년에 간행된 필냐크 전집(왼쪽에 세워진 책이 <벌거벗은 해>) / 사진출처. kniganika.ru 사이트
필냐크가 고리키에게 쓴 편지(1928) / 사진출처. godliteratury.ru
필냐크라는 필명은 습작 시절 그가 여러 번 친척을 방문했던 산림 개발지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의 작품 속 줄거리는 주로 러시아의 지방에서 전개되었으며, 작가가 보기에 러시아의 실체를 드러내는 장소로 혁명이 빚은, 혁명을 소화하는 지방의 실정을 조명하는 것은 효과적이었다.
이 작품은 하나의 연속적인 줄거리가 아니라 별개의 이야기를 지닌 여러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지방 도시가 묘사되는데(소설의 주요 배경은 도시 오르디닌으로 원형은 필냐크가 전쟁과 혁명의 세월을 보낸 콜롬나였다), 초점은 1919년, 내전으로 끔찍하고 굶주린 해를 맞은 마을 주민들의 전환기적 삶에 맞춰져 있다. “마을에는 몇 차례씩 적군과 백군이 번갈아 오가면서 모든 길은 잿더미가 되었고 약탈을 당했다.” 오르디닌이 지닌 상징성은 혁명에 물든 전 러시아의 모습으로 확대된다. 그곳에는 유령 같은 주민들이 등장한다. 오르디닌 공작의 몰락한 가족부터 시작해(이는 죽어가는 귀족 가문에 관한 러시아 문학의 전통적 주제 의식을 계승한다), 구두 수선공 질로토프는 오래된 프리메이슨 서적을 읽고, 젊은 여성 올렌카 쿤츠는 체카 사무실인 인민보안국에서 타자기를 치며, 경비대장인 동지 레이티스가 등장한다. 그 후 무정부주의자들의 공동체가 묘사되고 이들은 시골 저택을 점령하며 모두 차례로 망해간다.
위대한 정화, 혁명
“젊은 시절 의지가 박약해 포프코프가의 재산으로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기만” 하고 평생 방탕하게 지낸 아버지 오르디닌 공은 “첫 번째 혁명의 봄에” 자신의 삶을 급격히 전환한다. 그는 “술에 찌든 공작으로부터 낮과 밤을 기도로 보내는 금욕주의자”가 된다.
토착 프리메이슨 구두공 질로토프는 구세주가 나타날 것이라는 환상에 집착한다. 그 구원자는 버려진 수도원 교회 제단에서 레이티스 동지와 올렌카 쿤츠의 성관계에서 출현할 것이다. 이것은 20세기 초 안드레이 벨리의 소설 『은빛 비둘기』의 모티프이기도 하다(이는 또한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영화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모티프이기도 하다). 질로토프는 올렌카 쿤츠가 처녀이기 때문에 이 신비로운 결혼에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필냐크가 빚어내는 혁명 초 혼란기의 모습은 인간의 육체와 일상생활의 혐오스러운 것들, 진실에 관한 무겁고 씁쓸하며 진정 인간적인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혁명의 동력을 유럽으로부터 유입된 마르크시즘이 아닌 러시아 과거의 살아있는 세계에서, 민중의 오래된 지혜와 그들의 원초적인 러시아적 어리석음, 저항적 힘의 분출과 자기 정화의 에너지에서 찾고자 했다. 이 세계는 관능적이고 난잡함을 특징으로 하는 아주 오랜 본능으로 가득하며 무정부주의적이다. “우리에게 한 정부가 있다. 곧 우리의 정신적 양심과 형제애적 관습이다.”
필냐크는 마치 꽃 피는 달 5월에 대지가 활기를 띠듯 끓어오르는 인간의 피가 러시아 민중 깊숙이 박힌 ‘옛것이 옳다’는 진리 개념과 함께 러시아 혁명을 진전시킨다고 보았다. “유럽 어디에선가는 마르크스와 과학적 사회주의가 있는데 여기는 천년의 민속 신앙이 보존되어 있어. 처녀들이 땅을 뛰어 돌아다니며, 자신의 몸과 순결함으로 마술을 걸고 다니지. <...> 러시아 농민들의 전체 역사는 분리주의의 역사입니다. 누가 이 투쟁에서 승리할까요. 기계화된 유럽일까요, 또는 분리주의적이고, 올바른 믿음을 가진 영적인 러시아일까요…?”
어머니, 누이와 함께 한 필냐크 (1910년대) / 사진출처. godliteratury.ru신경제정책 시기라는 유예기간
일련의 혁명 사건이 지니는 혼란은 필냐크의 단편적이고 실험적인 서술 기법에 형식적으로 반영되었다.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던 사건의 여러 요소는 그의 비유적 상징과 반복 덕분에 자연스럽게 하나로 모인다. 필냐크의 문체는 다른 러시아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 경향을 보통 ‘장식 산문’이라 부른다. 그의 이야기 조각들은 리듬감 있게 서로 연결되고, 마이너 모티프가 앞 이야기에서 뒷이야기로 전달되어 그 의미가 반복, 강조된다. 이 모티프 중 하나가 바로 소설 전체에 스며든 눈보라다. 그리고 눈보라가 다시 ‘소련식’ 소리를 낸다. ‘그비우, 가아우, 글라브붐!’ 이는 눈보라가 빚어내는 소리를 모방한 의성어인 동시에 소련에 만연하게 될 각종 기관의 약자다.
소설의 마지막 제7장에는 “제목 없이”라는 지시어와 함께 세 단어가 줄지어 등장한다. ‘러시아, 혁명, 눈보라’. 성모제를 앞두고 첫눈이 내린다. 정교력이 이교도 풍습과 겹친다. 청년들은 처녀들을 쫓는다. 굶주린 노인들은 관을 챙긴다. 성탄절 주간, 결혼식이 열린다. 서리와 눈에 휩싸인 나무들이 푸른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인다. 농가에는 풍속대로 새색시와 새신랑이 결합한다. “저녁 무렵엔 눈보라가 칠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 눈보라가 칠 것이다. <...> 새 눈보라 요부가 끊임없이 숲속 방책들에 달려들어, 울부짖고,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고, 외치고, 화난 아낙처럼 아우성치고 죽어 떨어진다.... 그러나 숲은 의연히 서 있다.”
필냐크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빛나는 은세기 전통에서 초기 소련 문학으로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한다. 1920년대 초 필냐크의 성공은 ‘필냐크주의’라는 말이 붙여질 정도로 커다란 문학적 사건이었다. 라이트 모티프를 사용하고 플롯 전환이 빈번하며 언어 유희적 측면이 강하고, 난데없이 다양한 문서 형식들이 콜라주처럼 들어가는 등 파격적이었다. 필냐크의 이런 태도는 혁명의 이데올로기로 예술 이념이 질서 있게 수렴되기를 원했던 소비에트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다. 필냐크가 소련 정권 초기 10년 동안 가장 인기 있는 소비에트 작가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20년대가 저물어갈 무렵 각종 스캔들이 급속도로 불어나던 그의 상황은 스탈린주의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좌] 보리스 필냐크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우] 은세기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의 시 '보리스 필냐크에게' / 사진출처. biblioaksayblogspotcom“나에게는 러시아의 운명이 공산당의 운명보다 훨씬 더 흥미롭다는 것을 인정한다.”
『벌거벗은 해』로 큰 비평적 논란을 일으켰으나 외견상 건재했던 그는 후속작 『꺼지지 않는 달의 이야기』 출간과 함께 혁명 왜곡, 반동주의, 타협주의로 본격적인 조리돌림을 당했다. 이때까지도 필냐크는 전 러시아 작가 동맹의 수장이었다. 필냐크는 파스테르나크와 함께 작가 동맹을 탈퇴하며 항의했고, 신경제정책 기간에 허용되었던 다양한 문학적 실험은 이와 함께 처참하게 막을 내렸다.
필냐크는 모스크바, 니즈니노브고로드, 오르디닌의 세 ‘키타이고로드’(성채 크레믈에 연결해 지은 담으로 둘러싸인 구역)를 낙관적으로 묘사한다. 이 모든 것은 수천 년 동안 존재했던 이상향으로서의 공간으로 우화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 공동체는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스며있다. 그러나 혁명의 의미가 원초적 러시아 요소로의 회귀라고 선언했던 그의 운명은 앞이 내다보이는 것이었다.
1937년 10월 28일, 필냐크는 ‘반소, 트로츠키주의 사보타주 및 테러 조직’에 가담했다는 혐의와 ‘일본 정보기관의 요원’이라는 혐의를 받고 체포되었다. 1938년 4월 21일, 그는 42세의 나이에 총살당했다. 복권은 1956년에야 이루어졌다. ‘스텐카 라진과 푸가초프의 난의 시대,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성상화(聖像畫), 영웅 서사시, 숲과 초원, 늪과 강, 물의 요정과 도깨비를 가진 러시아’를 “혁명이 선사해 준 진리, 정의”와 결합하기를 염원했던 작가의 꿈은 아직 온전히 복권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