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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앞둔 '왕사남'..영화 속 왕의 밥상 이렇게 차렸습니다[이혜원의 미디어 속 한식]
영월의 척박한 땅에서 길러낸 위로
‘푸드팀’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대중에게 생소할지 모른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만들어지지만, 여전히 음식은 소품의 일부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카메라 앞에 놓이는 음식 하나에도 시대적 고증과 연출의 의도, 그리고 배우의 감정선을 담아내는 사람들이다. 시대극에서는 역사의 숨결을, 현대물에서는 캐릭터의 성격과 삶의 궤적을 접시 위에 구현한다.
이를 위해 제작, 연출, 미술팀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전체적인 배경색과 그릇의 기물까지 맞추는 세밀한 공정을 거친다. 그 치열한 다자간 미팅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촬영장에서 우리 푸드팀의 ‘요리 마술’이 시작되는 것이다.
현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찰나를 포착하기 위해 분투하고, 때로는 배우의 손 대역을 자처한다. 조리 과정 씬을 촬영할 때는 배우들의 조리 동선을 짜고, 완성된 음식의 형태를 관리하고, NG 후 필요한 재료를 즉각 준비하기 위해 보조 출연자임과 동시에 요리사로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도 많다. 그로 인해 그동안 다양한 영화·드라마에서 내 손이 여러 형태로 화면에 비치기도 했다.
누군가는 내게 묻는다. "음식 감독이 따로 있어요?" 그렇다. 있다. 카메라 앞에 놓이는 음식 하나에도 시대적 고증과 연출의 의도와 배우의 감정선이 모두 담겨야 하기 때문에 전담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스크린과 밥상이 만나는 지점에서 한식이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지, 또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지난 20년을 기록해 본다.
〈왕의 남자>에서 시작해 <왕과 사는 남자>까지
영화계와 푸드팀으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5년, 이준익 감독의 영화 <왕의 남자>였다. 당시 영화 쪽에서 일하던 남동생의 소개로 한식 선생님이셨던 어머니와 함께 연산군 시대의 연회 상차림을 맡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조선 시대 상차림을 연구하고, 사료를 찾아보고, 기물을 고르고, 스크린 위에 음식을 올렸다. 그때의 경험이 뿌리가 되어 지금까지 10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같은 글로벌 OTT 시리즈로 이어지는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이중 첫 번째 이야기로 꺼낼 작품은 최근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다. 공교롭게도 나의 데뷔작과 제목이 유사해 대본을 처음 받아 쥐었을 때 20년 전 그날처럼 마음이 크게 요동쳤다.
척박한 땅 영월이 내어준 선물들
민물고기 어죽과 다슬기국은 강원도와 충청도 내륙의 강가 마을에서 오래전부터 해 먹던 음식으로, 서강에서 손으로 건져 올릴 수 있는 다슬기는 영월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식재료 중 하나였다. 이 두 음식은 이 밥상에서 국물의 온기를 담당한 영월 음식이었다.
산삼 뿌리는 처음에 넣을지 말지 가장 망설였던 것이다. 산삼이 너무 귀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영월 일대 깊은 산에서 산삼이 났다는 기록이 있고,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이 유배 온 어린 왕에게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 싶었을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산삼 뿌리 하나가 이 밥상에서 말하는 것은 그것이다.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을 가져왔다는 마음.
산딸기는 계절이 허락한 선물이다. 단종이 영월에 머물던 시기는 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강원도 산자락에 산딸기가 붉게 익는 계절이다. 특별히 손을 댈 것도 없이, 따서 그릇에 담으면 그만이다. 소담하게 담긴 산딸기 한 줌이 이 밥상에서 유일하게 단맛을 냈다. 이 소박한 음식들이 강원반 위에서 마음으로 연결되며 사람들과 식사를 나누는 장면은,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이어지는 숭고한 순간이었다. 관객들은 화려한 수라상보다 더 진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음식을 넘어 마음을 잇는 디렉팅
이제 K-콘텐츠를 통해 전 세계가 우리 음식을 본다. 하지만 나는 화려한 음식들보다 그 속에 담긴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척박한 유배지에서도 피어났던 한식의 따뜻한 정서처럼, 앞으로 이 연재를 통해 스크린 너머 우리가 열정적으로 준비하며 펼쳐내는 미디어 속 한식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