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가 자신들의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기념하는 오페라를 ‘기념 오페라’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작품이 제작되는 동기는 공동체의 광장에 기념 조형물을 세우는 이유와 비슷하다.

그렇지만 이런 작품의 장기적인 수명을 보장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날 청중이 사랑하는 오페라 목록에서 이런 기념적 성격의 오페라를 몇 개나 꼽을 수 있는지 세어보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작품들은 분명 일정한 의미와 효과를 지닌다. 1월 16, 17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구미오페라단의 오페라 ‘2.28’이 1960년 대구 2.28 학생운동을 환기하고 알린 효과를 생각하면 분명하다. 나 자신도 4.19는 물론 마산 3.15 학생의거에 선행하며 민주주의 확립에 기여한 이 사건에 대해 알지 못했다.

2.28 학생민주의거는 1960년 3.15 부정선거를 앞둔 2월 28일에 대구의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유당의 독재와 불의에 항거해 일어난 의거다. 이날 야당 부통령 후보의 대구 유세가 예정되었는데, 자유당 정부는 학생들의 유세 참석을 방지하고자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강제 등교를 지시했다. 이에 반발한 학생들이 ‘학생을 정치도구화하지 말라’고 외치며 궐기했고 학생 120여 명이 체포됐다.
창작오페라 <2.28> 2막에서 대구지역 학생대표들이 부정선거 시도에 항의하는 궐기에 나서고 있다. / 사진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오페라 <2.28> 2막에서 대구지역 학생대표들이 부정선거 시도에 항의하는 궐기에 나서고 있다. / 사진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작품은 90여 분 길이에 서곡과 4막 및 에필로그로 구성됐다. 1막은 오늘날의 시점이다. 60여년 전 의거의 주역 중 한 사람이었던 민철이 합창 교사인 딸에게 2.28의 노래가 담긴 노래를 공연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딸은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2막에서는 1960년 2월 궐기의 동기부터 진행 상황이 펼쳐지고, 3막에서는 다시 현재의 시점에서 딸이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화해의 이중창을 부른다. 4막에서는 현재와 과거의 민철 및 그의 딸이 중창을 펼치고, 에필로그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사람들이 마음을 모은 합창을 펼쳐낸다.

작곡가 박경아가 이 작품에 담아낸 어법은 오페라라는 장르에 친숙하지 않은 청중까지를 설득하고자 한 것으로 보였고, 이 점에서 이 작품은 일정한 성공을 거뒀다. 합창이 정의의 실현을 부르짖는 2막과 4막에서 거듭 감동적인 극적 정점이 펼쳐졌다. 아쉬운 점이라면 결의의 장면, 선언문 낭송의 장면, 도청 앞 시위 장면 등 격동적인 장면이 거듭 이어지면서 그 장면들 사이의 차별성이 무대 위 상황의 차이 외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점이다. 이에 더해 격문과 같은 추상적인 성격의 가사가 거듭 이어지면서 일종의 ‘감동피로’가 염려됐다.

궐기의 동기부터 절정까지 거듭 격정적인 장면을 이어가기보다는 2막 3장에서 잠시 언급되고 지나간, 일부 참가 학생들의 내적 갈등이 더 부각됐다면 극적 호소력이 더욱 컸을 것이다. 이 장면에서 다뤄진 것처럼 부모의 기대나 집안의 생계 문제로 참여에 소극적이었던 학생이 갈등 끝에 자기를 희생하기로 결심했을 수도 있다. 이런 미시적인 개인들의 고민이 시위 주역들의 영웅적 모습 뒤편으로 깔려 미세해지면서 이 극의 서사는 기대보다 단조로워졌다.

대본의 상세에 있어서도 아쉬움이 있었다. ‘선거의 길’ 장면은 학생들의 합창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가사였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선거의 특정 결과가 목적이 아니다. ‘학생을 정치의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호소를 부각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향기로운 날들도 ()() 했던 날’처럼 수식어와 피수식어의 관계가 적절치 않은 가사들도 귀에 걸렸다.

극의 진행으로 더 들어가 보자. 3막 1장에서 민철의 딸은 아버지의 호소에 마음이 움직여 2.28의 정신이 담긴 노래를 공연에 담기로 약속한다. 그 입장 선회의 동기는 분명치 않다. 아버지의 애절한 마음에 결국 마음을 바꾸었다는 정도일 뿐 관객을 움직일 정도의 극적 장치가 없다. 민철이 60여 년 전의 의거 동지와 우연히, 또는 약속하에 만나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이에 딸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면 어땠을지 상상해 보았다.

극의 현실적 서사는 잡혀있던 학생들이 훈방되고 앞날을 위한 결의를 하는 것으로 끝난다. 극적 긴장은 갑자기 해소되고, 남은 것은 회상의 장면들 뿐이다. 이후 에필로그로 들어가기 전에 무대에 자막이 투사되며 2.28과 4.19의 연계성을 설명한다. 그러나 최후의 극적 긴장은 훈방이나 회상이 아니라, 4.19라는 역사적 성취를 대면한 학생들이 자신들의 공헌을 실감하는 데서 이루어졌어야 했다. 자막이 아니라 극의 진행을 통해 이를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2.28의 진정한 위치를 예술적으로 풀어내고 강조하는 작품 취지에 맞는 일이었을 것이다. 궐기의 동기가 일요 등교라는 작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도 자막이 아니라 궐기 학생 자신의 목소리로 극 초반에 강조했어야 했다.
창작오페라 <2.28> 2막에서 대구지역 학생대표들이 부정선거 시도에 항의하는 궐기에 나서고 있다. / 사진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오페라 <2.28> 2막에서 대구지역 학생대표들이 부정선거 시도에 항의하는 궐기에 나서고 있다. / 사진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극의 구조에 있어서 불편했던 점을 한두 가지 더 이야기하고자 한다. 민철이 물고문을 당하는 장면은 과도했다. 우리는 1987년 박종철 사건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으며, 이것이 그 시대를 바꾼 분수령이 되었음도 알고 있고, 물고문이 박종철에 그치지 않은 당시 대학생 취조의 한 관례였음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때의 일을 합당한 근거를 들지 못한 채 27년 앞선 시점으로 끌어들인 것은 적절하다고 하기 어렵다.
또 한 가지, 서곡에 앞선 극의 시작은 AI 영상으로 추정되는 합성 화면과 기계음으로 시작됐다. 추상화된 시계장치가 신음과 같은 소리와 함께 화면에 나타났다. 왜 오페라의 서곡에 앞서 합성 화면과 기계음일까? 서곡으로는 극이 요구하는 긴장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오페라라는 장르의 특성에 대한 불신의 결과일 수도 있다. 게다가, 시계가 상징하는 시간의 흐름은 이 극의 줄거리만을 환기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은 ‘플래시백’ 기법을 사용한 모든 서사에 해당한다. 특징 없고 군더더기에 불과한 시작이었다.

음악으로 되돌아가 보자. 17일 낮 공연에서 학생시절 민철 역의 차경훈이 선보인 뚜렷한 음색과 영웅적 표현, 거대한 음량은 압도적이었다. 아버지 민철 역 김승철의 품위있는 표현력도 인상적이었다. 딸 역 유소영은 악구들 사이의 볼륨 차이가 있었는데 작은 부분은 곧잘 반주부에 묻혀버렸다. 작곡가가 이 딸 역에 뚜렷한 음악적 성격을 부여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반주부의 현악 파트는 편성이 작아 볼륨이 작을 뿐 아니라 음향의 소노리티(두께) 자체가 빈약했다. 현악 인원을 증강하던가, 극적인 부분에 있어서 관악에 더 큰 역할을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대부분의 한국 창작 오페라가 레치타티보의 적용에서 어려움을 드러낸다. 입말의 억양을 살리고, 박자와 음절의 적절한 분할 및 배치, 단순 음정 부여를 넘어선 큰 시간 단위에서의 선율적, 화성적 이미지 형성은 창작오페라의 관람 때마다 늘 미해결의 숙제로 느껴진다. 이 작품 역시 이 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가 도시의 광장이나 공원에서 보는 역사적 기념상과 기념 오페라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공통점은, 지속적으로 그 의미를 담보하기 위해 유지와 보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차이점은, 기념상은 유지와 보수가 적절하지 않아도 많든 적든 계속해서 찾는 사람이 있지만 공연물은 무대에 올리지 않는다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창작오페라 <2.28> 2막에서 대구지역 학생대표들이 부정선거 시도에 항의하는 궐기에 나서고 있다. / 사진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오페라 <2.28> 2막에서 대구지역 학생대표들이 부정선거 시도에 항의하는 궐기에 나서고 있다. / 사진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오페라 2.28은 몇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귀에 담기는 감동적인 합창과 아리아들을 확보했다. 이번 공연 자체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겠지만, 지속적인 공연 레퍼토리로 유지된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2.28 70주년이 되는 2030년이나 그 이후에도 공연 가능한 레퍼토리로 살아남는다면 그 가치는 더 클 것이다. 그것이 힘들다면 개별 합창과 아리아가 갈라 콘서트를 비롯한 여러 공연에 담기는 음악적 기념물로라도 가치를 유지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페라 역사상의 여러 걸작들이 그랬듯, 섬세한 추가적 조탁(彫琢)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유윤종 음악평론가·클래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