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을 기념하며 뉴욕한인교회의 100주년과 독립운동 전시관 개관을 함께 축하하는 음악회 < Resonance of Freedom>이 10월 3일 보스턴 뉴잉글랜드 음악원(NEC) 조던홀과 10월 5일 뉴욕 타운홀에서 열렸다. 특히 뉴욕 타운홀은 1921년 3월 2일 한인들이 뉴욕에서 처음으로 독립운동을 펼친 역사적인 장소로 최근에 완공된 독립운동 전시관 개관식과 함께 더 뜻깊은 시간을 맞이했다.

이번 공연은 한미 디아스포라 재단(Korean American Diaspora Foundation)이 주최하고, 뉴욕클래시컬 플레이어스(New York Classical Players - 이하 NYCP)를 비롯해 보스턴 한미예술협회, 한국음악재단, 뉴욕한국문화원이 함께 참여했고, 보훈처를 포함한 정부 기관의 협력으로 성사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2019년 뉴욕한인교회 창립 100주년 기념으로 시작되었으나 팬데믹과 전시관 개관 지연으로 여러 차례 연기되었다. 무엇보다 피아니스트 백혜선은 디아스포라 재단 이사장으로서 행정적·재정적 난관을 넘어 공연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지난 10월 5일 미국 뉴욕 타운홀에서 열린 광복 80주년 기념 음악회 'Resonance of Freedom'.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연주하고 있다. / 사진. ⓒ Yo Han Yeom
지난 10월 5일 미국 뉴욕 타운홀에서 열린 광복 80주년 기념 음악회 'Resonance of Freedom'.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연주하고 있다. / 사진. ⓒ Yo Han Yeom
NYCP의 음악감독, 김동민의 지휘로 베토벤 코리올란 서곡이 공연의 서막을 열었다.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젊고 혁신적인 챔버 오케스트라인 NYCP는 올해로 16년째를 맞이했다. 김 감독은 모든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누릴 수 있도록 무료 콘서트를 원칙으로 오케스트라를 설립했다. 최고 수준의 예술성을 바탕으로 미국 전역은 물론 남미와 아시아 무대에서도 연주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친숙한 명곡뿐 아니라 대담한 신작 위촉과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발굴에도 힘쓰며 동시대 음악의 확산에도 기여해 왔다. 현재까지 100여 작품의 세계 초연을 이끌었고, 이러한 무대를 통해 수천 명의 관객이 오케스트라 레퍼토리의 역동적인 힘과 실내악의 섬세한 친밀감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C단조의 날카로운 긴장과 운명적 강렬함으로 시작되는 코리올란 서곡은 오스트리아 극작가 하인리히 요제프 폰 콜린의 비극 <코리올란>을 위한 음악으로, 로마 장군 코리올란이 고향 로마를 침공하려다 어머니의 간청으로 마음을 돌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곡은 폭풍처럼 몰아치는 갈등을 지나 회한과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하며, C단조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듯 끝을 맺어 인생의 몰락과 어두움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이어 백혜선이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가 무대를 채웠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에너지가 폭발하는 곡으로, 긴 호흡이 필요한 1악장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장대함과 맞물린 피아노가 견고한 타건으로 주제를 주조해 나가며 형형색색 화려한 색채를 펼쳐 보였다. 이어지는 2악장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와 평온 속에서, 은은하게 흐르는 현악기 선율 위로 피아노가 내밀한 명상과도 같은 서정을 그려냈다. 마지막 3악장 론도에서는 맑고 경쾌한 리듬과 역동적인 변주가 어우러져 환희의 정점을 향해 치닫고, 연주는 '황제'라는 부제에 걸맞은 당당함과 영웅적 기백을 완연히 드러내며 객석을 숨죽인 채 몰입하게 했다. 백혜선은 퀸 엘리자베스 등 세계 유수의 콩쿠르 입상과 다수의 국제 공연으로 한국 피아니스트의 위상을 높여왔으며, 현재 뉴잉글랜드 음악원 피아노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지난 10월 3일 미국 보스턴 뉴잉글랜드 음악원(NEC) 조던홀에서도 같은 음악회가 열렸다. / 사진. ⓒ Nick Ortoleva
지난 10월 3일 미국 보스턴 뉴잉글랜드 음악원(NEC) 조던홀에서도 같은 음악회가 열렸다. / 사진. ⓒ Nick Ortoleva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세계 초연작 칸타타 ‘들풀(The Grass Still Grows)’이었다. 이 작품은 뉴욕한인교회 독립운동 전시관 개관과 뉴욕한인교회 100주년을 기념하여 위촉되었으며, 장철우 목사의 글과 자료를 토대로 작곡가 김택수가 완성한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장 목사는 작품 준비 중 세상을 떠났고, 백혜선 교수가 바통을 이어 공연을 무대에 올리게 되었다. 김택수는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에서 작곡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을 비롯한 국내외 다양한 오케스트라와 앙상블에서 작품이 연주된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작곡가다. 그의 음악은 한국 전통과 현대 음악을 융합하며 세련된 스타일과 깊은 메시지를 전한다.

칸타타 들풀은 ‘기억(Memory)’, ‘공동체(Community)’, ‘희망(Hope)’을 주제로 14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어, 한국어, 라틴어가 교차하는 독특한 구조를 지닌다. 변영로의 시 ‘논개’는 마치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밤의 여왕’ 아리아를 떠올리게 하는 긴장감과 서사로, 메조소프라노 김효나는 풍부한 성량과 테크닉으로 절제된 슬픔과 강한 의지를 동시에 전달하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유럽에서 다양한 오페라의 주역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2026년 메트 오페라에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스즈키 역으로 데뷔할 예정이다.

201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최초의 아시아인 우승자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소프라노 홍혜란은 부드럽지만, 애잔한 감정을 담아 신사임당의 시와 시편 126편 1~3절을 노래했다. 그의 목소리는 어머니의 품과 조국의 기억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며 관객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비롯해 유럽과 한국에서 활동 중인 테너 최원휘는 미국 독립선언문과 장철우 목사의 시 ‘아우내 장터’를 불러 뛰어난 음성과 감성적 표현력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바리톤 최기돈은 이 교회의 창립자인 임종순 목사의 연설문을 시작으로 랭스턴 휴즈의 ‘나 역시(I, too)를 불러 풍부한 성량과 압도적인 전달력으로 무게감을 더했다.

1악장 'The Dawn of Memory'에서는 현악기의 길고 낮은 울림과 합창이 희미한 빛을 드리우며 기억의 시간을 열었다. 4악장 'Declaration'에서는 미국 독립선언문의 문장이 성악과 합창으로 교차하며 자유와 정의의 선언이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테너 최원휘와 바리톤 최기돈의 이중창은 남성적 결의와 절제된 감정을 섬세하게 교차시켰다. 마지막 악장 ‘아리랑 연가(Arirang the Love Sonata)’는 한국 민요 ‘아리랑’을 모티프로 한 대서사적 피날레로 네 성악가가 조국의 의미를 담은 합창의 목소리가 오케스트라의 울림과 함께 희망과 생명의 빛으로 퍼져나갔다. 객석은 깊은 감동의 여운을 담은 기립 박수로 화답했고, 역사의 자리를 기억하는 많은 한국 관객은 감격의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이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디아스포라 세월을 넘어 공동체의 정체성과 자부심이 함께 담긴 순간이었다.
[왼쪽부터] 소프라노 홍혜란, 메조 소프라노 김효나, 테너 최원휘, 바리톤 최기돈이 노래하고 있다. / 사진. ⓒ Nick Ortoleva
[왼쪽부터] 소프라노 홍혜란, 메조 소프라노 김효나, 테너 최원휘, 바리톤 최기돈이 노래하고 있다. / 사진. ⓒ Nick Ortoleva
백혜선 교수는 “네 명의 성악가는 모두 뉴욕한인교회 성가대 출신 유학생이다. 제가 성가대 지휘할 때 만났던 학생들이었는데 지금은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성악가가 되었고, 의미 있는 공연에 참여하고자 한국, LA, 유럽에서 한걸음에 왔다”며 이는 단순한 초청을 넘어 그들의 고향과도 같은 자리에서 함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연 후 김택수는 “‘들풀’은 작곡 과정 내내 홀로 긴 여정을 걷는 경험과 같았지만, 집중된 리허설과 수준 높은 공연을 통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작품으로 더 자라난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소프라노 홍혜란은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되어 흘러나온 소리의 여운은 잊을 수 없는 선물이었다”라고 감동을 나누었다.

김택수 작곡가와 다양한 작업을 해온 지휘자 김동민 지휘자는 풀 오케스트라 편성에 4명의 성악가가 등장하는 40분 길이의 작품을 초연한다는 것에 대해 기대가 큰 만큼 적잖은 부담감도 있었다고 말하며 이 작품이 음악을 통해 희망을 잇는 다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보스턴과 뉴욕 두 도시에서 1,700여 명이 함께한 이번 공연은 예술이 역사를 기록하고, 공동체가 함께 그 기억을 되살리는 뜻깊은 자리였다. 마지막 음이 사라진 뒤에도 박수는 한동안 멈추지 않았고, 공연장은 뜨거운 울림으로 가득했다. 세대와 국경을 넘어 밟혀도 끝내 다시 피어나는 들풀처럼….
[왼쪽부터] 홍혜란, 김효나, 김동민, 김택수, 최원휘, 최기돈이 지난 5일 뉴욕 타운홀에서 공연을 마치고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 사진. ⓒ Yo Han Yeom
[왼쪽부터] 홍혜란, 김효나, 김동민, 김택수, 최원휘, 최기돈이 지난 5일 뉴욕 타운홀에서 공연을 마치고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 사진. ⓒ Yo Han Yeom
뉴욕·보스턴=양승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