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임코치의 컨피던스 코칭] 우주가 된 주전자와 코칭 (2)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알다시피 주전자는 그저 사물이다. 그래서 지난 칼럼, 즉 주전자에 대한 독자들의 스펙트럼은 넓을 수밖에 없다. 사물인 주전자를 우주라고 하는 것은 형이상학일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형이상학이나 철학이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소소함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누구나 가지고 있고, 누구나 편하게 쓰지만, 그 소소함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사실은 주전자의 바로 그 소소함 때문에 주전자는 주전자인데도 말이다. 그것을 생각해 보는 것이 코칭의 출발선이다. 이것은 코칭에서 얘기하는 성찰이자, 그 다음 단계인 의식의 확장이다.
주전자는 한마디로 얘기하면 확고한 존재감이다. 그 존재감은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저 그 용도만 알고 사용하던 소소함에서 나온다. 가정에서, 사무실에서, 기억 속 교실과 다방 난로 위에도 주전자는 있었다. 동서고금 현실 속에, 또 기억 속에 늘 주전자는 존재한다. 모양도 수천, 수만 가지다.
소위 꼰대에 속하는 세대가 술을 처음 접한 것도 주전자다. ‘막걸리 한 되 받아오라’는 아버지의 심부름에 등장한다. 뚜껑이 닫혀 있어 어린아이들 호기심이 마신 한 모금은 표가 나지 않는다. 주전자가 고맙다고 생각하는 아재들의 이야기다.
주전자의 소소함, 이번에는 다른 면에서 살펴본다.
불 위에 올려진 주전자, 요동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 뚜껑에 난 구멍에서 수증기로, 소리로 신호를 보낸다. 처음에 보내는 신호는 수증기다. 이어진 신호는 그 작은 뚜껑 구멍을 통한 분출이다. 뚜껑을 들썩이는 소리로 이어져 흘러넘치는 물로 마지막 경고를 한다.
아재나 꼰대들에게 주전자는 막걸리와 연결된다. 지금도 노란색 양은 주전자에 마시는 막걸리가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 기억 속 학교 교실이나 다방 난로 위에는 뜨거운 물이, 때로는 결명자차가 끓고 있다. 체육 시간, 운동장에 줄을 그을 때 주전자는 매우 유용했다. 선을 긋기에 아주 적당한 양의 물이 나온다. 한 시간의 체육 시간 내내 그 선은 마르지 않았다.
학사주점의 쭈그러진 막걸리 주전자는 낭만이다. 구입한 지 얼마 안 된 반질반질한 새 주전자에 마시는 것보다 쭈그러지고, 변색된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가 더 맛있게 느껴진다. 일부러 쭈그리고, 시멘트 바닥에 문지르기도 한다고 들었다. 이 주전자는 세월의 상징이다. 그래서 노포를 찾는 MZ세대들까지 쭈그러진 주전자를 찾는다.
그래서 주전자는 창작의 대상이고, 다품종 소량 상품이다. 그걸 부르는 이름과 기능이 주전자일 뿐, 그 디자인과 색상, 그리고 재질 등은 천차만별이다. 가정집, 식당, 공공장소, 호텔, 국가에 따라서 주전자의 생김새가 다르다. 우리가 잘 아는 ‘양은 주전자’를 제외하고 같은 주전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소품종 대량 시장은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지만, 다품종 소량 시장은 가격과 효용성으로 결정되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 다시 말해 가치가 시장을 만든다.
주전자와 사람이 교감하는 지점이다. 이 지점까지는 우리가 잘 알아차리지 못했던 주전자의 소소함이고, 그 이후는 주전자가 사람에게 주는 효용, 즉 가치다. 주전자의 소소함이 바로 가치다.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주전자는 그저 사물일 뿐이었다.
이런 주전자의 강점은 주전자가 우리의 역사와 함께해 온 이유다. 그럼에도 주전자는 주전자가 맞지만, 더 이상 주전자는 사물이 아니라, 우주가 되기에 충분하다. 사물인 주전자의 소소함과 가치를 발견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코칭의 힘이다. 존재에 대한 성찰을 통해 가치를 찾아내는 의식의 확장이다. 이것이 위대한 코칭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더임코치/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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