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한 시장분석업체가 쓴 보고서가 23일(현지시간) ‘인공지능(AI)발 공포 투매’를 촉발하며 미국 뉴욕증시를 강타했다. 다우지수는 800포인트 넘게 급락했다. 시트리니리서치가 전날 공개한 ‘2028년 글로벌 지능 위기’ 보고서가 기폭제가 됐다. 보고서는 AI 혁신이 2028년 대형 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美 증시 뒤흔든 'AI發 종말론'…"2028년 위기 온다"

◇ “AI가 만든 유령 GDP”

보고서는 2028년 6월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형식으로 작성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하반기 S&P500지수가 8000을 돌파하며 축제 분위기가 절정에 달한다. 기업들은 AI 도입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인력을 줄인다. 화이트칼라(사무직) 감원으로 기업은 역대급 수익을 올리고 국내총생산(GDP)도 늘어난다. 하지만 실질 임금 증가는 멈춘다. 보고서는 이를 ‘유령 GDP’로 명명했다. 통계상 생산이 늘지만 그 부가 소비로 이어지지 않고 소수의 반도체, 데이터센터, 연산 자원 소유자에게만 집중된다는 것이다.

시트리니는 특히 화이트칼라 해고가 단순 실업을 넘어 경제의 선순환을 끊을 것으로 전망했다. AI가 똑똑해질수록 기업은 사람을 줄이고, 해고된 전문직 종사자는 저임금 서비스직으로 몰려 경제 전체의 임금을 하향 평준화한다는 설명이다.

경제는 금리 인하와 양적완화 같은 통화정책이 전혀 먹히지 않는 구조적 불황에 직면한다. 시트리니는 “현대 경제사에서 인간의 지능은 희소한 투입 요소였지만 우리는 지금 그 특권이 되돌려지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금융위기 가능성”

시트리니는 특히 13조달러에 달하는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용점수가 높고 안정적인 소득을 유지하던 화이트칼라 전문직이 AI에 의해 소득 기반을 상실해 대출을 제때 갚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 등 기술 중심지의 집값이 10% 가까이 급락하며 금융위기가 나타나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땐 저소득층의 비우량 대출이 문제였다면 2028년엔 화이트칼라의 우량 대출이 부실화하며 위기가 터질 수 있다는 게 차이다. 시트리니는 또 AI 코딩 도구 발달로 소프트웨어 기업이 가격 결정력을 잃고 여행 예약, 보험 갱신, 부동산 중개 수수료 등 ‘정보의 비대칭성’에 기댄 산업이 무너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AI 확산에 따른 위협에 흔들리던 뉴욕증시는 시트리니 보고서가 알려지자 또다시 휘청였다. 이날 다우지수, S&P500지수, 나스닥지수 모두 1% 이상 급락했다. 보고서에서 거론된 음식 배달앱 도어대시를 비롯해 마스터카드,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우버, 블랙스톤 등의 주가가 하루 만에 4~7% 떨어졌다.

특히 데이터도그, 크라우드스트라이크, 지스케일러 등 소프트웨어와 사이버보안 종목이 9% 이상 하락했고 IBM은 하루 낙폭 기준으로 25년 만에 최대인 13% 넘게 폭락했다. IBM 주가는 앤스로픽이 자사 클로드 코딩 모델이 컴퓨터언어 ‘코볼(COBOL)’을 대체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발표한 것에도 영향을 받았다. 코볼은 IBM 메인프레임 시스템이 사용된다.

토머스 조지 그리즐투자자산운용 포트폴리오매니저는 블룸버그통신에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사태가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도 이번 보고서는 AI의 파괴적 혁신과 관련한 실질적 우려를 충분히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한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도 이날 한 세미나에서 “AI가 주도하는 랠리가 더욱 취약한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일부 소프트웨어 기업이 파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한경제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