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었다”, “침묵 속에서 인간의 마음은 가장 진실한 언어를 얻는다.”, “사랑은 말해질 때보다, 말해지지 못할 때 더 깊어진다.” 어디선가 본 듯한 주옥같은 문장들. 당신의 기억 속에 여전하다면 감수성이 높은 축에 확실히 든다. 20세기 이 땅의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알포스 도데의 ‘별’에 나온다. ‘활자로 그린 수채화’라고 불렸던 명작이다.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1897). 남불(南佛) 님(Nîmes) 태생으로, 기자와 공무원을 거쳐 작가가 되었다. 섬세한 감수성과 따뜻한 정서를 지닌 그의 작품은 낙천성과 우울함이 공존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운 문체의 소유자’라는 상찬에는 이견이 없다. 텍스트에는 언제나 특유의 음악성과 회화감이 묻어난다. 마침내 그의 작품은 음악과의 교감을 이루는데, 바로 오페라로 변신한 ‘아를의 여인(L'Arlésienne)’이다. 원래 소설이었으나 희곡으로 개작했고, 1872년 조르주 비제가 먼저 관현악 모음곡으로 만들어 대성공을 거둔다. 그로부터 25년 후인 1897년 이탈리아 작곡가 프란치스코 칠레아(Francesco Cilea, 1866~1950)가 오페라로 재탄생시켰다.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1840~1897) / 사진출처. 독일 위키피디아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1840~1897) / 사진출처. 독일 위키피디아
[좌] 이탈리아 남부 팔미 태생의 작곡가 프란치스코 칠레아(1866~1950)  [우] 칠레아의 오페라 '아를의 여인' 포스터 / 사진출처. 독일 위키피디아
[좌] 이탈리아 남부 팔미 태생의 작곡가 프란치스코 칠레아(1866~1950) [우] 칠레아의 오페라 '아를의 여인' 포스터 / 사진출처. 독일 위키피디아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농가. 집안의 기둥 페데리코(Federico)는 아를에서 온 이름 모를 여인을 사모한다. 어머니에게 그녀와의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간청하는데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온다. 동네를 드나들던 마부 메티피오(Metifio)가 ‘그 여자는 내 여자다’라고 주장하며 그간의 연애 편지를 증거로 내놓은 것이다. 절망에 빠진 페데리코는 그녀를 잊으려 하지만, 머릿속엔 이미 그녀 모습으로 가득 차 있다. 동네 처녀 비베타(Vivetta)와 결혼하라는 어머니의 설득에 따르겠노라 결심했으나, 마음은 정반대다. 그 이름 모를 아를의 여인, 잊으려고 할수록 더욱 뚜렷해지는 그녀의 기억 때문에 괴롭다. 2막에서는 고요히 자고 있는 동생의 평온함과 대비된 채, 자신의 타들어 가는 심정을 드러내는 아리아가 나온다. 바로 ‘페데리코의 탄식(Lamento di Federico)’이다.

[테너 알프레도 크라우스가 부르는 칠레아의 오페라 ‘아를의 여인’ 중 ‘페데리코의 탄식’]

언제나처럼 평범한 목동의 이야기라네
가엾은 저 아이는 잠이 들려 하는구나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잠에 빠져들 뿐

오, 나도 저렇게 잠들 수만 있다면, 망각이라는 축복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나도 동생처럼 깊이 잠들어 모든 걸 잊고 평온을 찾고 싶어라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봐도 가슴속에 서린 그 여인의 눈동자를 지울 수 없구나
언제나처럼 눈앞에 어른거리는 그녀의 잔상, 내 영혼에 가혹하게 새겨진 그 얼굴!

오, 사랑은 정녕 형벌인가! 이토록 지독한 고통을 나에게 안겨주다니!
잊으려 할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그녀의 미소, 나의 온 존재를 뒤흔드는 저주받은 열정이여!

아, 숙명일진저! 이 가슴에서 그녀를 떼어낼 수가 없구나!
오, 가엾은 나의 심장이여! 지독한 사랑이여!
나는 이제 죽음만을 바랄 뿐이라네.

결말은 짐작대로 비극이다. 결혼식 날 밤, 다시 나타난 악당 메티피오는 아를의 그녀를 납치해 멀리 도망갈 거라며 조롱하고, 페데리코는 분노의 광기에 사로잡힌다. 곳간 꼭대기에 올라가 저 멀리 말과 함께 사라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절망 끝에 스스로 추락해 죽는다는 이야기다.

1세대 스페인 테너 알프레도 크라우스(Alfredo Kraus, 1927~1999)가 압권이다. 고음에서 소리가 얇아지지 않고 바늘 끝처럼 날카로우면서도 우아하게 뻗어나간다. 소리를 가슴이 아닌, 머리 쪽 두성(頭聲)으로 울리는 ‘안 포스트(En poste)’ 기법의 달인. 불어로 직역하면 ‘제자리에 있는’, ‘배치된’이라는 뜻. 성악적으로는, 소리가 흔들리지 않고 ‘특정한 공명점에 완벽하게 고정된 상태’를 의미한다. 크라우스가 70대까지 고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는 소리를 억지로 밀어내지 않고, 내야 할 소리를 마스크, 즉 얼굴 앞부분에 배치한다. 제자리에 딱 붙은 소리는 목에 무리를 덜어주고 멀리까지 선명하게 전달되는 투사력(投射力)을 얻게 되는 것. 숨이 흐트러지지 않고 소리의 길을 단단히 열어젖혀 길고 선명히 뻗어나가게 한다. 알프레도 크라우스가 페데리코의 탄식에서 제대로 시전하고 있다. 1990년, 63세 때 녹음이다.
스페인이 자랑하는 테너 알프레도 크라우스(Alfredo Kraus,1927~1999) / 사진출처. 독일 위키피디아
스페인이 자랑하는 테너 알프레도 크라우스(Alfredo Kraus,1927~1999) / 사진출처. 독일 위키피디아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