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서의 올해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며칠 전 인도 출신의 노장 주빈 메타(Zubin Mehta, 1936~)의 선포에 세계가 술렁였다. 인도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메타는 네타냐후 정부가 팔레스타인 문제를 대하는 방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많은 동료들이 못 본 체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다”는 그의 말에서 씁쓸함이 묻어났다.

그동안 여러 음악가들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목소리를 냈지만, 메타의 보이콧이 갖는 충격은 차원이 다르다. 그처럼 이스라엘 사회와 깊은 유대를 쌓아 온 비유대인 음악가는 달리 없기 때문이다. 메타의 강경해진 모습은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한때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1942~)을 떠올리게 한다.
2021년 4월 29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가 주빈 메타의 지휘로 연주하고, 그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다니엘 바렌보임이 피아노 협연을 맡았다. / 사진. © Thomas Bartilla
2021년 4월 29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가 주빈 메타의 지휘로 연주하고, 그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다니엘 바렌보임이 피아노 협연을 맡았다. / 사진. © Thomas Bartilla
포화 속에서 다진 우애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주 공연장, 베를린 필하모니(Philharmonie Berlin)의 단원 휴게실에는 한 공연 포스터가 벽에 걸려 있다. 바렌보임, 메타,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이름이 올라 있는 이 포스터는 바렌보임이 베를린 필에 선물한 것이다. 세 친구가 학생 시절 참여했던 이탈리아 키지아나 아카데미에서의 기록이다.

1956년 시에나에서 열린 이 지휘 클래스에 참가했을 당시 바렌보임은 겨우 열세 살이었고, 메타는 여섯 살 위였다. 메타의 전기1)에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어떠했는지가 서술되어 있다. 그는 다른 학생들의 오디션이 궁금해 극장에 들르곤 했는데, 한 번은 교향곡을 지휘하는 인물이 지휘대 위에 보이지 않았다! 난쟁이 지휘자일 것이라는 메타의 예상과 달리 주인공은 바로 어린 소년, 다니엘 바렌보임이었다. 아바도와도 친하게 지냈지만, 바렌보임은 어른스러운 메타를 형처럼 따랐다고 한다. 바렌보임은 그의 자서전2)에 메타에 대해 “초창기부터 마음의 벗이었으며 지금까지도 그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썼다.
젊은 시절, [좌] 다니엘 바렌보임, [우] 주빈 메타 / 사진. © alliance
젊은 시절, [좌] 다니엘 바렌보임, [우] 주빈 메타 / 사진. © alliance
다니엘 바렌보임과 주빈 메타 / 사진. © Jun Keller.
다니엘 바렌보임과 주빈 메타 / 사진. © Jun Keller.
두 사람의 우정을 더욱 끈끈하게 만든 계기는 이스라엘과의 연대였다. 바렌보임처럼 이스라엘국적은 아니지만, 메타는 자신을 ‘인도의 유대인’으로 소개하곤 했다. 그가 반세기 동안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악단을 크게 발전시켰기 때문만은 아니다. 1961년 이스라엘 필을 지휘하기 위해 처음 텔아비브를 방문했을 때부터, 그는 고향 뭄바이를 닮은 이 나라에 친근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메타는 위기마다 늘 이스라엘의 곁을 지켰다. 1967년 중동에서 6일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이스라엘로 날아가 매일 공연을 열었다. 바렌보임과 그의 약혼자였던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가 함께했다(전쟁이 끝나고 열린 이들의 결혼식에 메타는 유대 이름으로 임시 개명해 참석했다). 메타와 바렌보임의 위문 공연은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당시에도 재현되었다. 1991년 걸프전 중 방독면을 지참한 가운데 진행되었던 메타와 이스라엘 필의 연주회는 이스라엘에서 용기를 상징하는 사례로 남았다.
1977년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국경 지대에서 공연하는 주빈 메타와 이스라엘 필하모닉 / 사진. © David Rubinger
1977년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국경 지대에서 공연하는 주빈 메타와 이스라엘 필하모닉 / 사진. © David Rubinger
1991년 걸프전 중 열린 공연에서 방독면을 전달받는 주빈 메타 / 사진출처. layoftheland.online
1991년 걸프전 중 열린 공연에서 방독면을 전달받는 주빈 메타 / 사진출처. layoftheland.online
다리 놓기

그러나 이스라엘을 둘러싼 메타와 바렌보임의 접점은 전시 연주나 애국심보다 훨씬 넓은 맥락에서 조망되어야 한다. 두 친구는 이스라엘이 아랍 세계와 팔레스타인에 먼저 손을 뻗어야 한다고 믿고, 그러한 신념을 적극적으로 실천해 온 흔치 않은 음악가들이다.

바렌보임의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발언들이 화제를 낳기 전부터 메타는 아랍 세계와의 공존을 위한 연주회에 열의를 보였다. 1982년 메타와 이스라엘 필이 레바논 남부에서 가진 공연이 대표적이다. 레바논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 이스라엘 군이 커피 농장 한가운데 만든 무대에 아랍인들이 모였다. 놀랍게도 공연이 끝나자 청중들이 무대로 뛰어올라와 연주자들을 껴안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6개월 뒤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했고, 메타는 정치 지도자들이 선의를 무너뜨렸다며 분개했다. 이스라엘 필의 이집트, 요르단 투어를 추진하기도 했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1977년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국경 지대에서 공연하는 주빈 메타와 이스라엘 필하모닉 / 사진. © IPPA
1977년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국경 지대에서 공연하는 주빈 메타와 이스라엘 필하모닉 / 사진. © IPPA
이스라엘 내의 아랍인들에도 그는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2007년에 나사렛에서 아랍인을 대상으로 한 공연을 연 데 이어, 2009년에는 메타의 주도로 이스라엘 아랍인을 위한 음악 교육 프로그램인 ‘Mifneh(히브리어로 ‘변화’를 의미한다)’가 설립됐다. 메타가 “이스라엘 필에 아랍인 단원이 생기는 것이 꿈”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해 온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메타가 이스라엘 곁에 남아 당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변화를 추구했다면, 바렌보임은 거침없는 행보로 이스라엘의 눈 밖에 났다. 그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을 비판해 온 대표적인 인사다. 2004년 울프상 시상식에서 바렌보임은 이스라엘 독립 선언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끊임없는 고통과 무자비한 박해의 역사를 지닌 유대 민족이 어떻게 이웃 민족의 권리와 고통에 무관심할 수 있습니까?”

그에 앞서 1999년, 바렌보임은 팔레스타인 출신 영문학자 에드워드 사이드와 서동시집 오케스트라(West-Eastern Divan Orchestra)를 발족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스라엘과 아랍 세계의 공존을 도모하기 위해 탄생한 이 악단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아랍 국가들의 젊은 음악가들로 구성되었다. 바렌보임은 이스라엘에서 쏟아진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와 팔레스타인의 행정 수도 라말라에서 공연을 열었다. 2004년에는 이 도시에 음악 유치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주빈 메타와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 사진. © Manuel Vaca
주빈 메타와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 사진. © Manuel Vaca
2011년에는 한층 더 대담한 시도가 있었다. 바렌보임이 꾸린 ‘가자를 위한 오케스트라’가 가자 지구에서 연주회를 가진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자 봉쇄에 항의하는 의미가 다분한 ‘평화를 위한 연주회’였다. 4년 전 가자 공연을 계획했다가 국경에서 제지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유엔과 비밀리에 조율이 이루어졌고, 곡절 끝에 공연이 성사될 수 있었다.
2011년 가자에서 열린 음악회 / 사진출처. 다니엘 바렌보임 홈페이지
2011년 가자에서 열린 음악회 / 사진출처. 다니엘 바렌보임 홈페이지
짓밟힌 이상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의 대의는 서방에서 큰 호응을 얻었지만, 이스라엘과 아랍 세계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아랍 국가들에서의 공연 시도들은 양측의 비난 속에서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2019년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의 20주년 투어를 마친 바렌보임은 인터뷰에서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분쟁이 격화되고, 대부분의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에서 공연을 갖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무력감이 엿보였다. 몇 해 전 파킨슨병으로 바렌보임의 건강이 악화된 후로는 메타가 고령에도 불구하고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의 투어를 맡고 있다.

메타는 올해 90세를 맞는다. 메타의 선언대로라면 이번 생일은 그가 ‘가족’이라고 불러온 이스라엘 필과 함께 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레바논 남부에서 가졌던 공연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랍인과 유대인이 서로 껴안는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날 그의 꿈은 어느 때보다 요원해 보인다. 메타는 언젠가 다시 중동의 미래를 긍정할 수 있을까.
주빈 메타와 다니엘 바렌보임 / 사진. © Jun Keller.
주빈 메타와 다니엘 바렌보임 / 사진. © Jun Keller.
임세열 칼럼니스트

1) 메타의 전기: 『Zubin Mehta: A Musical Journey』, Dadabhoy Bakhtiar, 2015.
2) 자서전: 『Daniel Barenboim: A Life in Music』, Daniel Barenboim, 1991. 국내에는 『다니엘 바렌보임: 평화의 지휘자』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김성현 역,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