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만으로 미술계 정상
홍보용 도록·기념품도 없어
관람객이 가져가는건 경험뿐
실물·실체 있는 작품보다
생각할 '공간' 만드는게 예술
작품 만드는 '해석자'들 실수 땐
"세계선수권대회 아니니 괜찮다"
물질 없는 예술, 설명서·사진도 없다
▷물질 문명을 혐오하는 건가요.
“그렇진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물건을 만들고 소비하는 것에 지나치게 집중해왔어요. 저는 다른 삶의 방식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야구를 다섯 살배기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때, 규칙이 적힌 책을 쥐여주는 대신 실제로 보여주는 게 효과적이잖아요. 인류 지식의 많은 부분은 기록이 아니라 그런 ‘전승’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제 작품은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지 않으면서도 예술을 하고 싶다’는 고민의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미술관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하는 편이 낫지 않나요.
“최근에는 야외 작업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멕시코에서는 말 그대로 거리 위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작업을 진행 중이에요. 하지만 길거리와 미술관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어요. 길거리에서 벌이는 작업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미술관은 ‘일상과 다른 무언가를 경험하겠다’고 결정하고 오는 곳이니까요.”
▷홍보용 이미지도 없고 인증샷도 금지돼 있습니다. 왜인가요.
“사진은 제 작품에 대해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해석자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본다고 한들, 거기서 당신이 느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중요한 건 그 상황 속에서 관객이 직접 겪은 경험과 관객입니다. 사진과 영상을 쓰느니 차라리 ‘누군가 나를 향해 돌아서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고 글을 쓰는 게 훨씬 낫습니다.”
▷기록이 없으면 당신의 작품이 잊힐 수도 있습니다.
“미술계에서는 기록 없는 작품이 생소하겠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발레를 생각해 보세요. 조지 발란신의 발레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레퍼토리 중 하나인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 가까이 됐어도 그의 발레는 사라지지 않고 전승됐어요.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림도 얼마든지 손상되거나 파괴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실물이 있는 작품보다 제 작품이 더 오래 살아남을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라는 미술관 입구의 작품은 물리적으로 파괴가 불가능합니다. 작품을 본 관객의 기억 속에 있으니까요. 세상에 있는 많은 것은 유한하지만 그 영향과 효과는 영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예술가나 이 세상에 어떤 영향이라도 잠시나마 끼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예술이란 공간을 만드는 것”
▷어떻게 예술을 하게 됐나요.
“어릴 때부터 삶의 의미에 관한 거대한 성찰에 끌렸습니다. 가톨릭 성당과 개신교 교회에 나가보기도 했지만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러다 예술이라는, 삶에 대한 세속적인 성찰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열여덟 살에 독일 베를린으로 갔을 때 실험 연극과 무용 공연에 매료되면서 예술이 ‘나와 세상의 관계’를 다루는 작업이라고 느꼈어요.”
▷작품은 어떤 뜻으로 해석해야 하나요.
“예술은 ‘이건 이런 뜻이니 이렇게 감탄하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삶의 복잡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를 읽는 방식을 제안할 뿐입니다. 앤디 워홀을 생각해 봅시다. 그의 작품이 실제로 뭘 말하는지 정확히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캠벨 수프 캔 그림은 확실히 현대 산업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줬고,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와 자아상을 바꿔놨습니다. 흥미로운 건 워홀이 인터뷰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한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에요. 그냥 작은 목소리로 ‘예’, ‘아니오’라고만 했지요.”
▷하지만 당신은 꽤 친절히 자기 작품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 설명을 하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니까요. 하지만 단정적으로 제 작품을 정의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작가와 작품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워홀은 철학자 자크 데리다나 장프랑수아 리오타르처럼 텍스트를 쓰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그 철학자들의 텍스트보다 워홀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오직, 당신의 경험 속에서
▷해석자가 실수하면 어떻게 하나요.
“이번에는 예술 자전거 세계 챔피언 선수 출신의 해석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에게 말했어요. ‘넘어져도 괜찮다. 이건 예술이다. 세계선수권대회처럼 점수를 깎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수가 오히려 그 사람을 더 인간적이고 취약하게 보이게 만들 수 있거든요. 다만 너무 자주 실수하면 작품의 리듬이 깨지니 집중해달라고 요구하기는 합니다. 반대로 너무 능숙해서 흔들림이 없는 사람에게는 더 움직이라고도 하죠.”
▷관객이 공을 빼앗거나 방해하면요.
“상관없습니다. 상황은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그저 어딘가로 흘러갈 뿐입니다. 다만 리움미술관 측에서 제지할 수도 있겠네요. ‘키스’ 작품 옆에서 ‘우리도 해보자’며 키스하는 커플은 몇 번 본 적 있어요.”
▷몰래 사진을 찍는 관객도 분명 나올 텐데요.
“휴대폰은 좋든 싫든 우리 몸의 연장선이 됐습니다. 사진을 찍는 건 그들만의 보는 방식이에요. SNS에 올라온 사진을 일일이 내려달라고 하기도 어렵고요. 하지만 저는 그 사진들이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품이 사진으로 기억되기보다는 다시 전시되는 편을 선호해요. 제 작업은 3차원적인 경험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