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함' 상태가 된 인류와 그에 동참하지 못한 주인공
‘너희들 외계인이지?’
‘외계인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격렬한 논쟁에 놓인 주제에 관해 의견을 제시하려면 일단은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그 주제가 AI라면 그것에 찬성하는지 아니면 반대하는지부터 답해야 한다.
‘인간의 창조성을 확장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의 등장은 환영이지만 그걸 정말로 지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판단하기 이전에 그런 단어로 시대를 규정하는 건 모순이 아닐까?’라는 식으로 끝까지 진의를 파헤치는 불가지론자를 자처했다간, 그 진지한 대답에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가능성이 높다. 곧바로 ‘그래서 어느 쪽이라는 건데?’라는 반문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럴 때 약간의 웃음기가 필요하다.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부터가 농담인지 다소 모호하지만, 짧고 명쾌한 한마디 말을 미소와 함께 건네야 한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액션 영화를 보며 스트레스를 풀기보단 이런 농담 같은 다크 코미디를 한편 즐기곤 한다. 애플티비가 새롭게 선보인 시리즈 <플루리부스>는 딱 그런 농담 같은 이야기다. 어느 날 600광년 거리에서 송신된 핵산 염기서열로 인해 모든 인류는 하나의 정신으로 연결되고, 이 ‘함께함’에 동참하지 못한 캐럴은 묻는다. "너희들 외계인이지?" 하지만 ‘함께함’ 상태가 된 인류가 대답한다. "우리는 우리입니다. 외계인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플루리부스>에서 ‘함께함’ 상태가 된 인류는 생물학적 네트워크로 연결된 클라우드 컴퓨터다. 에리히 프롬이 일찍이 경고했던 자동인형 상태의 인간상에 네트워크와 클라우드 컴퓨팅의 개념이 합쳐졌다. 그들은 집단 지성으로 모든 인류의 문제를 해결해 버린다. 전쟁, 살인, 환경 파괴 등 모든 문제는 개개인의 자아와 독자성이 사라지며 단숨에 해결된다.
단, 이 완벽한 평화의 수단이 지배한 세계를 디스토피아로 보아야 할지, 유토피아로 보아야 할지는 모종의 이유로 이 ‘함께함’을 비껴나간 캐럴과 시청자의 몫이다.
‘함께함’ 인류는 캐럴을 향해 미소 짓는다. 하지만 그 미소는 마치 생성형 AI 이미지의 그것 같다. 그 미소의 한구석에, 잔뜩 올라가 경직된 광대 속에 미세하지만 기필코 채워지지 않을 '불쾌의 골짜기'가 존재한다.
이 시리즈의 호흡은 가쁘다. 느린 호흡으로 시간의 감각에 경종을 울리며 이미지의 사유를 유도하는 영화와 달리, 이 시리즈를 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기란 쉽지 않다. 캐럴의 당혹스러움에 시청자의 초점을 맞추기 위해 가장 공포스럽게 연출된 1화를 제외하면 이 드라마는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SF영화나 컬트 무비와는 달리 진지함이나 무거움 따위는 집어치우고 경쾌한 리듬 속에 전개된다. 음악의 형식을 빌리자면 '스케르초' 형식이다. ‘함께함’으로 하나가 된 사람들이 마치 일개미라도 된 양 일률적으로 줄을 서고 짐을 나르고, 운송 수단을 운전하고, 단숨에 한 공간이나 도시를 완전히 바꿔놓는 모습은 마치 '클라우드화된 찰리 채플린' 같다. 극 중에서 희화화가 이뤄지는 대상은 주로 이 ‘함께함’ 신인류인데, 거기에는 대칭 구도와 기계적인 집단 군무가 있을 뿐이다. 억지로 웃기려는 표정이나 대사는 없다. 그들은 아무런 말 없이 기계적인 동작으로만 웃음을 유발한다.
그녀는 작가인 자신의 역량을 활용해 ‘함께함’ 인류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그들이 거짓말을 못 한다는 것, 또 자신의 동의 없이는 ‘함께함’ 상태로 만들 수 없다는 것, 또 이 세상을 과거로 되돌릴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애플티비 드라마 <플루리부스 : 행복의 시대> 스틸컷 / 출처. IMDb
하지만 비밀을 파헤치려던 캐럴의 과격한 행동에 신인류는 캐럴을 차단한다. ‘안녕하세요, 캐럴. 이건 녹음된 메시지에요. 여러 일이 있었으니 잠시 거리를 두는 게 좋겠어요.’
시즌 1에서는 비중이 크지 않지만 이 ‘함께함’을 악으로 규정하고, 캐럴보다 더 세계를 되돌려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지닌 인물은 마누소스다. 어떤 면에선 그가 더 프로타고니스트라고 할만하다.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 함께함에 반대하는 캐럴의 존재를 알게 된 후 누구의 도움도 없이 파라과이에서 뉴멕시코까지의 여정을 시작한다. 리드미컬한 기타 주법에 맞추어 전진하는 그의 모습은 앞뒤 맥락을 제외하고 보면 대륙을 종단하는 행복한 탐험가처럼 보인다.
애플티비 드라마 <플루리부스 : 행복의 시대> 스틸컷 - 캐럴을 만나기 위해 대륙을 종단하는 마누소스 / 출처. IMDb
온 세상이 뒤집어졌음에도 도로 위에 멈춰 선 자동차에서 연료를 빼면서도 지폐를 와이퍼에 꽂아 넣으며 부당 이득을 취하려 하지 않고, 캐럴과 대화하기 위해 영어 회화 테이프를 들으며 불확실한 여정을 지속하는 그의 모습은 부조리한 세계에 맞서 부조리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실존적 인물의 현현 같다. 하지만 그가 주인공이었다면 이 시리즈는 다소 지루한 SF 장르로 재탄생한 시지프 신화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캐럴이 주인공이어야 한다. 이 시리즈는 시종일관 밝은 음악으로 전개된다. 레아 시혼(캐럴 역)의 연기에는 약간의 희극적 몸짓이 섞여 있다. 처음 신인류와 대화하며 그들의 괴상한 몸짓을 흉내 내는 장면이나 조시아를 만났을 때 힘이 들어간 동작으로 생수통의 물을 버리는 장면 등이 그렇다. 그녀는 처음에 상황을 이용해 향락을 즐기거나 관습적 사고를 유지하려는 인물들을 혐오했지만 미술관에서 헬렌과 좋아하던 그림의 진품을 가져와 집에 걸고는 급기야 조시아를 헬렌의 대체자로 여기며 잠시나마 행복해진다.
제작자인 빈스 길리건의 필모그래피를 생각하면 이 시리즈의 스타일이 더 새롭게 다가온다. 화학 교사가 마약 제조를 하다가 팬티 바람에 줄행랑을 치고 범죄 집단의 보스를 사제 폭탄으로 제거하더니 기관총으로 모두를 쏴 죽이며 끝나는 도파민 파티였던 전작에는 ‘브레이킹 배드’라는 이름보다 애플티비의 다른 시리즈 제목인 ‘레슨 인 케미스트리’가 왠지 더 잘 어울린다.
그가 이 독특한 디스토피아 세계관과 우스꽝스러운 리듬으로 말하려 한 것은 무엇일까? 작가 스티븐 킹은 이 시리즈를 극찬하며 자신에겐 시간이 얼마 없으니 시즌 2를 빨리 제작해달라며 농담 섞인 진심을 전했다고도 한다.
풍자극은 유쾌한 농담 속에 진실을 감추어야 한다. 희화화된 인물로 심장의 한쪽 벽면을 살며시 간지럽히며 이게 네가 보지 못하는 진실이야. 그러니 한번은 이런 상상을 해봐. 라고 말해야 한다.
이런 상상이 완전히 논리적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꿈꿀 때 그 개연성 없는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어 인과관계, 논리, 이성, 과학적 사실 판단 같은 것은 모두 잊고서 그 꿈이 제시하는 이미지 속에 빠져들어 그 이미지가 주는 감정이 고통이든 희열이든 깨어있을 때보다 더 생생하게 느끼는 것처럼. 이처럼 조금 과장되고 단순화된 대비로 상상의 세계를 그리는 SF 다크 코미디를 보는 순간에는 그런 개연성과 과학적 판단은 일단 접어두어야 한다.
그 농담 속에 현대 사회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건져 올린 진실이 있다고 믿으며 조금 느슨해진 감각으로 그 꿈에 동화되어야만 한다. 화면을 꿰뚫어 보는 행위로 ‘함께함’으로 연결된 온 세상에 맞서 자신의 독자성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 당혹스러워하는 캐럴이 되어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 농담이 말하는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