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기록되지 않은 사실과 행위는 어둠에 덮여 망각의 무덤 속으로 들어가지만, 기록된 사실과 행위는 마치 생명을 얻은 것과 같다...”

이반 부닌의 장편 <아르세니예프의 인생>은 위의 문장으로 시작된다. 부닌은 러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다. 당시 프랑스로 망명한 상태여서 (그는 볼셰비키 혁명에 반대하여 아내 베라 무롬체바와 함께 1918년 모스크바를 떠나 오데사, 콘스탄티노플 등에서 생활하다 1920년 파리에 도착했다) 러시아-소련 국적자는 아니었지만(그는 이후 무국적자로 살았다), 1933년 노벨위원회는 “엄격한 예술성으로 러시아 고전문학의 전통을 계승한 작가”라는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래서 부닌은 러시아에서 한동안 금기시되던 이름이었다가 스탈린 사후에서야 그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수면 위로 오르게 되었다.
출판사 아즈부카에서 펴낸 러시아판 『아르세니예프의 인생』 표지 / 필자 제공
출판사 아즈부카에서 펴낸 러시아판 『아르세니예프의 인생』 표지 / 필자 제공
조국을 떠나기 전 쓴 인상적인 작품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1915)와 말년에 지녔던 내면세계를 과감히 드러낸 <어두운 가로수 길>(1946) 사이, 망명 시기의 부닌이 자신의 지난날을 뒤돌아보며 문학 인생을 집대성한 장편 <아르세니예프의 인생>은 종종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비견되곤 한다. 제목이 이미 보여주는 것과 같이 알렉세이 아르세니예프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그려가는 이 소설은 다섯 권으로 나뉘며 (각각 발표 시기가 다르다) 권으로 나뉜 각 부분은 주인공의 성숙에 이르는 특정 단계와 관련이 있다. 전체적으로는 유년과 청소년, 청년기의 기억들에 관해 말한다. 이 소설은 다분히 자전적인 내용을 품고 있다. 첫 문학 실험, 형의 체포, 급진 단체 ‘인민의 의지’의 일원이 되었던 경험, 러시아 전역으로의 방황, 그리고 여러 면에서 부닌과 거의 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여인 바르바라 파셴코와의 관계 등이 각색 없이 거의 그대로 그려진다. 부닌은 자신이 “가상의 인물의 자서전”을 썼다고 주장했지만, 러시아의 다른 문학적 전통, 즉 악사코프(<손자 바그로프의 어린 시절>)와 톨스토이(<유년 시절>, <소년 시절>, <청년 시절>)의 작품에서와 같이 주인공이 저자와 닮아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영락한 귀족은 왜 혁명을 거부했을까?

부닌은 자신의 존재가 시작된 곳, 그러나 이제는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떠나온 그곳을 추억하며 자신이 누구인가를 짚어본다. 그곳은 ‘개인’으로 처음 눈 떴던 가족의 영지다. 옛 영지가 과거의 러시아이며 자기 자신의 출발점인 것이다. “텅 빈 들판, 그 한가운데 외롭게 자리 잡은 저택…… 겨울에는 끝없이 눈 바다가 펼쳐지고, 여름엔 곡물과 풀과 꽃의 바다…… 이 들판의 영원한 고요와 수수께끼 같은 침묵…” 가운데 자란 러시아 대평원의 아들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들판을 바라보며 “백치로 가장한 행자行者들의 어리석은 언행도, 방랑 생활도, 광적인 의식儀式도, 분신焚身도, 온갖 반란도” ‘러시아적 즐거움’의 범주에 넣고 “황량함, 벽지僻地, 몰락” 조차 거기 포함한다. 이러한 러시아의 자연적 심성 위에서 주인공은 ‘지상의 신’으로서 차르의 형상과 ‘사회주의자’라는 말을 해석한다.

자기 형이 혁명 행위에 가담하여 수감생활을 하게 된 사건을 두고 주인공은 “[형의] 행위가 이미 김나지움 시절부터 ‘뛰어난 인물’인 도브로호토프라는 신학생의 지도로 시작되었다는 것”과 그 신학생에 대한 매혹이 “귀족 특유의 변함없는 경박함과 감격하기 쉬운 성격 때문”이었으며 그 ‘즐거움’의 내용이란 “온갖 비밀 서클에 대한 ‘범죄적’이고 달콤하고 지독한 관심, 모임과 노래와 ‘선동적인 연설’과 위험한 계획과 어떤 기도企圖에 대한 즐거운 느낌……”이었을 뿐이라고 일축한다. 그리고 이를 ‘러시아적 성격’으로 규정한다. “아, 이 축제적인 것에 대한 러시아인의 영원한 요구여! 우리는 정말로 감각적이고 열렬히 삶에 도취되기를 갈망한다. 말하자면 단순히 삶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삶에 도취되고자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술에 취하거나 발작적인 음주벽에 빠지고 싶어 하고, 일상과 계획에 따른 노동을 정말로 따분해한다! <...> 정말로 젖이 흐르는 강, 억압 없는 자유, 축제에 대한 오래된 꿈이 러시아 혁명의 가장 주요한 이유들 중 하나였을까? 대체로 러시아의 이단아, 폭도, 혁명가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들은 항상 현실을 경멸하면서 어리석을 정도로 현실과 단절되어 있고, 이성적인 판단이나 여러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시급하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활동은 전혀 하려 들지 않았다.”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 / 출처. yandex.ru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 / 출처. yandex.ru
볼셰비키 혁명을 증오했고, 그 때문에 망명을 택한 부닌은 외부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해석하기 위해 혁명의 외피가 감싸고 있는 외면된 진실을 탐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스스로를 관찰자로 남겨두면서도 혁명에의 참여 세력으로 실제 자기 형을 모델 삼아 이야기를 진행한다.

“형은 착하고 고상하며 생기에 넘치는 진실한 청년이었으나 이 점에서 자신을 속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형은 다른 수많은 사람들처럼 거짓 감정을 품고 살고자 노력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귀족 자녀들이 벌인 ‘민중 속으로’ 운동, 자기가 속한 계급에 대한 봉기, 집회와 논쟁, 지하활동, 피의 맹세와 과격한 행동의 원인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실제로 귀족 자녀들은 온갖 방탕한 생활을 했던 아버지들의 피와 살을 이어받은 자들이었다. 이념은 진짜 훌륭했다. 그러나 다시 말하건대, 이 젊은 혁명가들은 왕성한 활동이라는 명분 아래 유쾌한 게으름을 열렬히 갈망했고 <...> 수색과 감옥, 요란한 재판 그리고 시베리아와 징역과 북극권 너머로 동지들과 떠날 여행에 대한 꿈으로 흠뻑 도취되어 있었다!”

<아르세니예프의 생애>는 프랑스에서 발간된 러시아어 잡지를 통해 1927년부터 1929년까지 부분적으로 출판되었다. 이 잡지는 19세기 후반 러시아에서 등장한 ‘토착화 사상(почвенничество)’과 운동을 주도했던 이들인 “포치벤니키”들이 주류를 이뤘는데, 이들은 러시아 고유의 전통과 토착적 가치를 중시하며, 유럽화·급진적 사조(특히 혁명적 사회주의)를 강하게 반대하는 특징을 가졌다.

자연으로서의 죽음

기억이라는 주제는 본질적으로 죽음이라는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 작품에는 실제로 죽음에 대한 묘사가 많다. 여동생, 할머니 등 가족뿐 아니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죽음이 상세하게 그려진다. 마을 소년이 죽는다. 아르세니예프에게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대한 감각이 고조된다. 한 시인이 죽었고, 이것은 아르세니예프의 영혼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다. 부닌 자신이 시인 나드손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1887년에 그를 기리기 위해 레르몬토프의 <시인의 죽음>을 언급하는 시 <나드손의 묘비 위에서>를 펴냈다. 소설은 또한 자신의 죽음을 가능한 한 오랫동안 그에게 숨겨달라고 요청하는 리카의 죽음으로 끝난다.

부닌이 이해하는 인간의 삶이란 더 큰 어떤 존재와 연결되어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게 되는 그런 것이었다. “까마귀들은 몇백 년을 사는데, 아마도 이 까마귀는 타타르 시대부터 살았을 거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아버지의 이 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아버지가 한 말과 당시 내가 느꼈던 것이 지닌 매력은 어디에 있었을까? <...> 항상 우리의 영혼, 우리 개인의 존재를 넓혀주면서 우리가 보편적인 무언가에 소속되어 있음을 상기시키는 과거의 것, 멀리 떨어진 것, 보편적인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속에 있었을까?”
이반 부닌 『아르세니예프의 인생』일러스트 / 출처. rech-deti.ru
이반 부닌 『아르세니예프의 인생』일러스트 / 출처. rech-deti.ru
그런데 부닌에게 ‘인생’은 역사적 보편성만으로 다 해명될 수 없는 것이었고, 죽음을 사유하지 않고는 인간이 억압과 피 구속성에서 해방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런 면에서 사회주의가 외치는 불멸에는 핵심적인 것이 결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었고, 죽음의 세계를 도외시한 점은 그에게 사회주의의 결정적 오류였다. 부닌의 작품에서 죽음은 지상의 길에 자연스러운 종착점이며 잔인하고 무자비하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비극이기도 서서히 시들어가는 모습이기도 하나 아무튼 불가피하다. 죽음은 누구든 살려두지 않으므로 삶에서의 불평등은 죽음에서는 그렇지 않다. 죽음은 영원해서 삶의 덧없음이 한층 두드러진다. 그러나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삶의 반짝이는 순간들, 자연이 보여주는 찰나의 아름다움이 어떤 불멸의 속살을 보여준다고 그는 믿는다.

“그는 이미 존재하지 않지만 이 슬리퍼는 여전히 이 자리에 있고, 앞으로 백 년이 지나도 여기에 있을 수 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고, 세기가 끝날 때까지 어디에 있게 될까? 아주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전설적인 우리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을 ‘거기’ 어딘가에서 이미 만나지 않았을까? 그는 지금 무엇이 되었을까? <...> 나는 그가 부활하기까지 앞으로 기다려야 하는 끝없는 기간을 생각하고 공포를 느꼈다. 이 부활 후에야 의미도 목적도 어떤 기간도 없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뭔가가 시작되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다……”

작가가 공헌한 지점

러시아 문학의 유구한 전통을 드러내려는 부닌의 의도 또한 분명히 읽을 수 있다. 푸시킨과 레르몬토프를 직접 호명할 뿐 아니라 아르세니예프는 길을 떠나면서 의도적으로 ‘문학적인’ 장소를 택한다. 그는 오룔을 “레스코프와 투르게네프의 도시”라고 호명한다.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아버지와 아들>) 세바스토폴을 이야기하면서는 톨스토이를 의식하며 “크림 전쟁 시대에 대한 나의 막연한 생각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의 여행은 충동적이고 갑작스럽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으레 “작은 사람”(고골)이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모든 것을 그곳에서 경험하려 시도한다. 주인공은 러시아 문학의 특징적인 모델들을 엮어 여정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반 부닌 『아르세니예프의 인생』일러스트 / 출처. staroeradio.ru
이반 부닌 『아르세니예프의 인생』일러스트 / 출처. staroeradio.ru
발표될 당시 이 소설에 대한 인식은 러시아 작가 중 누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과 소문에 의해 심각하게 영향받았다. 수년 전 막심 고리키와의 경합이 예측되었고 이제는 메레주콥스키와 경쟁을 벌이고 있던 터였다. 소련에서는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작가의 상상력은 말라버렸다. 때로 재생되는 듯하지만 결국 사그라든다”며 비난했고 그가 혁명적 삶을 사는 모든 이들을 비방한다며 비판했다. 1935년에 출판된 프랑스어 번역판을 둘러싼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기도 한다. 트로츠키와 레닌의 번역가이자 공산주의 신문 뤼마니떼(L'Humanité)의 기자이기도 한 모리스 돈젤(Maurice Donzel)이 번역자였던 것이다. <저주받은 날들>에 표현된 볼셰비즘에 대한 부닌의 태도뿐만 아니라 소련 문학에 대한 그의 근본적인 거부를 고려한다면 확실히 아이러니하다.

부닌의 기억이 비추는 세계는 다분히 제한적이면서 감각적이다. 제1권에 19세기 후반의 삶에 관한 세부 사항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어떤 이들은 <예브게니 오네긴>에 대한 벨린스키의 잘 알려진 공식을 의역하여 <아르세니예프의 인생>을 “러시아 생활의 백과사전”이라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분명한 것은 부닌의 묘사에 귀족의 영지가 운영되는 방식이며 지주가 농민과 관계 맺는 양태 등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면, 김나지움 복도에서 나는 냄새라든가 아르세니예프가 방황하는 도시가 그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묘사는 매우 직접적이고 감각적이다. 그가 되살려내는 저녁놀, 아침이슬, 어스름, 고요, 끝없는 평원과 초원, 흰 눈, 푸른 창공, 헐벗은 나무 등을 우리가 희귀한 선물로 얻게 됨 또한 회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정 에세이스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