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서 27년째 악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데이비드 김. 2월 5일부터 7일까지,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의 솔리스트로 무대에 오른다. [▶공연 정보] 1986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을 통해 연주자의 길에 들어선 지 어느덧 40년. 이번 공연은 마치 한 연주자의 시간이 돌고 돌아 다시 같은 지점에 맞닿는 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 © Allie Skylar, 출처. 한경 DB
사진. © Allie Skylar, 출처. 한경 DB
그의 삶은 시작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의 모친 조봉희 여사는 클래식 음악이 생소했던 시절, 1956년 서울예고 1회 졸업생으로 서울대를 거쳐 미국 이스트만 음대에서 박사까지 마친 클래식 음악계의 선구자였다. 음악을 사랑했던 그녀는 자식을 세계적인 솔리스트 연주자로 키우기로 결심하였고, 그렇게 그는 기억하는 인생의 모든 순간을 바이올린과 함께하게 되었다.

세 살 아가의 손에 주어진 바이올린은 이후 그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하루도 빠짐없는 연습, 반복되는 시간들. 한 시간의 연습이 다섯 시간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신동으로 이름을 알리며 방송에 출연했고, 여덟 살에는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 예비학교에 입학해 도로시 딜레이1)의 제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력이 화려해질수록 또래 친구들의 평범한 토요일은 이제 그의 삶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향하는 고단한 생활이 계속되었다. 콘서트, 콩쿠르 그리고 연습 그리고 또 연습. 그 시절 그에게 음악과 바이올린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언어였지만, 동시에 그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는 벽이기도 했다.

그가 열네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위암 진단을 받았다. 연습을 재촉하던 엄마의 잔소리는 힘을 잃었고 그마저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내가 바라는 건 네 건강과 행복뿐이란다.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괜찮아” 아들의 운명을 정해놓은 어머니는, 그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아들을 연주자의 길로 이끌어온 어머니였지만, 주어진 운명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삶 속에서 아들이 행복하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조봉희 여사와 데이비드 김 / 사진 출처. Korean American Story 유튜브 캡처
조봉희 여사와 데이비드 김 / 사진 출처. Korean American Story 유튜브 캡처
하지만 공부도, 운동도... 바이올린이 아닌 다른 삶은 경험해 보지 못한 소년에게 그 선택의 자유는 그저 몸을 누르는 짐일 뿐이었다. 그를 움직이던 동력이 사라지고, 캄캄한 무대에 혼자 남겨진 소년은 여전히 토요일이면 뉴욕으로 향했고, 연습을 이어갔지만, 반복은 궤도를 벗어나지 못한 관성이었을 뿐, 그 일상의 이유를 그때의 그는 알 수 없었다.

방향을 잃은 채 견뎌낸 시간이 흐른 후, 그의 손을 다시 잡아준 사람은 스승 도로시 딜레이였다. 그녀의 권유에 다시 목표를 세웠고, 1986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입상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찰나였다. 수많은 연주자가 그러하듯, 한 번의 성과가 탄탄한 미래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몇몇 천재를 제외한 연주자들은, 아니 그 천재들마저도 지독한 인고의 시간을 버텨내야만 간신히 준비된 의자에 앉을 기회를 얻을 뿐이다.

콩쿠르 입상 이후에도 그는 13년이라는 긴 무명 연주자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솔리스트의 꿈을 품은 채, 백화점 향수 코너, 시골의 작은 교회, 연주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소리를 쌓아갔다.

그러나 모든 꿈이 목적지에 닿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 동안 그는 솔리스트가 되겠다는 오랜 목표를 내려놓았고, 오케스트라의 악장이 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 길마저 평탄치는 않았다. 모든 오케스트라가 자신을 반길 것이라는 기대는 착각이었고,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친 후에야 마침내 1999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악장2)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을 묻는 말에, 그는 망설임 없이 ‘악장이 되었던 순간’을 꼽는다. 그 대답에는 비로소 연주자로서 안착할 수 있는 삶의 자리를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리허설을 하고 있다. / 사진. © 고지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리허설을 하고 있다. / 사진. © 고지현
악장이 된 이후 그의 삶은 달라졌다. 심포니의 중심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때로는 솔리스트로 무대에 오르며 세계 곳곳에서 초청 연주와 교육 활동을 이어간다. 여름이면 음악 페스티벌의 악장이자 교수로 학생들을 만나고, 각국의 음악원과 콩쿠르에서 연주자이자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데이비드 김의 모습이다.

그 반짝이는 화려함 뒤에 그가 견뎌온 인내의 시간을 우리는 듣고도 다 알지 못한다. 엄청난 테크닉과 정교한 해석에 감탄하면서도, 정작 연주자들이 감당해야 했던 그 시간의 무게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졌던 그의 삶. 그 속에서 끝까지 버텨야 했던 시간들. 한 연주자가 키워지는 과정에는 정해진 공식이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조건들이 있다. 이른 시작, 재능 그리고 노력. 그리고 그 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이 모든 것은 얼마나 쉽고 아름답게 보이는가. 어쩌면 같은 삶이 주어진다 해도 모두가 같은 결과에 이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이 모든 인고의 시간을 견뎌온 연주자들에 대한 존경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2025년 12월 13일, 헨델 메시아 무대에 오르기 직전의 데이비드 김 / 사진. © 고지현
2025년 12월 13일, 헨델 메시아 무대에 오르기 직전의 데이비드 김 / 사진. © 고지현
나에게도 치열했던 시기가 있었지만, 평생을 긴장 속에 머무는 삶과는 결이 다를 것이다. 매 순간 미세한 떨림까지 통제하며, 단 한 번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무대를 위해 같은 구간을 수천 번 반복하는 삶. 나의 노력의 시기가 그런 지독한 시간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었던 듯싶다. 그리고 그 운명을 받아들였음에도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음악인을 생각하며 나에게 그런 재능과 운명의 기회가 주어졌더라도 나는 그 삶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 데이비드 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고지현 칼럼니스트

[From Child Violin Prodigy to Concertmaster | David Kim | NAYA]

1) 도로시 딜레이(Dorothy DeLay, 1917~2002):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린 스승으로 꼽히는 줄리아드 음악원의 전설적인 교수. 이작 펄만, 길 샤함, 장영주 등 세계적인 연주자들을 길러냈다. 기술적 완성도보다 각 연주자의 개성과 음악적 사고를 존중하며, 스스로 성장하도록 이끄는 교육 철학으로 유명하다. 줄리아드 음악원 예비학교는 매주 토요일에만 수업이 진행되며, 이 수업을 위해 학생들이 미국 전역에서 뉴욕으로 이동한다.

2) 당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악장 최종 후보에는 데이비드 김과, 1986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였던 ‘일리야 칼러’가 함께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