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봄여름 패션 경향을 미리 짚어보는 이번 서울패션위크에서 가장 티켓을 구하기 힘들었던 쇼의 주인공은 LIE(라이) 이청청 디자이너였다. 서울패션위크 메인 무대인 서울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도 가장 큰 공간의 오프닝 쇼라는 이유도 있지만, 매 시즌 기대를 뛰어넘는 화려한 무대연출로 “이청청 라이(LIE)쇼는 볼만하다”라는 입소문이 퍼졌기 때문.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이 내린 4일, 쇼타임은 정오였지만 이미 1시간 전부터 관객들로 북적였다. 디자이너 이름처럼 맑고 푸른 조명이 가득한 쇼장 내부는 쇼를 기대하는 관객들의 에너지로 들썩였다. 입추의 여지 없이 자리를 꽉 채운 쇼는 정시에 암전과 함께 시작됐다.
이번 시즌의 주제는 러닝. 지난 시즌 히말라야의 전설적인 여성 세르파(등산 조력자)인 락파를 페르소나로 내세운 데 이어 연장선상에서 다시 한번 역동적 여성에 주목한 것. 대형 스크린에는 도시 곳곳을 질주하는 러너가 등장하는 동영상이 쇼의 기대감을 한층 끌어 올렸다. 상큼한 네온색과 상반된 얌전한 톤 다운된 컬러가 묘하게 어울리며, 일상성과 예술성이 조화된 옷들이 런웨이를 질주했다. 운동화, 양말, 배낭 등 달릴 때 옷만큼이나 중요한 소품까지도 섬세하게 배치했는데, 운동화는 세계적 브랜드인 푸마, 양말은 러닝 전용 기능성 브랜드 리투(LI2)와 협업하는 등 쇼의 컨셉과 딱 떨어지는 브랜드를 매치하는 전략적 코디네이션도 돋보였다.
[26SS SFW Seoul Fashion Week 2026 SS - LIE]
관객들 시선을 사로잡는 하이라이트로 쇼의 강력한 방점을 찍는 이청청은 이번에도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물 흐르듯 유연하게 이어지는 모델들 캣워크 중간 한 명의 모델이 갑자기 스트리트 댄스를 선보였다. 시선이 집중된 남자 모델의 한쪽 다리는 의족. 비보이 댄서인 김완혁은 자유로운 워킹과 멋진 댄스를 번갈아 선보이며 무대를 장악했다. 10대 시절 비보이를 시작한 김완혁은 24살에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의족과 함께 선보이는 무대로 유명한 아티스트. 이번에도 신나는 에너지로 명불허전의 춤을 선보였다. 신체의 한계를 불굴의 의지와 긍정적 마인드로 경쾌하게 승화시키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퍼포먼스였다. 의외성과 위트를 잃지 않는 디자이너의 캐릭터가 십분 드러났다.
패션의 본질은 인간의 신체와 어우러지는 궁극의 섬유 예술이다. 그 어떤 예술보다 인간과 밀접하기에 당대 사람들의 삶의 양태에 밀착해야 한다. 현시대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달리기’에 담긴 의미를 포착하고, 그에 맞는 유용하면서도 아름다운 패션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청청의 이번 쇼는 성공적이다.