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그린 영화 ‘빅쇼트’의 한 장면. 리처드 탈러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이 영화에 직접 출연해 행동경제학 개념을 통해 작품 속 상황을 설명했다.  한경DB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그린 영화 ‘빅쇼트’의 한 장면. 리처드 탈러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이 영화에 직접 출연해 행동경제학 개념을 통해 작품 속 상황을 설명했다. 한경DB
‘승자의 저주’.

승리를 위해 지불한 대가가 승리의 가치를 압도하는 상황을 일컫는 행동경제학 용어다. 1950년대 미국 석유기업들의 멕시코만 석유시추권 확보 경쟁에서 유래했다. 당시 기술로는 매장량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었지만 입찰자가 몰리자 입찰가격이 치솟았다. 그 결과 2000만달러라는 당시로서는 막대한 입찰가격을 써낸 기업이 시추권을 따내며 ‘승자’가 됐다. 그러나 몇 년 뒤 측량한 결과 석유 매장량의 가치는 1000만달러에 불과했다. 인간의 완벽한 합리성을 신봉하던 주류 경제학에 균열을 낸 사례다.

[책마을] 수재들도 '바가지'를 쓰는 이유…비합리적 인간의 역사
‘행동경제학의 대부’ 리처드 탈러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승자의 저주’를 비롯해 인간의 ‘이상 현상(anomalies)’에 대한 자신과 학계의 연구를 집대성해 1992년 <승자의 저주> 초판을 출간했다. 주류 경제학에 대한 도전장이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머턴 밀러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는 탈러 교수의 글에 격노하며 반박했고, 법경제학의 창시자 리처드 포스너 시카고대 로스쿨 교수는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했다.

30여 년 뒤 문제작에서 행동경제학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승자의 저주>가 전면개정판으로 돌아왔다. 탈러 교수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넛지>의 저자이기도 하다. 상아탑 안에만 갇혀 있던 행동경제학 이론을 정책, 금융, 마케팅 등 현실 세계에 적용하며 행동경제학을 대중화시켰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초판의 70% 가량을 새로 썼다. 탈러 교수는 차세대 행동경제학자 알렉스 이마스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 교수와 함께 50년간의 행동경제학 연구를 집대성했다. 6개월로 예상했던 개정 작업은 5년이 걸렸다. 모든 장에 걸쳐 ‘업데이트’라는 부분을 추가하며 최신 사례와 연구 결과를 반영했다. 이베이에서 벌어진 흥정 빅데이터를 분석한 연구 등을 넣어 초기 행동경제학에서 주목했던 현상들이 현재에도 동일하게 작동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행동경제학 초창기에는 이런 반론이 따라붙었다. ‘자본의 규모가 커지고 전문가가 개입하면 시장은 합리적으로 돌아갈 것이다.’ 책은 이에 반박하듯 현대 자본주의의 진풍경까지도 담았다. 쿠바와 관련 없는 펀드가 단지 종목 코드가 ‘CUBA’라는 이유로 하룻밤새 70% 폭등하거나, 개인 투자자들의 결집으로 주가가 60배 이상 오르며 ‘밈주식’이라는 신조어를 낳은 오프라인 비디오게임 대여점 ‘게임스톱’ 사례 등이다.

다만 인간의 비합리성을 그저 결함이라고 바라보지는 않는다. 얼래인 콘 미시간대 정보학과 교수 등 연구팀은 2013~2016년 40개국 대도시에서 총 1만7303개의 지갑을 은행, 관공서, 문화시설 등에 뿌렸다. 지갑이 반환되는 비율을 지갑 속 돈의 액수와 비교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이기적 인간이라면 금전적 유인이 증가할수록 흑심을 품기 쉬울 것’이란 예상을 배반했다. 관찰 대상 국가 대부분인 38개국에서 돈이 든 지갑이 빈 지갑보다 반환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지갑 속 돈의 액수가 많을수록 반환된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명한 협조자’로서의 인간은 크고 작은 협력을 통해 사회를 이뤄왔다. 책은 이렇게 요약한다. “경제주체는 경제학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착하다.”

저자들은 행동경제학이 시장의 모든 난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인정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인간이 지닌 본연의 ‘이상한 점’을 응시하며 타성과 오판을 경계하는 작업이다. 소비자의 의사 결정 과정이 궁금한 기업 실무자나 행동 변화를 유도해야 하는 정책 결정자들도 참고할 만한 책이다.

저자들은 책 마지막에 실은 ‘감사의 말’을 이렇게 맺는다. “우리도 사람인지라 이 책에 여전히 오류와 실언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방금 언급한 분들을 탓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고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실수는 인간의 본성이고 용서는 신성한 것이니, 부디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