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밑과 턱에 처음으로 거뭇한 수염이 나기 시작하던 시절, 일본 책을 번역한 포켓판 교향곡 개론서를 동네 서점에서 집어 들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시벨리우스 교향곡 3번 2악장 항목에 적힌 말이 눈길을 끌었다. “가사를 붙여서 포크송으로 불러보면 좋을 텐데.”

그 선율을 처음 들은 것은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살짝 리드미컬하고 고적함이 느껴지는 친근한 멜로디였다. 실제로 ‘포크송 느낌’이었다. 어떤 가사를 붙이면 좋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같은 서점에서 집어 든 독일 시인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시집에 나오는 시 한 편이었다. 전문을 약간 길지만 인용해본다.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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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나라(Nebelland)

겨울이면 나의 연인은
숲 짐승들 사이에 있다.
아침이 오기 전에 돌아가야 함을,
암여우는 알고 웃는다.
떠는 구름! 그리고 내
눈 덮인 깃에
부서질 듯 얼음 한 겹 내려앉는다.

겨울이면 나의 연인은
나무들 사이 나무 한 그루
행복으로부터 버림받은 까마귀들을
아름다운 가지로 불러들인다. 그는 안다,
바람은, 황혼이 오면,
서리로 빳빳해진 저녁 드레스를
들어 올려 나를 집으로 내몰 것을.

겨울이면 나의 연인은
물고기들 사이에서 말이 없다.
그의 지느러미가 안에서
움직이는 물살에 순종하며,
나는 강가에 서서 본다,
빙판이 나를 쫓아낼 때까지,
그가 잠수하고 몸을 돌리는 것을.

그리고 다시 내 위에서 날개를
뻣뻣이 펴는 새의 사냥 소리에 직격당한
나는 빈 들판에 쓰러진다: 그는 닭들의
깃털을 뽑고 그 하얀
쇄골을 내게 던진다.
나는 그것을 목에 두르고
쓰라린 솜털을 헤치며 떠난다.

나의 연인은 믿을 수 없다, 나는 안다,
그는 때때로 높은 신을 신고
도시에서 헤맨다,
그는 술집에서 빨대로
잔에 깊이 입을 맞춘다,
그는 누구에게나 할 말이 있다.
하지만 그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안개의 나라를 나는 보았다,
안개의 심장을 나는 먹었다.

어떻게 끼워 맞춰보려 해도 이 시는 시벨리우스의 그 선율에 맞춰지지 않았다. 독일어 원문을 찾아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교향곡 이 악장의 음색과 멜로디의 고적함은 바로 이 시를 위해 쓰인 듯이 여겨졌다. 시 중간 부분의 작은 경악, 신비의 기호가 씌워진 사소한 낯설음의 기호까지 적확하게 들어맞았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3번 2악장]

시벨리우스는 사람과 술과 파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창작 생활 초기에 쓴 교향시 ‘핀란디아’와 교향곡 1번, 2번은 그 투쟁적이고 장려한 느낌으로 인해 러시아 제국의 압박으로부터 해방을 갈구하는 애국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핀란드 민족주의의 아이콘이 된 이 작곡가는 종종 헬싱키 중심가의 호텔 레스토랑에서 만취한 상태로 목격되곤 했다. 그의 아내는 감당하기 어려운 청구서 때문에 자주 이마를 짚어야만 했다.

그러던 그가 39세 때인 1904년 헬싱키에서 북쪽으로 35km 떨어진 예르벤파로 이사했다. 자작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고적한 곳이었다. 헬싱키로 나가서 친구를 만나기엔 어려운 조건이었다. 그는 새집의 이름을 아내 아이노의 이름을 따서 ‘아이놀라’로 지었다. 이곳에서 그는 많이 산책을 했고 바람 소리와 새들의 소리를 메모했다.

시벨리우스의 음악 세계도 변화를 겪었다. 아이놀라로 이사한 지 3년만, 이전 ‘애국적’으로 받아들여졌던 2번 교향곡을 발표한 지 5년 만에 쓴 1907년의 교향곡 3번에는 전작들의 투쟁적 메시지가 사라졌고 자연과 대화하는 내성적인, 소리의 풍경화 같은 표정이 두드러진다. 자연에 둘러싸인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작곡가의 머릿속에는 도시에서 헤매며 술집에서 잔에 깊이 입을 맞추고 모든 사람에게 할 말이 있었던 시절이 종종 떠올랐을 것이다.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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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에게 안개는 자주 고립의 상징이었다. 시벨리우스의 경우 스스로 선택한 고립이었지만, 다른 많은 사람에게 고립이란, 고독이란 삶의 어려움과 단절, 고통을 의미했다.

헤르만 헤세는 시 ‘안개 속에서(Im Nebel)’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이상하구나, 안개 속을 헤매는 것은!/모든 덤불도 돌도 외롭고,/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하며, 모두가 홀로 있구나.//내 삶이 밝았을 때는/세상이 친구들로 가득했는데,/이제 안개가 내려앉으니/아무도 보이지 않는구나.//진실로, 어둠을 알지 못하는 자는/지혜롭지 못하리니, 그 어둠은 피할 수 없이, 조용히/모든 이를 그로부터 갈라놓는구나.//이상하구나, 안개 속을 헤매는 것은!/삶이란 고독함이니, 아무도 타인을 알지 못하고,/모두가 홀로 있구나.”

한국에서도 초겨울은 안개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계절이다. 머지않아 첫눈도 내릴 것이다.

교향곡 3번 이후에도 시벨리우스의 작품세계는 계속해서 축약, 응축과 내면으로의 탐구를 걸어갔다. 1923년 발표한 교향곡 6번에 대해 작곡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 곡은 내게 언제나 첫눈의 향기를 떠올리게 한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6번]

2019년 세상을 떠난 미국의 자연 시인 메리 올리버가 시 ‘첫눈(First snow)’에서 표현한 세계도 시벨리우스의 이 ‘첫눈 교향곡’을 연상시킨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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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오늘 아침
여기서 내리기 시작해 종일
계속되었고, 그 하얀
수사법은 도처에서 우리를
불러 세웠다. 왜, 어떻게,
어디서 이런 아름다움이 오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묻게 하며, 마치
신탁 같은 열기였다! 창가를
흘러가며, 결코 쇠하지 않을 듯, 아름다움보다
덜한 곳에 결코 안착하지 않을 듯한
기운. 이제 깊은 밤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그쳤다.
침묵은 광대하고,
하늘은 여전히
백만 개의 촛불을 들고 있다; 어디에도
익숙한 것들은 없다.
별도, 달도,
우리가 기대하며 밤마다
외면하는 어둠도. 나무들은
리본으로 된 성처럼 펄럭이고, 넓은 들판은
빛으로 그을리며, 지나가던
시냇물 바닥은 빛나는
언덕들이 쌓여 있다,
그리고 비록 종일
우리를 괴롭혀온 질문들이 여전히
남아 있고 — 단 하나의
답도 찾지 못했지만 —
이제 침묵과 빛 속으로
걸어 나가는 것,
나무들 아래를,
들판을 가로지르는 것이
하나의 답처럼 느껴진다.

한 해가 천천히 접혀간다. 고립이 두려운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위안을 찾을 것이다. 파티와 웃음의 소음 사이에도,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의미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럴 때 축복처럼 눈이 내려준다면. 어차피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삶 속에서 나무들 아래를, 들판을 가로지르며 우리는 그 어떤 의미라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니.

유윤종 음악평론가·클래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