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이 전시를 어찌하여 이 사람과 보게 됐을까. 좋아하는 전시는 되도록 혼자 즐기는 편이다. 가끔 좋아하는 이에게 같이 보자고 청하기도 하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전시를 보는 것은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해서 대체로 자발적 고독을 선택한다. 나와 내가 둘이 보는 셈이다. 그 시간은 언제나 적확한 자극과 몰입, 희열과 위로여서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티노 세갈, 예전부터 그의 독특한 예술 세계관이 궁금했다. 물성을 넘어서는 삶과 예술을 오직 순간으로 증명하는 예술가. 그러기 위해 예술을 위한 일체의 작위를 모두 거부하고, 작품 또한 무게와 부피를 지니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기록되지 않도록 요구한다. 현대 미술이 지니는 개념에서 한발 더 나아간 양상이다. 심지어 사인해 달라는 요청에 백지에 펜 뚜껑을 닫고 사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 세갈, 세고 멋지다. 어서 만나고 싶어라.
남편이 한남동에서 미팅이 있다고 했다. "그날 나 리움 갈 건데 그러면 같이 전시 볼래?" 이런, 그만 실언이 나왔다. 결혼도 꼭 현대 미술을 닮았다. 더러 이상하고 웃기고 때때로 괴상하다 실소가 터지기도 하고, 웃다가 울고 울다가도 어느새 손잡고 쎄쎄쎄하고 있는 종잡을 수 없는 모양새가 아주 똑같다. 우리도 그런 세월을 살았다. 지금의 평화는 전쟁 뒤의 휴전 협정 같은 것이어서 언제나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로비에 사람들이 많았다. 앉은 사람, 선 사람, 지나가는 사람. 어디선가 낮은 허밍이 들린다. 앉아 있는 누군가의 낮은 목소리다. 저쪽에서도 남자의 저음이 들린다. 관객 사이에 퍼포머가 섞여 있어 퍽 흥미롭다. 우리 모두 동시대를 사는 지구의 퍼포머라는 걸 알려주는 듯, 예술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 된다. 그들은 계속 낮거나 단조로운 허밍을 하며 손가락을 하나하나 마주 잡고, 그러다 드러눕고 서로 기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앉아 있는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 잡기도 한다. 단순한 행위가 삶과 관계라는 의미를 입고 가슴을 진동시킨다.
M1 전시장은 일종의 공연장이다. 해석자라 불리는 퍼포머들이 녹색 공과 자전거, 바이올린 등 몇 개의 오브제로 상황을 보여준다. 오래 갈고닦은 능숙한 퍼포먼스겠지만 공은 그 자체로 불안정하고 자전거도 거꾸로 타거나 아슬아슬하게 타고 바이올린은 종종 끽끽거린다. 그들을 지켜보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즐겁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내내 불안하게 중심 잡는 사람들을 따라 내 마음도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 알아챈다. 이건 그냥 우리 모습이야. 생의 공을 악착같이 굴리고, 때로 거꾸로 달리기도 하고, 불협화음을 내면서도 중심 잡으려 기를 쓰고 있는, 딱 우리가 사는 세상이네.
그리고 문제작 <키스>. 조각들에 둘러싸인 공간에서 젊은 남녀가 내내 키스를 주고받는데 에로틱하지 않다. 오히려 어떤 작용 같다. 서로를 응시하고 다가가고 끌어안고 밀어내고 멀어지고 외면하고 그러다 다시 반복. 애틋하다 지긋지긋하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인간의 작용 반작용, 저것은 사랑이다. 사랑이야말로 모든 예술의 본령이고 요체가 아니겠냐고, 끝이 안 날 것 같은 키스를 저리 해대고 있는 것인가. 역시 남편이랑 보기에는 좋지 않아 어서 나가자 하려는데 이게 무슨 일, 넋을 빼고 집중 중이다. 그다지도 부러운 것이냐며 옆구리를 찌르며 끌고 나왔다.
1층으로 올라가니 한 사람이 바닥에서 천천히 굴러다니고 있다. "아, 신나, 데구르르"가 아닌 "아, 괴롭고 괴롭도다"라며 쥐어짜듯이. 차마 오래 보기 힘들 정도로 느린 몸부림에 가까웠는데, 이번에도 남편은 한 동작 한 동작 놓칠세라 응시하는 게 아닌가. 오히려 먼저 자리를 뜨는 건 나였다. 그러고 보면 삶의 모습도 비슷했다. 나는 회피형이고 그는 돌파형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파르르 분노하기보다는 나는 그냥 덮거나 피했다. 그리고 서둘러 잊었다. 그는 생의 폭풍우가 닥치면 그냥 온몸으로 맞고 마를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버텼다. 옴팡 다 젖고 너덜너덜해져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났다.
티노 세갈 / 사진. ⓒ김제원, 제공. 리움미술관
티노 세갈전은 사진을 찍지 못한다. 팸플릿이나 자료도 없다. (모든 건 작가의 의도된 연출이다.) 오직 그 순간의 현장만이 있을 뿐. 그런데도 몇몇 사람은 사진을 찍는데,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일체의 기록도 남기지 말라는 것은 예술가가 세운 원칙이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자 화두일 것이다. 물질과 물성에 둘러싸여 나의 본질과 본성을 놓치고 있는 이들에게 주고자 한 것은 바로 자유와 해방감 아닐까. 오로지 감각을 열고 순간을 만끽하라는, 그것이 예술이고 인생이라는, 향유의 자유와 해방. 아무것도 남기지 마, 소중한 건 여기 눈앞에 다 있다고.
"가슴이 확 열린 느낌이야. 현대 미술은 지금 내가 느끼는 대로 그냥 누리면 되는 거네! 억지로 해석하거나 어렵게 의미를 덧대지 말고. 이 작가 너무 좋은데!" 남편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나는 이 남자와 30년을 살았는데 이런 반응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토록 오래 살아도 사람은 서로를 다 알지 못한다. 미술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전시 이야기를 했다. 그 퍼포먼스에서는 마음이 어땠는지, 그다음은 또 어땠는지. 내가 느낀 감정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티노 세갈 전시는 분명히 낯설다. 어색하고 불편하다며 움츠러들면 그저 이상한 현대 미술일 테고, 신기하고 재밌다며 눈을 빛내면 영성의 감각이 깨어날 수 있다. 불현듯 가장 진화된 형태의 예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희소성, 예술성으로 따지면 극강의 가치를 지녔으므로. 이 세상에 발현되는 순간 사라져버리는 작품이라니. 인공지능이 도저히 따라할 수도, 담아낼 수도 없는 인간 정신과 육신의 순간 발화인 셈.
오래 알았던 사람과 보시라 권하고 싶다. 일일이 표현하고 말하지 못하지만 마음을 오래 나눈 이들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에서 본 모든 퍼포먼스가 나와 당신들의 이야기 같다. 우리의 모습이고 살아가는 얼굴 같다. 그 평범한 것들이 예술이라는 걸 불현듯 깨닫는다. 우리의 삶도 순간을 스쳐 지나간다.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끝날 것이다. 그런데도 삶은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 이제서야 취향이 통하는 남편과 육전에 소주를 마시며 싱긋 웃었다. 우리 내일은 또 안 맞겠지만, 오늘은 이걸로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